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진 후보도 지지하게 만드는 미국 정치의 ‘이것’[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정미경 기자 2024. 4.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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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패자의 속마음 누가 알까
품격과 유머의 패배 연설법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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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버락 오바마 대선 승리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250만 명의 관중. 백악관 홈페이지
I’d like to hear a concession speech that Obama might give.”
(오바마의 패배 연설을 들어보고 싶다)
미국인들 사이에 유명한 농담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에 관한 한 패배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연방 상원의원, 대선 경선과 본선, 대통령이 된 뒤 재선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사천리로 당선됐습니다. 심지어 치열하기로 소문난 하버드법대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 자리도 단번에 따냈습니다. 초등학교 때 반장선거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성인이 된 후 선거는 백전백승입니다.

이 농담은 오바마의 탁월한 정치 능력을 말해주는 것과 동시에 패배 연설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연설의 달인 오바마 대통령도 패배 연설을 하게 된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은 연설을 ’하다’라고 하지만 영어는 ‘give speech’(연설을 주다)라고 합니다.

실패학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승자의 연설만큼 패자의 연설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패자의 연설은 승자의 연설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공개적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를 건네는 연설이어야 합니다. 패배 연설을 ‘concession speech’(승복 연설)라고 합니다. 패배를 뜻하는 ‘loss speech’ ‘defeat speech’라고 하지 않습니다. ‘concede’(양보하다)라는 단어 속에는 화합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역사에 길이 남는 패배 연설을 유형별로 알아봤습니다.

2008년 대선 패배 연설을 하는 존 매케인 후보. 상대 후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한 야유가 터지자 두 손을 들어 저지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공화당전국위원회(RNC) 홈페이지
His success alone commands my respect, but that he managed to do so by inspiring the hopes of many Americans is something I admire.”
(그의 승리 하나만으로 나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 더구나 많은 미국인에게 희망을 주면서 승리를 이뤄냈다는 점에 찬사를 보낸다)
첫째, 감동형입니다.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도 훌륭하지만 패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연설은 더 훌륭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매케인은 연설 서두부터 오바마의 이름을 꺼냈습니다. 지지자들의 야유가 터졌습니다. 매케인은 손을 들어 야유를 저지하며 오바마 당선의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야유가 박수로 바뀌었습니다. ‘manage’는 ‘관리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해내다’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to’를 붙여 ‘힘든 일을 용케 해내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 연설에는 ‘humble’(겸손한)과 ‘courageous’(용기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동시에 따라다닙니다. 용기는 겸손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 연설입니다.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버틸 때 이 연설이 소환됐습니다.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후보(앞쪽)와 스티븐 더글러스 후보(뒤쪽)의 토론 모습을 그린 우표. 토론 100주년을 기념해 1958년 발행됐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I felt like the little boy who had stubbed his toe in the dark - too old to cry, but it hurt too much to laugh.”
(어두운 곳에서 발가락을 찧은 소년의 기분이다. 울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고, 웃기에는 너무 아프다)
둘째, 솔직형입니다. 패자는 마음이 복잡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전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한 적이 있습니다. 패자의 심경을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stub toe’(스텁 토우)는 발가락을 찧는 것을 말합니다. 책상다리에 걸려 발가락을 찧었다면 “I stubbed my toe on a table leg”이라고 합니다. 매우 유명한 구절이라 선거 때마다 패한 후보들이 “링컨이 말하기를”이라며 자주 인용합니다.

링컨이 패한 상대는 스티븐 더글러스라 민주당 후보였습니다. 노예제도를 두고 링컨과 더글러스 후보가 벌인 일곱 차례의 토론은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 토론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이 선거를 통해 링컨은 전국적으로 주목받게 됐고, 2년 뒤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1980년 대선 패배 연설을 하는 지미 카터 대통령. 지미 카터 센터 홈페이지
Let’s get it over with.”
(빨리 해치우자)
셋째, 빨리빨리형입니다. 1980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대패했습니다. 개표 초반부터 패배가 확실했던 터라 투표 마감 3시간 후인 오후 9시 50분쯤 연설장으로 향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른 패배 연설입니다. 그때 참모들에게 한 말입니다. ‘get it over with’는 즐겁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을 서둘러 끝낸다는 뜻입니다.

이 연설은 논란이 됐습니다. 내용이 아니라 타이밍이 문제였습니다. 서부 지역에서 아직 투표가 마감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패배 연설을 들은 유권자들이 투표소 방문을 포기하면서 함께 진행 중이던 상하원 의원 선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대선 후보는 오후 10시(동부시간 기준) 전에는 패배 연설을 하지 않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명언의 품격

1996년 대선 패배 연설을 하는 밥 돌 후보. 공화당전국위원회(RNC) 홈페이지
연설 전문가들은 패배 연설의 5대 법칙을 제시합니다. 해야 할 것 4개와 하지 말아야 할 것 1개(4 dos & 1 don’t)로 요약됩니다. 선거 패배뿐 아니라 인생의 어려움을 겪을 때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해야 할 것은 ‘humble’(겸손하라), ‘humorous’(유머를 가져라), ‘gracious’(품위를 지켜라), ‘self-deprecating’(자신을 낮춰라)입니다. 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don’t be bitter’(억울해하지 말라)입니다.

승자의 연설 무대는 축제 분위기지만 패자의 무대는 우울하고 뒤숭숭합니다. 패자의 마지막 연설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지지자들의 얼굴에는 허탈함과 피곤함이 가득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려면 패자는 유머를 발휘해야 합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상당한 유머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유머의 소유자는 밥 돌 상원의원입니다.

