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기간 짧아도 이토록 깊은 향이…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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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는 흔히 향의 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숙성된 좋은 위스키를 만나면,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즐겁게 향을 맡으며 감탄했던 위스키는 저숙성 위스키인 글렌파클라스105였기 때문이다.
고·저를 가르는 숙성 기준은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18년 또는 25년 등으로 분분하지만 글렌파클라스105는 숙성 기간이 8~10년 미만으로 알려진 저숙성 위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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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파클라스105
와인 담겼던 오크통에 10년 미만
진득한 체리향에 말린 과일향
물 타지 않고 병입 ‘도수 60도’
위스키는 흔히 향의 술이라고 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위스키는 향이 거의 전부다. 오크통 속에서 나이를 먹으며 부드러워지고 많은 풍미가 생성된다. 향은 다양해지고 더욱 깊어진다. 그래서 오랫동안 숙성된 좋은 위스키를 만나면,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숙성기간이 반드시 길어야 그윽한 향을 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으로 즐겁게 향을 맡으며 감탄했던 위스키는 저숙성 위스키인 글렌파클라스105였기 때문이다. 고·저를 가르는 숙성 기준은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18년 또는 25년 등으로 분분하지만 글렌파클라스105는 숙성 기간이 8~10년 미만으로 알려진 저숙성 위스키다. 잔에 따르면 에탄올 향이 가라앉은 뒤 달달한 블랙베리, 진득한 체리 향과 함께 말린 과일 향이 풍겨나왔다. 부드럽진 않아도 재미있고 즐거운 향이었다. 향에 견줘 맛이 깊지는 않았지만 향에서 느꼈던 달달하고 진득한 베리류 느낌에 조금 거친 알코올 도수(60도)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글렌파클라스105는 내가 사랑하는 위스키가 되었다.
글렌파클라스105는 요즘 뜨고 있는 ‘셰리 캐스크’(셰리 오크통) 숙성 위스키다. 셰리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카디즈 일대에서 생산하는 ‘강화 와인’을 말한다. 와인이 발효 중이거나 발효가 완료된 뒤 증류주(주로 브랜디)를 첨가하는 게 강화 와인이다. 쉽게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것이다. 셰리 와인은 대부분 영국에서 소비됐고, 셰리 와인이 운반됐던 오크통은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를 숙성하는 데 사용됐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셰리 와인은 스페인에서 병입해 수출해야 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셰리 와인이 오크통째로 스페인 외부로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셰리 오크통이 귀해지면서 여기서 숙성한 위스키의 인기가 커졌고 다시 셰리 오크통의 가격이 뛰었다. 그 뒤 스페인에서는 셰리 와인을 짧은 기간 동안 숙성해 셰리 오크통을 생산했다. 셰리 와인을 생산하는 게 주목적이 아니라 셰리 오크통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셰리 오크통은 별도로 수입해야 하는 ‘귀한 몸’이 됐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에 있는 글렌파클라스 증류소의 위스키는 모두 스페인에서 수입해온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되고 있다.
글렌파클라스105는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라는 특징도 있다. 캐스크 스트렝스는 숙성하던 오크통에서 물을 타지 않고 바로 병입한 위스키를 말한다. 그래서 대부분 도수가 높다. 글렌파클라스105에서 ‘105’는 영국식 알코올 도수인 프루프(proof)인데 105프루프가 60도에 해당한다. 보통 스카치위스키는 숙성 햇수를 표기하지만, 이 술은 숙성 햇수를 표기하지 않는 ‘나스(No Age Statement) 위스키’다.
대부분의 위스키 증류소들은 거대기업이 소유하고 있지만, 글렌파클라스105의 증류소는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 1790년대부터 운영되던 기존 증류소를 1865년 존 그랜트가 인수한 뒤, 그랜트 일가의 소유와 경영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 위스키의 국내 판매 가격은 많이 저렴해졌다. 글렌파클라스105 1ℓ짜리는 외국에선 우리나라 돈으로 7만~9만원이면 살 수 있다. 과거 국내 가격은 두세배였지만 현재는 10만원 초중반에도 살 수 있다.
셰리 위스키의 풍미가 궁금하다면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만나보실 것을 추천한다.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니 혹시 취향에 맞지 않다면 미련 없이 다른 위스키를 찾아보면 된다. 선택할 수 있는 위스키는 수없이 많다.
글·그림 김성욱 위스키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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