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의 ‘먹방’ 통해 음식의 의미를 되짚다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2024. 4. 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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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식을 새 관점으로 바라본 신개념 연극 《푸드》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재미와 메시지 동시에 선사해 주목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언제 밥 한번 먹자."

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인사를 건넨다. 한국인들은 잘 안다. 그 말이 진짜로 식사 약속을 잡자는 것이 아닌, 우연한 만남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의례적 인사라는 것을. 왜냐하면 우리 한국인은 사교보다 밥에 더 진심인 사람들이라 그렇다.

연극 《푸드》의 한 장면 ⓒ강동문화재단 제공

음식에 진심인 연극 《푸드》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강동아트센터'에서 얼마 전 특별한 연극이 열렸다. 《푸드》(FOOD)라는 연극이다. 제목이 '먹거리'라니? '혹시 셰프(chef)가 주인공인 연극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작품을 들여다보자. 이 작품은 2022년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 초연 이후 영국과 호주를 거쳐 한국에서 아시아 초연을 가졌다. 1인극으로 '인류가 음식을 먹는 방법과 그 이유에 대한 명상'이 주제다.

작가, 연출가, 배우 등 1인 3역을 맡은 제프 소벨(Geoff Sobelle)은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마술사, 광대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는 이 작품 이전에도 '의식주' 같은 일상적인 소재에서 특별한 의미를 끌어내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제프 소벨이 음식을 주제로 해당 작품을 다루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2019년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집'(住)을 주제로 탐구하는 《홈》(HOME)을 공연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그 행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그 시작을 이끌어준다. 작품은 관객들에게 '나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지?'라는 평범하고, 개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그 음식의 재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탐구적인 질문까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들은 왜 음식을 먹는가?'라는 철학적 의미가 담긴 질문을 던진다.

연극의 모든 과정은 단 한 명의 아티스트가 이끄는 독특한 무대에 관객들이 몰입하면서 이뤄진다.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대 위에는 가로 20m, 세로 21m 크기의 하얀 식탁보가 덮인 초대형 식탁이 놓여있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각종 음식 도구를 형상화한 100개가 넘는 플라스틱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이 공간은 일반 식당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음식에 대한 메타포로 가득 찬 연극 무대임을 나타내준다.

웨이터 복장을 한 제프 소벨이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에 나와 손님(관객)을 맞이한다. 식탁을 따라 30명의 관객이 앉는다. 그 뒤편에는 식탁과 관객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일반 좌석이 있다. 관객에게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의 작은 소음을 비롯해 냄새와 감촉에 집중할 것을 부탁한다. 관객들이 이에 화답하면서 '참여하는 공연'이 만들어진다.
전체적인 무대가 오픈되다 보니 관객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소의 민망함이 흐른다. 흥미진진함이 극장 전체에 솔솔 섞여오는 순간, 제프 소벨이 식탁에 앉은 관객들에게 와인을 한 잔씩 따라주고 관객은 그것을 마신다.

공연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며, 구간별로 장르가 미묘하게 바뀐다. '1부'는 셰프가 관객 사이를 돌면서 하나씩 메뉴를 선택하게 하고, 실제로 그 메뉴를 즉석에서 가져오면서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종의 '셰프 토크'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술사이기도 한 그는 사전에 준비된 대본에 맞춰 적절한 트릭을 구사하면서 하나씩 새로운 음식을 등장시켜 관객들이 놀라는 모노드라마로 펼쳐 나간다.

구운 감자 요리를 주문받으면, 흙에 씨앗을 심어 자란 감자를 캐내 알루미늄 호일에 싸서 구운 뜨거운 요리를 즉석에서 내놓는다. 북극 생선 요리를 만들기 위해 에스키모 복장을 하고 얼음을 깨서 물고기를 잡는 동안 식탁 전체는 오로라 빛을 받는 북극으로 바뀐다. '2부'는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다. 기나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손님이 모두 떠난 빈 식탁에 앉은 그는 남은 식재료를 하나둘 입에 넣기 시작한다.

연극 《푸드》의 한 장면 ⓒ강동문화재단 제공

관객에게 새로운 재미와 경험 선사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남은 과일, 채소는 물론이고 와인까지 병나발을 분다. '먹방 유튜버'가 울고 갈 만한 이러한 과잉 섭취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하게 음식을 바라보던 관객의 시선을 정반대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음식을 먹는 방식도 야만적이고 게걸스러워진다. 마치 인간이 수렵 시대에 그랬을 것 같은 문명화 이전의 음식문화 시대로 시계가 돌려진 것 같다. 관객들은 적당히 먹으면서 사교와 취향이라는 현대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며 음식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하는 기본적이고도 적나라한 음식의 원래 목적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3부'는 신체극에 소품 쇼가 더해졌다. 넓은 식탁보가 걷히고 그곳은 흙이 있는 땅이 된다. 이곳에 씨를 뿌리고 움직이는 미니 트랙터가 이 땅을 가로지르자 밀밭에서 줄기들이 솟아오르며 인류가 수렵 시대에서 경작을 생산수단으로 도입한 농업 시대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인류 문명사회의 발전 속도는 눈부시게 빨라진다. 이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장난감 트럭과 미니어처 건물로 상징되는 수많은 소품을 관객들이 직접 만져보고 땅 위에 배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산업화와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류가 공존해야만 하는 절박한 세상을 풍자한다.

이 작품은 재미와 메시지를 모두 갖추고 남녀노소가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연극이다. 현실에서 먹는 것에 여전히 진심인 한국인들에게 음식 그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남다른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관객들은 이렇게 함께 모여 음식과 그 이면의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특별한 시간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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