미국에서는 ‘One-liner Bob’으로 통합니다. 농담을 ‘one-liner’라고 합니다. 폭소를 자아내는 ‘한 줄’이라는 뜻입니다. ‘원라이너 밥’의 진가가 알려진 것은 1976년 대선이었습니다. 공화당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주당의 지미 카터-월터 먼데일 티켓에게 패했습니다. 다음날 패배 연설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Contrary to reports that I took the loss badly, I want to say that I slept like a baby — every two hours I woke up and cried.”
(내가 패배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아기처럼 푹 잤다 – 2시간마다 일어나서 울었다)
푹 자는 것을 ‘sleep like a baby’(아기처럼 자다)라고 합니다. 아기들이 평화롭게 잠든 모습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모순입니다. 아기들은 깊이 자지 않고 자꾸 깨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oxymoron’(옥시머런)이라고 합니다. ‘모순어법’입니다. ‘old news’(오래된 뉴스), ‘deafening silence’(귀가 먹먹할 정도의 침묵) 등이 대표적입니다.

돌 의원은 ‘sleep like a baby’가 모순이라는 점을 이용해 패배 후 뒤척이며 불면의 밤을 보낸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가장 재치있는 패배 연설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유머는 1996년 대선에서 패했을 때도 빛을 발했습니다. 청중 한 명이 시끄럽게 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You’re not gonna get tax cut if you don’t be quiet”(조용히 안 하면 세금 감면 안 해준다). ‘조용히 안 하면 안 해준다.’ 자녀가 공공장소에서 떼를 쓰며 시끄럽게 굴 때 미국 엄마의 단골 멘트입니다.

1996년 대선 패배 후 “이제 인생을 즐기겠다”라면서 정계를 은퇴해 강연가, TV 해설가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유명한 비아그라 광고도 이때 찍었습니다. ‘정치 셀럽’의 시초라는 평을 듣습니다. 유머 실력을 갖췄기에 셀럽으로 각광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전 보케 360

오타니 쇼헤이 선수(오른쪽)의 통역사 도박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는 미국 방송. ESPN 캡처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미 프로야구 LA다저스 소속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통역사 불법도박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오타니 선수는 “통역사의 도박을 몰랐다”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지만,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도박에 관여했는지, 관여했다면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를 두고 연일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Everybody likes to weigh in on the Ohtani gambling scandal.”
(모든 사람이 오타니 도박 관련 스캔들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한다)
‘무게’를 ‘weight’(웨이트)라고 합니다. 동사는 ‘weigh’(웨이)로 ‘무게를 재다’ ‘무게가 얼마 나가다’라는 뜻입니다. 상대의 몸무게가 얼마인지 묻고 싶다면 “how much do you weigh?”라고 하면 됩니다. ‘무게’는 곧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weigh in’은 ‘영향을 미치다’ ‘의견을 내놓다’라는 뜻입니다. 한창 토론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제3자의 의견을 묻고 싶다면 “do you want to weigh in?”(네 의견은 어때)이라고 합니다. 지금 미국의 핫이슈니까 너나 할 것 없이 오타니 스캔들에 한마디씩 거들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weigh in’과 비슷한 ‘weigh on’도 자주 씁니다. ‘weigh’(무게가 나가다)와 ‘on’(위에)을 합쳐서 ‘위에서 무게가 짓누르다’ ‘괴롭히다’라는 뜻입니다. “Problems at work are weighing on me.” 직장 일로 마음이 무거울 때를 말합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2년 3월 14일 소개된 선거 접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2022년 3월 14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314/112312732/1

2016년 대선 배패 연설을 하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 민주당전국위원회(DNC) 홈페이지
한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유례없는 접전 끝에 나라를 이끌 새 리더가 결정됐습니다. 선거가 접전일 때 ‘close election’(가까운 선거)이라고 합니다. 후보 간 표 차인가 ‘가깝다’라는 뜻입니다. 당락을 점치기 힘든 초박빙의 개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too close to call’이라고 합니다. 표 차이가 너무 가까워 승자가 누구인지 부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접전 끝에 패한 후보의 발언을 들여다봤습니다.
I personally will be at his disposal.”
(그에게 도움이 되겠다)
접전으로 치자면 한 달 넘는 재검표 공방 끝에 연방대법원이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 막을 내린 2000년 대선이 가장 유명합니다. 대개 패배 연설은 선거 당일에 있지만 2000년 대선 때는 재검표 공방 때문에 대선 5주 뒤에 열렸습니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마이크 앞에 섰을 때 대법원 결정에 불만을 쏟아낼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품위를 지켰습니다. ‘처분대로 하다’ ‘마음대로 사용하다’를 ‘at disposal’이라고 합니다. 부시 당선자의 국정 운영에 협조하겠다는 것입니다.
We got here a little bit late and little bit short.”
(여기에 좀 늦고 짧게 왔다)
부시 대통령은 행운의 사나이입니다. 2000년 대선에서 재검표 논란 끝에 승리하더니 2004년 재선에서도 존 케리 민주당 후보와의 접전 끝에 이겼습니다. 무대에 오른 케리 후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late’는 말 그대로 행사장에 늦게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short’는 승리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You poured your hearts into this campaign.”
(여러분은 이 유세에 진심을 다했다)
2016년 대선 때 대부분의 사전 여론조사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였습니다. 충격의 패배 후 클린턴 후보는 진심의 응원을 보낸 지지자들에게 미안함을 나타냈습니다. 어떤 일에 진심일 때 ‘pour heart into’라고 합니다. 마음을 쏟아붓는 것을 말합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의 저서 중에 ‘Pour Your Heart Into It’(진심을 부어라)가 있습니다. 액체 음료 커피와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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