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패배 여당 주도권 다툼 치열할 듯…야권은 친문·조국이 변수
민주당 장악한 이재명, 조국 대표 부상으로 야권 분열 맞을 수도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대선 전초전'인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했지만 중량급 정치인이 상당수 생환하면서 여권의 재편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사실상 '원톱'으로 선거를 진두지휘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당권과 차기 대권을 둘러싸고 중진급 당선인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尹, 안철수·나경원보다 권영세·주호영 선호
한강벨트의 초접전 지역인 동작을에서 정권심판론을 뚫고 이긴 나경원 국민의힘 당선인이 4년 만에 여의도에 복귀한다. 나 당선인은 여론조사상에서 선거 막판까지 류삼영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초접전 양상을 보였으나 10%포인트 넘는 격차로 승리했다. 나 당선인은 21대 총선에서 판사 출신 정치 신인인 이수진 민주당 의원에게 패배한 후 4년간 절치부심 바닥을 훑어왔다. 권영세 의원(용산)과 함께 서울 최다선인 5선 중진이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동작을을 8번이나 방문해 지원 유세를 했는데도 살아 돌아오면서 당권 도전에 나설 명분을 충분히 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 지역 최대 승부처로 꼽힌 성남 분당갑에서 '친노 좌장'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을 이긴 안철수 의원도 여당 대표 후보에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비윤(非윤석열)계'인 그는 지난해 3·8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했지만 당시 나 당선인과 함께 대통령실의 견제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총선 이후 대통령실의 입김이 줄어들면서 안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로서 보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첫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의원도 5선 고지를 달성하며 유력 여당 대표 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정치 1번지'가 된 용산을 지켜낸 권 의원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2년 선배로 대학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 때는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이재명 대표가 용산을 정권 심판의 상징 지역으로 삼고 공식 선거운동 시작과 끝을 이 지역에서 하며 전력을 다했으나 권 의원이 수성하면서 그의 체급이 한층 더 올라가게 됐다.
경남 양산을에서 김두관 민주당 후보를 꺾고 4선 고지를 밟은 김태호 의원의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야당 강세 지역을 탈환해 달라는 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존 지역구(산청·함양·거창·합천) 대신 양산을에 도전해 살아남았다. 더 이상 보수 텃밭이 아닌 부산·경남(PK) 지역에서 싸워 이긴 만큼 당권 도전의 명분이 충분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구 수성갑에서 6선 고지에 오른 주호영 의원이 오랜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당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TK 외 지역에서 중진급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 주 의원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분위기다. 주 의원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와 2020년 21대 총선 대패, 2022년 이준석 전 대표의 징계 사태 때 등 당이 위기에 몰렸을 때 리더 역할을 무난히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용산(대통령실) 주변에선 윤 대통령이 차기 당권을 놓고 다소 껄끄럽게 여기는 나경원·안철수 당선인보다 권 의원이나 주 의원을 더 선호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 밖에도 총선 패배의 영향에서 비켜나 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홍준표 대구시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당내 기반이 없는 상황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친문·비명, 친명과 화학적 결합 어려울 거란 전망도
이재명 대표는 총선 압승으로 명실상부 야권의 차기 대권 1위 후보 입지를 보다 더 확실히 했다. 당장 5월 원내대표 선거와 8월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가 구축한 친명(친이재명)계 헤게모니가 강력하게 작동할 전망이다. 다만 이 대표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의 경쟁 관계가 차기 대선 때까지 당권 유지에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총선 과정에서 '비명횡사' 공천 논란에도 당 주류를 친명계로 교체하면서 당내 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했다. 당권 유지는 물론 차후 대선 경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이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는 이 대표가 아니더라도 이 대표와 가까운 친명계 인사가 당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당헌·당규상 대표직 연임 불가 규정이 없는 만큼 이 대표의 재도전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연임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5월 원내대표 선거부터 강성 친명 지도부 체제를 굳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노원갑에서 5선 고지에 오른 우원식 당선인과 마포을에서 4선에 성공한 정청래 당선인 등 친명 다선 의원 간에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공천 과정에서 탈당한 친문계 인사들과의 주도권 다툼 가능성도 제기된다. 비명계 좌장 격인 4선 홍영표 의원은 앞서 지역구 경선에서 배제되자 탈당했다. 다만 친문(친문재인)계에 뚜렷한 구심점이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계파 갈등으로 인한 내분을 막기 위해 계파색이 옅은 인사가 총대를 메고 내부 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상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총선을 이끈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서울 중·성동을에 도전했으나 컷오프(공천 배제)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3번의 경선 끝에 탈락한 재선 박용진 의원 등이 거론된다.
임 전 실장과 박 의원은 당 지도부에 의해 컷오프됐지만 '험지' 위주로 지원 유세를 다니면서 후일을 도모해 왔다. 이들은 8월 전당대회 때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세력 결집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친명계와 친문계(비명계)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화학적 결합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야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당 밖에선 김동연 경기지사가 차기 대권을 두고 이 대표의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주도권 다툼으로 야권 내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대표와 조 대표는 윤석열 정부 견제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하지만 차기 대권주자 경쟁 구도에 놓인 만큼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 대표는 정권심판론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비례 2번으로 원내에 입성했다. 이 대표 못지않게 두터운 팬덤을 보유한 조 대표는 이번 총선으로 차기 대권주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4월11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조국 대표가 왜 민주당과 합당을 하겠나. 한국에선 이미 충분히 대선주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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