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피소드] '지진 전문가' 대만 전 내무부 장관이 한국에 던진 제언‥
대만 지진 대응 시스템 설계자, 한국 언론 첫 인터뷰
대만 지진 발생 11일째입니다. 규모 7.2 지진이 덮친 대만 화롄시에선 현재까지 1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데 그쳤습니다. 비슷한 규모의 7.8 대지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덮쳤을 때 무려 50만 7천여 명이 숨진 것과 대비됩니다.
한국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은 대만이 대지진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일본만큼이나 지진이 잦은 대만은 1999년 9월 21일, 무려 2천4백여 명이 숨진 이른바 ‘921 대지진’을 겪은 뒤 본격적으로 지진 대응 시스템을 만들어 왔습니다.
MBC는 지난 8일, 바로 그 시스템을 설계한 이홍위엔 전 내무부 장관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과거 영국과 일본 등 외신에서 이 전 장관을 인터뷰했지만, 한국 언론 중에선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 지진 피해 최소화"
보수 성향 국민당 소속으로, 38년째 대만국립대에서 토목공학을 가르치는 학자이기도 한 이 전 장관은, 대지진 발생 전인 1997년부터 본격 공직에 입문해 대만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준비해왔습니다.
2011년부터 2012년 국토교통부 장관, 2012년부터 2014년 내무부 장관을 지낸 이 전 장관은 국민당뿐만 아니라 민진당 등 반대 진영에서도 존경을 받는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장관 재직 당시 일각에선 이 전 장관을 차기 총통 후보로 보는 여론도 있었습니다.
장관직을 내려놓은 지 10년이 됐어도 진보 성향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에게 비공식적으로 자문하고 있고, 이외에도 주요 대만 정치인들과 친분이 두터워, 지금도 뒤에서 대만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3일 대만 화롄시를 강타한 지진에 대해 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2017년 포항 지진‥ 한국도 손 놓고 있어선 안 돼"
그러면서, 2017년 우리나라의 포항 지진을 언급하며, “한국도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지진 대응 시스템 설계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실정에 맞게 지진 대응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전제를 두면서도 이 전 장관은 꽤 긴 시간을 할애해 취재진에게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핵심은 ‘신속성’입니다. 지진 발생 날을 ‘D-Day’로 설정하고, 초기-중기-장기 대응 단계로 나눕니다.
초기 단계는 D+7안에 모든 초기 수습 작업을 마치는 겁니다. D+2, D+3, D+4... 날마다 완성해야 할 임무들도 있다고 합니다.
일주일 안에 정부는 내무부를 필두로 지진 발생 지역 지자체와 합동 컨트롤타워를 설립합니다. 지자체가 현장 상황에 맞춰 각종 지원을 요청하면, 정부는 바로 지원합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내무부 소속 지진 대응 전문 구조대 인력과 군, 자원봉사자를 지원 투입하게 됩니다. 구조대와 군은 물론, 자원봉사자들은 평시에 엄격한 지진 대응 훈련을 꾸준히 받는 만큼, 현장 투입 시 효과적으로 구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전 장관은 “TV 뉴스에서 보는 그 구조대와 군 인력이 자신이 처음 만든 제도를 통해 도입된 것”이라며, “평소에 훈련을 철저하게 받기 때문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이라고 말했습니다.
매뉴얼대로 따른 대만 정부‥ "재난 보험도 확대해야"
실제로 대만 정부는 이번 지진 역시 일주일 안에 초기 수습 작업을 사실상 완료했습니다. 현재 기준 실종자는 3명에 그칩니다.
D+8부터 D+30은 중기 단계입니다. 이때는 이재민 거주지 마련에 필요한 대출 지원을 완료해야 하고, 이와 함께 이재민 심리치료도 진행됩니다.
이 중기 단계에서 이 전 장관은 대출 지원과 별도로 재난 보험 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평소 재난 보험에 가입하게끔 독려하고, 지진 발생 뒤 30일 안에 보험금을 전부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감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과 똑같은 규모의 지진이 미국에서 나면 이재민 60% 정도가 보험금을 받는데, 대만은 겨우 2%, 한국은 9% 정도인 것으로 안다”는 게 이 전 장관 설명입니다.
