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영화는 종종 위험한 섹스의 반란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한다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여성감독 카트린느 브레야의 영화는 역설적으로 일본 로망 포르노의 내러티브 구조를 닮았다. 로망 포르노는 20분 안에 한 번씩 성애 묘사, 그것도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넣을 것을 규칙으로 한다. 브레야의 영화들도 그렇다. 다만 일본 로망 포르노의 섹스 신은 얄팍한 서사를 감추고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서지만 카트린느 브레야의 그것은 오히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성적 강박증, 그 보수성과 완고함을 건드리고 깨뜨리기 위함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둘은 엄연한 차이를 보인다. 1999년 카트린느 브레야가 <로망스>를 발표했을 때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영화 속 남녀가 서슴없이 자신들의 성기를 노출하는가 하면 극중에서 실제 섹스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후 발표한 2001년작 <팻 걸>, 2002년작 <섹스 이즈 코미디>도 마찬가지였다.
올해로 76살이 된 카트린느 브레야는 자신의 성적 판타지, 그 위험한 도발성이 여전함을 과시하는 양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다. <라스트 썸머>이다. 예전만큼 흥행이 되지도, 관객의 관심을 끌지도 못한다. 이제 카트린느 브레야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섹스를 소재로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더는 새롭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관객층이 브레야의 성 해방 논리를 이해하기에는 심하게 보수적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젠더 갈등은 영화의 흥행 노선을 바꾸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라스트 썸머>의 얘기는 기본적으로 근친상간이다. 주인공 안느(레아 드루케)는 청소년 범죄 전문 변호사이다. 그녀는 남편 피에르(올리비에 라보르딘)와 입양아 둘을 키우며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 간다. 네일 숍을 하는 착한 여동생 미나(클로틸드 쿠로)가 거의 유일한 말동무다. 안느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인데 그건 그녀가 어릴 때 잘못된 중절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느는 남편의 전처 아들이자 의붓자식인 테오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남자 아이는 막 16살 정도에 불과하다. 청소년이다. 테오는 끈덕지게, 그러나 호기심 많은 아이답게, 안느의 과거 성 경험을 캐묻는다. 안느는 이렇게 말한다. "내 어머니는 남자가 많았어. 그래서 남자 얘기를 종종 하곤 했지. 끔찍했어. 내 어머니 때는 피임의 시대였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잤지. 나는 에이즈 시대의 사람이야. 갑자기 모든 게 차단됐지. 우린 달라." 그래서 테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남자 관계가 많지 않았다, 고 얘기하는 것 같지만 안느의 성적 욕망, 혹은 욕망 그 자체가 닫힌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마음 속에서 은밀하게 테오를 갈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를 닫고 있는 것은 사실 욕망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을 추락으로 이끄는 욕망에 굴복하는 행위이다. 테오를 안고 섹스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어린 남자와의 섹스 때문에 딸 아이 둘을 잃고, 남편과 헤어지고, 안락한 중산층의 집을 떠나게 되는 사태는 두렵다. 아니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안느는 생각한다. 피임의 시대에서 에이즈의 시대로, 지금은 코로나의 시대가 됐지만, 그래서 더욱 더 세상의 문은 닫혔지만 여자의 욕망은 결코 가두어진 적이 없다. 모든 걸 잃을 수는 결코 없지만 욕망마저 버릴 수 없으며 그건 잘 관리하면 된다고 안느는 생각한다.
중년의 여자와 청소년 남자의 애정 행각과 눈을 자극하는 섹스 신, 그 '逆롤리타 신드롬'의 장면들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영화가 진부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섹스신마저 롱테이크로 찍었다. 두 남녀의 침대 퍼포먼스는 기본적으로 3분이 넘게 이어진다. 그리 불쾌하지도, 신선하지도, 야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다. 여성주의 감독답게 섹스의 시선은 카메라를 아래에서 찍는 것으로 처리했다. 그러니까 아래 누워 있는 여성의 시선으로 찍혀 있다. 대부분 영화의 섹스신은 남성의 시점 쇼트로 구성돼 있다.
