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 대신 탈부착… 전기차 “5분이면 ‘식사’ 끝!” [S스토리]

백소용 2024. 4. 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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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 ‘車 배터리 교환 사업’ 시동
현대차·LG엔솔 등 ‘스테이션’ 운영
번호판 인식 후 자판기처럼 쏙 나와
자율주행 로봇이 배터리 옮겨주면
사람과 협동해 손쉽게 바꿀 수 있어
급속 충전 20∼40분에서 시간 단축
미국·중국선 시장규모 갈수록 커져
배터리 재활용에 자원 재순환 장점
교환 과정 안전성 확보는 해결 과제
차량을 몰고 한 건물에 들어서자 입구에서 차량 번호판을 인식해 이에 맞는 배터리팩이 자판기에서 물건이 나오듯이 보관소 밖으로 실려 나왔다. 배터리는 충전돼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된 상태다. 500㎏의 육중한 배터리팩을 자율주행 로봇이 건네받아 차량을 올려둔 리프트 아래로 옮겼다. 머신비전 기술로 배터리와 차체가 매칭됐다. 로봇과 사람이 협동해 차량 바닥의 배터리 체결 볼트를 빼고 배터리를 교환했다. 입구에 들어선 뒤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5분이다.

이는 국내 최초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에서 배터리 교환(스와핑) 사업을 시작하는 현대차그룹 분사기업 피트인의 배터리 교환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지난 9일 방문한 경기 안양의 ‘피트인 스테이션’은 다음 달 사업 시작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었다.

해외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교체 시장이 국내에도 열린다. 그동안 국내 전기차 시장 상황과 기술적 한계로 사업성이 없다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전기차 보급 등 여건이 무르익은 만큼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쿠루의 배터리 교환 시연 모습
◆택시·이륜차 배터리 교환 사업 시작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배터리 교환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현대차그룹 사내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지난해 독립한 피트인은 택시 등 영업용 전기차를 대상으로 배터리 교환, 배터리 관리 등을 포함한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차도 충전된 배터리를 교환하기 위해 배터리가 탈부착되는 전기차 제작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충전하는 데 급속 20~40분, 완속 4~7시간씩 걸리는 시간을 5분 이내로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지난 2월 출범한 국토교통부의 모빌리티 혁신위원회에서 현대차의 전기차 배터리 교환형 차량 제작 사업 등을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로 의결한 데 따른 것이다. 특례에 따라 전문기관(자동차안전연구원)의 안전성 확인을 받아 배터리 탈부착 차량의 시험 제작을 할 수 있다.
경기 안양에 있는 피트인 스테이션의 모습. 백소용 기자
현대차는 배터리 탈부착 전기차 제작 실증을 거쳐 하반기에 실제 장거리 운행이 많은 택시 등 사업자를 대상으로 충전 스테이션을 이용한 교환식 충전 서비스를 실증하기 위한 추가 규제 특례를 추진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사내독립기업 쿠루는 전기 이륜차를 대상으로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된 배터리로 교체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BSS)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쿠루의 강점은 촘촘히 위치한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이다. 현재 배달 수요가 많은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 등 한강 이남 지역을 중심으로 평균 1㎞ 거리에 위치한 180여대를 운영 중이다. 올해 안에 서울 전 지역으로 확대하고 2025년까지 수도권에 1000대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이용자는 모바일 앱을 통해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의 혼잡도를 확인하고 교환할 배터리를 예약할 수 있다.

쿠루 관계자는 “하루 125㎞를 달린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에 연료비, 보험료 등을 포함해 약 47만원이 들지만 쿠루의 무제한 요금제(월 11만원)를 사용할 경우 23만원으로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중국 등 배터리 교환 활성화

해외에서는 이미 전기차 배터리 교환 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2019년부터 배터리 교환을 녹색산업으로 지정하고 보조금 지급, 기술 육성에 집중하며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한국무역협회의 ‘전기차 배터리 스와핑의 우리나라 도입 검토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의 배터리 교환 시장 규모는 45억위안(약 8500억원), 배터리 교환소는 1406곳이다. 2025년에는 교환소 3만개 이상, 1000억위안(약 18조8000억원) 이상의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피트인 스테이션의 리프트. 백소용 기자
중국 전기차 회사 니오(NIO)는 중국뿐 아니라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헝가리 등에 배터리를 교환할 수 있는 전력 교환 스테이션 2200개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배터리 탈부착을 할 수 있도록 개발된 자사 차량에 한해 교환 서비스가 제공된다. 니오의 설명에 따르면 3분 만에 배터리 교환이 완료된다.

