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유노북스에서 ‘50에 읽는 논어’(2021년), ‘50에 읽는 장자’(2022년) 등이 출간됐어요. ‘50에 읽는 논어’는 25만 부 넘게 판매될 정도로 50대 시리즈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40대를 떠올렸어요.”
한국인 중위 연령이 40대라는 것도 고려했다.(올해 기준으로는 46.1세)
“그런데 어떤 내용을 담아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하니 그저 따뜻한 말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당시 쇼펜하우어의 문장이 소셜미디어에 많이 공유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 굉장히 직설적이었죠.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삶을 예리하게 간파한 사람이 궁금해졌어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주제로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강 선생님에게 연락드리니 ‘나는 논문을 써 온 사람이어서 집필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고사하셨어요. 여러 필자들의 목록을 작성하긴 했지만 다른 필자는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강 선생님에게만 제안했어요. 선생님이 ‘철학이 전문서에서 머무는 것을 넘어 대중에게도 쉽게 다가가는 학문이 되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머릿속에 맴돌았고요. 출간 제안을 거절하긴 했지만 약간의 여지를 남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이 팀장은 철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며 강 연구원을 6개월 가까이 설득해 마침내 수락을 받아냈다. 강 연구원이 쇼펜하우어에게 영감을 받아 철학을 전공하게 된 점도 파고들었다. 강 연구원은 “이 팀장은 포기라는 걸 모르더라”며 웃었다.
하지만 목차를 만들고 글쓰기가 시작되면서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처음 원고를 보내니 이 팀장이 한숨을 쉬더라고요.(웃음)”(강 연구원)
“내용이 딱딱하고 어려워서 이해가 잘 안 됐거든요. 선생님은 쇼펜하우어 책을 원서로 다 보셨기 때문에 방대한 내용을 압축하고 쉽게 쓰기가 더 힘드셨을 거예요.”(이 팀장)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건 쉽게 쓰는 것이다. 가령, 마음의 평정을 찾는 네 가지 방법으로 쇼펜하우어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질투를 경계하며 △큰 희망을 걸지 말고 △세상에는 거짓이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처럼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이 책은 격렬한 산고 끝에 나왔다.
강 연구원이 원고를 보내면 이 팀장은 “이 문장은 40대가 어떤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을까요?”, “이 내용은 이해가 안 되는데 더 풀어 쓰실 수 있나요?”라며 하나하나 짚어가며 물었다. 수없이 원고가 오가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강 연구원은 “논문 글쓰기에서 쉬운 글쓰기로 넘어가는 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애써 쓴 내용을 통째로 빼자고 할 때면 “이게 내 책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지쳐가던 강 연구원은 존경하는 선배가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나자 무너졌다.
“제 글을 인정해주신 유일한 분이었어요. 제게 ‘잘 될거다’라며 확신을 주셨고요. 그런 형이 떠나시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강 연구원은 이 때를 포함해 책을 쓰다 두 번 ‘잠수 탔다’고 말했다. 이 팀장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보통 ‘잠수 탄다’고 하면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는 걸 말하잖아요. 어디 있는지 위치 파악도 안 되고요. 선생님은 집필을 멈추고 연락을 안 하셨을 뿐이에요. 한두 달 뒤에 제가 연락하면 전화는 받으셨어요. 마음이 바뀌셨는지 조심스레 여쭤봤죠.”
“1차 원고를 보니 마음이 가는 걸 느꼈어요. 제 마음 속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움직였다고 할까요. 저자 중에는 글을 고치는 걸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선생님은 ‘출판은 이 팀장의 분야이니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고 하신 게 큰 힘이 됐습니다. 글은 저자가 쓰고, 저는 ‘요구하는 사람’인데 요구하는 건 쉽잖아요. 이를 모두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2023년 9월이라는 출간 시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맞추려 했다. 8월은 너무 덥고, 연말에는 책이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출간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하석진이 이 책을 읽는 모습이 나와 화제가 된 것도 도움이 됐다. 하석진은 “인생은 혼자다. 혼자서도 단단해질 줄 알아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했고, 전현무 역시 “나도 이 책을 읽고 있다”고 밝혀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책 자체가 힘을 갖지 못하면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기 어렵다. “1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요즘 출판계에서 7개월 만에 30만 부 넘게 팔린 건 놀라운 일이다. 책 판매 속도는 꺾이지 않고 지금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책에는 강 연구원의 생각이 많이 들어 있다. 이는 이 팀장의 아이디어였다.
“저자의 생각이 녹아있어야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삶과 연결짓고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이 팀장)
강 연구원은 50세가 넘어 책을 쓰게 된 것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0년 전이라면 이렇게 못 썼을 것 같아요. 교만하거나 얕게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40대를 지나고 50대가 돼 보니, 인생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고 애썼다고 해서 다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통렬하게 깨달았거든요. 쇼펜하우어는 마흔 살 무렵 헤겔에게 눌려서 직장도 잃고 강아지와 살았습니다. 잘 풀린 건 그 이후부터였죠. 그런 경험이 그의 철학에도 반영됐다고 봅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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