어쨌든 꽤나 노골적이긴 한데 지루하고 일상적인 톤이어서 오히려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게 이어지던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극 중후반에 갑자기 롤러코스터를 탄다. 아이 테오가 남편 피에르에게 자기가 아빠인 당신 여자와 잤다는 것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제 영화 속 가정은 풍비박산이 날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이때 안느의 놀라운 선택이 이어진다. 그녀는 모든 걸 부인하고 아이를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 남편인 피에르가 아들 테오와의 불륜 관계를 추궁할 때 브레야의 카메라는 안느의 얼굴로 클로즈 업해 들어 간다. 안느의 눈은 처음엔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서 방어 논리를 만들려고 여러 생각을 굴리는 것이 느껴진다.
때론 사랑 따위는 없다. 사랑은 치기가 아니다. 사랑은 자신의 욕망을 지키는 도구이다. 그래서 사랑을 꼭 보란 듯이 외연화할 필요는 없다. 조용히 욕망을 채워 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사랑은 평생을 갈 수가 있다. 삶은 비명처럼 계속되지만 사랑은 이어질 것이다.
<라스트 썸머>는 여성 스스로 욕망의 주체로 나섰을 때 우리가 지금껏 구축해 왔던 여러 논법들, 관계의 규칙들, 성의 문제들을 포함해 욕망을 제약해 온 여러 가지의 것들이 한꺼번에 뒤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어린 테오가 안느를 고발하는 것은 오히려 사랑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처럼 상대를 가지겠다는 식의, 소유욕에 입각한 사랑은 결국 둘의 관계를 적대적으로만 만들 뿐이다. 만약 테오가 그녀와 섹스하고 사랑하는 데만 더 치중했다면, 그렇게 가지려고 우습게만 굴지 않았으면 안느와의 관계는 지속됐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비명이라손 치더라도 삶은 계속됐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남편 피에르가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피에르는 결국 안느의 욕망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그것을 그녀가 주도하게 하는 한 자신과 그녀의 사랑은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도 어쩌면 자본의 논리이자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여성학이고 사랑학에 불과할 수도 있다. 주인공 안느가 욕망하되 그 와중에도 물적 토대는 지키려고 하는 심사이자 심보를 보이는 것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만큼 여성의 욕망은 복잡하며 얄팍한 정치사회경제적 이론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은 모두, 영화 속 테오가 그렇듯이, 마지막 여름을 통과하며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또, 안느처럼 어느 날 불쑥 다시 한번 '그 라스트 썸머'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가장 자유롭고 뼛속 깊이 욕망을 해방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며, 그럴 때에는 반드시 자신 스스로가 주체가 돼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이 강조하려는, 이 영화의 테마이다.
프랑스 북부 아미앵 고등학교의 국어(프랑스어) 교사였던 브리지트 트로뉴는 세명의 자식을 가진 40살에 자신의 제자인 15살 남학생의 구애를 받았다. 남자 아이의 부모는 위험을 느껴 아이를 파리로 보냈지만 아이의 줄기찬 사랑 고백은 여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여자는 남편과 이혼하고 파리로 전근 간다. 그리고 여인과 아이의 연애는 계속된다. 결국 둘은 2007년 결혼한다. 남자는 서른 살, 여자는 쉰 다섯이었다. 이 남자는 10년 후 프랑스의 대통령이 된다. 그의 이름은 마크 롱이다.
영화 <라스트 썸머>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이 욕망을 해방할 때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열리고 자유로워진다. 영화와 세상, 세상과 영화는 종종 위험한 섹스의 반란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한다. 영화 <라스트 썸머>는 지난 4월 3일 개봉했으며 3660명의 관객을 모으는 중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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