미국 배터리 교체 스타트업 앰플은 2021년부터 미국에 자율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는 자동차 회사 스텔란티스도 앰플과 손잡고 배터리 교체 시장에 뛰어든다고 밝혔다. 스텔란티스는 올해부터 스페인에서 피아트 500e 100대를 차량 공유 서비스로 운영하며 배터리 교체를 선보이고 향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전기차 업계가 배터리 교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전기차 보급률이 꾸준히 늘어나며 유선충전 방식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배터리 교체는 충전보다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배터리 성능도 관리할 수 있다. 사용 후 배터리의 재활용 등 자원 재순환 측면에서도 사업성이 있다. 배터리 교환 과정에서의 안전성 확보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중국 니오의 전력 교환 스테이션. 니오 제공
그동안 국내에서도 배터리 교환 시장 조성 필요성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앞서 2013년 르노가 제주도에서 배터리 교환 사업을 추진했지만 당시 전기차 주행거리가 짧은 데다 시설과 인력 부족 등으로 중단됐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국내에서 처음 배터리 교환 사업을 시도했을 당시에는 모델 디자인 등에 제한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 부분 해결된 상태”라며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거쳐 곧 정상화되면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기업에서 향후 교환형, 구독모델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권 ‘피트인’ 대표 “수명 짧은 영업용車 배터리 해결에 도움”

“단순히 충전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업용 전기차의 수명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김세권(사진) 피트인 대표는 9일 경기 안양의 피트인 스테이션 사무실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현대차그룹 연구원으로 15년간 일하다가 사내 스타트업을 만들어 9개월 만에 조기 분사했다. 연구원 시절 기아 K5 1세대, 현대차 싼타페 DM, 제네시스 G80 등 다양한 차량 개발에 참여하다가 전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택시 업계에 주목하게 됐다. 김 대표는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기사의 전기차 만족도가 높았지만 1년에 7만∼8만㎞씩 뛰다 보니 배터리가 고장나서 애프터서비스를 맡긴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영업용 전기차는 보증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하나 생각을 이어가다가 미리 준비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택시는 개인용 차량보다 배터리를 자주 충전해 배터리 수명이 짧고, 전용 충전 인프라도 없다. 피트인은 신품 성능과 유사한 재제조 배터리와 원래의 차량용 배터리를 번갈아가며 교체해준다. 이를 통해 전기 택시의 운행 기간을 2배 늘리고 충전의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향후 여러 택시가 배터리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확대해 운영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택시 사업자는 배터리 리스크를 줄이고, 배터리는 대기업이 재활용할 수 있어 배터리 순환경제 가치사슬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피트인은 15분 이내 사람과 로봇이 협업해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처음부터 배터리 교체용 전기차를 만들어 전자동 교체 시스템을 구축한 중국의 니오 등과 비교하면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구조 변경 없이 다양한 모델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배터리 교체 과정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고 배터리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충전과 보관 시설도 구축했다.

김 대표는 “배터리팩을 수천번 떼어도 볼트 마모 없이 안전하게 붙어있을 수 있도록 반복체결합 실험을 하는 등 보이지 않는 부분에 기술력이 집중돼 있다”며 “배터리를 뗄 때 냉각수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 냉각수 밸브형 퀵커넥터도 개발했다”고 말했다.

피트인은 향후 상업용 목적기반차(PBV)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인도네시아, 인도 등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빠른 해외 진출도 모색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PBV 신차로 확대해 배터리를 공유해서 쓰는 시장을 만들고 싶다”며 “올해를 시작으로 수도권과 지방 거점을 더 만들고 배터리 회사들과 협업해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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