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개업 안 한 것 반성한 전직 법무장관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4. 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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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캐나다 대법원장 일행이 한국을 방문했다.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 주최로 환영 만찬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대법원장 유고(有故)로 박우동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어 "주변에서 '법무장관도 지낸 사람이 개업 안 한 것은 훌륭한 것'이라고들 한다. 처음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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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캐나다 대법원장 일행이 한국을 방문했다.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 주최로 환영 만찬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대법원장 유고(有故)로 박우동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출범 첫 해 서슬 퍼런 김영삼(YS)정부가 주도한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김 대법원장의 재산이 너무 많은 것으로 나타나며 사법부가 궁지에 몰린 때였다. 일국의 대법원장을 상대로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제기됐다. 김 대법원장이 자진 사퇴함에 따라 사법부 수장이 공석이 되고 말았다. 당시 만찬장에서 캐나다 대법원장의 부인이 “자기 돈으로 땅을 사는 게 잘못인가”라고 묻기도 했다고 훗날 박 대법관은 회상했다.
공직자 재산공개의 파장은 사법부에만 머물지 않았다. 검찰도 직격탄을 맞았다. 박종철 검찰총장 역시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 전 대법원장이 사표를 낸 지 며칠 만에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검사장인 정성진 대검 중수부장도 사의를 밝혔다. 투기 의혹은 없었지만 상속받은 재산이 너무 많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선후배와 동료들이 뜯어 말렸으나 ‘조직에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로서 전관예우를 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법학자로 변신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국민대 교수와 총장으로 일했고, 그 중간인 1999년 한국형사법학회장도 지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재물운은 있어도 관운은 없는 인물’이라고 여길 법하다. 그런데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앞둔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노 대통령은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옷 벗은 건 말이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하며 그를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했다. 청렴위원장을 마친 그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노무현정부의 마지막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인생의 황혼기인 60대 중후반 나이에 뒤늦은 관운을 누린 셈이다. 검사 출신으로서 2017년부터 2년간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맡아 사법부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 정성진 전 법무장관이 12일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양형위원장이던 2017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조인으로서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나는 변호사 개업을 못 했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주변에서 ‘법무장관도 지낸 사람이 개업 안 한 것은 훌륭한 것’이라고들 한다. 처음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변호사라는 게 원래 공익적이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일”이라며 “어려운 사람 위해 가방 들고 법정에서 한두 시간 기다린 적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법률가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 했다는 반성이 든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쯤 되면 전관예우 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발언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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