“대통령!” 환호에 손 흔든 이재명, ‘손가락’ 치켜든 박지원…‘당선인’ 재판에 들썩[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제22대 총선이 32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당선의 기쁨도 잠시. ‘당선인’들은 숨 가쁘게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해 다시 달립니다.
지난 12일 2명의 당선인이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찾았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전 국정원장입니다. 법원을 찾은 당선인들의 태도도, 이들을 맞이하는 지지자들의 환호도 총선 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날의 법원을 그려보겠습니다.
12일 오전 10시 20분께.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 길게 둘러진 폴리스라인으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이 대표가 등장했기 때문이죠. 차에서 내린 이 대표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빠르게 법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난 9일 총선 전날 출석해 11분 동안 입장문을 읽으며 선거운동을 방불케 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죠.
하지만 지지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오전 재판이 끝나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나온 이 대표는 몰려든 지지자들을 향해 천천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지지자들의 구호도 변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짧고 굵은 구호를 연호했습니다. 총선 전에는 없던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됐습니다. 일전에는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면, 이날은 총선 승리를 축하하는 분위기가 감지됐습니다. 점심 시간 법원 1층 식당에서 삼삼오오 모인 지지자들의 대화 내용도 달랐습니다. ‘정권 심판’에서 ‘넥스트 플랜’으로 바뀌었더군요.
이날 재판을 받은 당선인이 한명 더 있습니다. 돌아온 올드보이,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죠. 박 전 국정원장은 4년 만에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박 전 원장에게도 연호가 이어졌습니다. 박 전 원장은 지난해 3월부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의혹 재판의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박 전 원장은 알쏭달쏭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재판 중간 잠시 나와 대기 중인 기자를 향해 ‘검지 손가락 1개’를 들어올린 것이죠. 한참 후 기자가 손가락의 의미를 묻자 “그냥 인사를 한 것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최고령·최대 득표율(92.35%) 당선자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요?
이 대표의 법정 안으로 가보겠습니다. 참고로 박 전 원장의 재판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어 전달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바랍니다.
여유로운 법정 바깥과 달리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이날 재판은 이 대표에게 꽤 중요했습니다. 핵심 증인들이 출석했기 때문입니다.
해당 재판은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대표가 허위 사실을 유포(공직선거법 위반)했다는 혐의입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5년 성남시 백현동의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를 아파트 단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땅의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한 것이 개발을 수행한 민간사업자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는 의혹입니다.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자 이 대표는 4단계 상향은 “국토부가 (상향 하지 않을 경우)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답했는데요, 검찰은 답변이 ‘허위 사실 유포’라며 기소했습니다.
이날 재판에는 국토부 관계자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담당 과장으로서 성남시에 수차례 보낸 공문의 ‘의도’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2014년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기조에 따라 백현동에 있던 한국식품연구원이 성남시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백현동은 ‘자연녹지지역’으로 아파트를 짓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매각이 지지부진했습니다. 결국 국토부가 용도 변경에 '협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성남시에 보냈습니다.
이 대표측은 국토부의 공문이 용도 변경을 ‘강제’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국토부는 ‘협조 요청’에 불과할 뿐 결국 선택은 성남시 몫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재판 내내 침묵을 지키던 이 대표는 국토부 관계자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직접 신문을 시작했습니다.
이재명(이하 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정권 바뀌면서도 계속 추진하는 중요사업이지 않았나요?
증인(이하 증)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이 담당부서 과장인데 다 모른다고 하시고.
증 기억이 안 납니다.
이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혁신도시법)을 보면 지자체장 의무 조항이 있습니다. 명확하게 써져있잖아요. 지자체장은 시책에 따라 이전 위한 조치를 수립해야 한다고 ‘의무조항’을 만들어놨잖아요.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를 직접 명시한 걸 알고 있었어요?
증 오늘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이 국토부가 성남시에 3번이나 공문을 보냈는데 국가균형발전법에 따라 요청한다고 써져있어요. 이 조항에 요구한거 아니냐 이말입니다. 모르겠어요?
증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이 대표는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을 강하게 드라이브 걸던 상황을 강조했습니다. 국토부의 공문을 “단순 협조 요청이라고 볼 수 없다”는 답변을 국토부 관계자의 입으로 듣기 위해서죠. 하지만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이 대표는 답답함을 표현합니다.
이 결국 국토부가 식품연구원이 신청에 맞춰서 협조해주라는 공문을 보내는건 (성남시가) 식품연구원이 해달라는대로 해주라는 뜻 아닙니까?
증 식품연구원이 뭘 요구하든지 어떤 용도로 해줄건지는 지자체장이 판단해서 부지가 원활하게 매각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이 제가 묻는건 그게 아니고. 자꾸 그렇게 발뺌하지 마시고요. 객관적인 팩트는 식품연구원이 2종 주거지역으로 바꿔달라고 2번 신청했단 말이예요. (국토부는)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3번을 보냈는데. 그에 맞춰서 식품연구원이 용도 번경해 달라는 대로 해달라는 것 아닙니까?
증 그건 받아들이는 분의 생각이고 국토부가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강요가 아니라 그런 의미로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겁니다.
증 아닙니다. 하라는 대로 해주라고 하면 안되는 거죠.
이 대표측은 결국 유리한 증언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날 재판을 끝냈습니다. 오후 5시 40분. 다시 법원 바깥 폴리스 라인으로 사람이 몰립니다. 회전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이 대표가 손을 흔듭니다. 지지자들은 이 대표가 탑승해 나가는 차를 향해 환호를 보냅니다. 장장 7시간이 훌쩍 넘는 이 대표의 법정 공방과 지지자들의 무한 대기도 일단 끝났습니다.
물론 이 광경은 당분간 반복될 것입니다. 총선이 끝나도 재판은 계속되니까요. 오는 16일 이 대표는 다시 법원을 찾습니다. 이번에는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 및 성남FC 불법후원금 사건입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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