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가 피눈물로 전한 위로, '원더풀 월드'의 서슬 퍼런 일침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4. 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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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월드’가 꺼내놓은 피해자들의 아픔, 그 울림이 컸던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이제 청와대가 코 앞인데 벌레 한 마리 밟았다고 가던 길을 멈춰서야 되겠나? 아니면 밟아 죽이고 가야겠나?" 세상을 떠난 강건우(이준)가 들고 다녔던 태블릿PC에서는 유력한 대권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김준(박혁권) 의원의 추악한 실체가 담겼다. 그 녹음된 목소리를 듣는 은수현(김남주)은 태블릿PC를 마치 죽은 아들처럼 꼭 껴안은 채 피눈물을 쏟아냈다.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가 드디어 숨겨진 진실을 꺼내놨다. 은수현 아들의 죽음은 사고가 아닌 사건이었다. 권선율(차은우)의 아버지 권지웅(오만석)이 저지른 뺑소니 사고로 위장되었지만, 실상은 김준 의원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후 살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처리를 권지웅에게 맡겼고, 이식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아들을 돕는 조건으로 권지웅은 끝내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 살려달라며 엄마를 부르는 아이를 차로 밟아 살해한 것.

마침 문밖에서 그 태블릿PC에 담긴 녹음 내용을 듣게 된 권선율 또한 사건의 모든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아버지는 그저 뺑소니 사고를 뒤집어쓴 게 아니라, 살인을 한 것이었고 그 선택은 충격적이게도 자신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어머니의 교통사고 역시 사고로 위장된 것이었고 그렇게 된 건 태블릿PC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원더풀 월드>는 이 사건의 진범으로서 대권후보 김준을 세워둠으로써 '정의'의 문제에 얽혀있는 정치권력이라는 문제의식을 끄집어낸다. 강건우라는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로 그려져 있지만, 사고가 아닌 사건이었고 그것이 대권후보의 자기 영달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스토리는 이 작품이 얼마나 현실에 대한 서슬퍼런 일침을 담고 있는가를 실감케 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원더풀 월드>를 보며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를 떠올렸을 게다. 국민 모두를 슬픔에 빠뜨렸던 참사가 터졌고 그래서 피해자들이 생겨났지만 그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그 현실을, <원더풀 월드>는 은수현이라는 아이를 잃은 엄마의 시선과 심정을 공유해 그려냈다. 제대로 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시스템이 야기하는 또 다른 악순환까지.

하지만 상대는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꼽히는 김준이다. 그 권력 앞에 심지어 피해자들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원더풀 월드>가 보여주는 건 어쩌다 서로가 서로를 찌르게 됐던 피해자들이 사건의 진상을 마주하고 다시 맞잡는 두 손이다. 아버지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 대신 사과하는 권선율에게 은수현은 그의 아버지를 차로 치어 죽인 후에도 선처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던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나는 그런 선택을 했고, 그게 옳다고 믿었어. 근데 선율아 너한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줬다. 나도 미안하다."

그러나 손을 맞잡은 은수현과 권선율이 진짜 진실을 폭로하고 그 부패한 권력의 꼭대기에 서려는 김준을 막으려 나설 때, 은수현의 남편이자 죽은 강건우의 아버지인 강수호(김강우)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저들 권력자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들어 아내만은 지키고 싶다는 핑계로 그렇게 말하지만 결국은 권력에 굴복하고 그 줄을 잡으려는 비겁한 선택이다.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우리 건우 같은 일은 없었어야지." 권력에 굴복한 채 그렇게 말하는 강수호에게 은수현은 단호하게 일갈한다. "건우를 죽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사는 일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은수현의 싸움은 이제 한 아이를 잃은 엄마의 투쟁을 넘어서, 그런 피해자들 앞에서도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권력만을 쟁취하려는 시스템과의 투쟁으로 확장된다.

은수현과 권선율의 관계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피해자들의 연대는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 아픔을 공감하는 모든 이들의 연대다. 그런 점에서 보면 피해자들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아픔을 감정적으로 공유하게 만들어준 <원더풀 월드>라는 드라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피해자의 입장을 아이를 잃은 엄마의 절절한 피눈물로 공감하게 해준 김남주의 연기는 그 자체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또한 그 어떤 위협 속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서슬퍼런 눈빛으로 대변해준 모습 역시. 어느덧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코앞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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