나아가 장기 단계로는 정부가 지진을 계기로 배울 점이 뭐가 있는지, 국립 지진 연구 센터와 함께 연구해 개선책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전 장관은 “크고 작은 지진이 날 때마다 대만 정부는 의무적으로 작은 것이라도 개선책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겨왔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신축 건물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강력한 내진 설계를 하게 하며, 만약 부실 공사로 사고가 나면 책임자는 최대 징역형을 살게 하게끔, 법의식도 강해졌습니다.
우리 정부도 중대본 설치 등 매뉴얼 있지만‥
우리 정부도 대만과 비슷하게 규모 4.0 이상 지진이 날 경우 정부부처들이 모이는 중대본을 설치하고 초기 대응 태세에 들어갑니다. 다만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대만처럼 날짜별로 대응해야 할 지점들을 못 박고 있진 않고, 현장 상황에 따라 대응 단계를 조정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4.0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규모 7.0 이상 대지진이 일어날 경우, 마냥 현장 상황에 따라 조정을 한다고만 해도 괜찮을까, 얘기가 달라질 수 있어 보입니다.
우리 정부는 또 2016년 규모 5.8의 경주 지진과 2017년 규모 5.4 포항 지진을 계기로 국회에서 재난안전대책특별위원회도 만들고, ‘지진 예산’도 늘리겠다고 했지만, 정작 포항 지진 피해 시민들은 지금까지도 “보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7년째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 지진은 지난 2016년 경주 지진 직후 급격히 증가했다가 감소세를 보였다가 2021년부터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국내 2.0 이상 규모 지진이 16번 발생했습니다.
이번 대만 지진을 계기로 우리 정부도 지진 대응 시스템 현황을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타이베이 지진 났다면 건물 35만 개 무너져"
이홍위엔 전 장관은 대만 역시 여전히 개선해야 할 게 많다고 지적합니다. 타이베이에서 만약 똑같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면 피해가 훨씬 컸을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이 전 장관은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대지진은 300년 전 청나라 때의 일”이라면서, “그만큼 에너지가 누적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번 지진과 똑같은 규모의 지진이 타이베이에서 일어났다면, 건물 35만 개 정도가 파손되거나 무너졌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축 건물들은 엄격한 내진 설계가 요구되기에 걱정되지 않지만, 문제는 오래된 건물들”이라며 “아무리 보완 설계를 해도 신축 건물보다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타이베이시는 오래된 건물들에 대해 보완 설계를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민간의 협조가 없어 지지부진합니다. 보완 설계에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가는데, 정부의 재정 지원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MBC 취재진이 찾은 타이베이 쑹산 민생단지 아파트 건물이 이런 현실을 바로 보여줍니다. 35년에서 40년 된 오래된 건물들인데, 화롄 지진으로 타이베이에 도달한 비교적 작은 흔들림만으로도 건물 외벽이 파손돼 있었습니다.
건물 앞은 노란 줄이 쳐져 이동을 통제하고 있었고, “건물 보완 공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의 지자체 공문, 노란 딱지도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에는 노란 딱지를 무시하듯 주민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회복 가능한 사회 계속 만들어야"
이 전 장관은 장기적으로는 아예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대만 국방부가 보유한 부지 중 수도와 가까운 곳에 정부가 민간 회사들에 아파트를 짓게 하고, 타이베이에 오래된 건물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을 그곳에 이사하게끔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타이베이 내 오래된 건물들을 부수고 내진 설계가 잘 된 신축 아파트를 지으면 된다.”
부동산 경기도 활성화하고, 무엇보다 시민들을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이 전 장관은 믿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며 “적어도 25년에서 30년은 걸릴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 될 일은 아니”라며 “자신이 제시한 방법에 딱 하나의 성공 사례가 나오면 그 뒤에는 자연스럽게 일이 풀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찌 보면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봤자 속수무책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취재진에, "그럼에도 우린 재난을 겪으면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가고, 회복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에게, 대만 지진은 우리가 다시 한 번 지진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줬습니다.
손구민 기자(kmsoh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588944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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