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가 온다, 웃음과 함께 [ESC]

한겨레 2024. 4. 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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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에 관한 우스개 한토막.

마르크스가 죽어서 지옥에 갔다.

"신이여, 마르크스가 꼬마 악마들을 조직해 혁명을 일으키려 해요. 지옥이 무너질 위기예요. 마르크스를 데려가요." 마르크스가 이번에는 천국에 갔다.

"악마 동지, 나를 신 동지라고 부르시오. 그리고 신이란 존재하지 않소." 근엄한 종교인도 비장한 마르크스주의자도 웃지 않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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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웃기고 싶다
희비극 전환

칼 마르크스에 관한 우스개 한토막. 마르크스가 죽어서 지옥에 갔다. 얼마 후 악마가 신에게 하소연했다. “신이여, 마르크스가 꼬마 악마들을 조직해 혁명을 일으키려 해요. 지옥이 무너질 위기예요. 마르크스를 데려가요.” 마르크스가 이번에는 천국에 갔다. 얼마 후 악마가 신에게 안부를 물었다. “신이여, 천국은 요즘 어때요?” 신이 대답했다. “악마 동지, 나를 신 동지라고 부르시오. 그리고 신이란 존재하지 않소.” 근엄한 종교인도 비장한 마르크스주의자도 웃지 않을 이야기다.(사실 썩 재미있는 우스개는 아니다) 그래도 마르크스 본인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피식’ 하고 웃을 것 같다. 장난을 좋아하고 웃음을 긍정하던 사람이었으니.

젊은 시절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이라는 글을 썼다.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초들어 웃음의 힘을 언급한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신.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었다는 이유로 제우스 신의 괘씸죄에 걸린다. 산에 매달려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벌을 받는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시인 아이스킬로스는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라는 비극을 썼다. 여기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는 비장한 투사다. 신의 부조리함을 통렬한 어조로 비판한다.

그런데 기원후 2세기의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다르게 해석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익살맞은 말재간으로 신들을 조롱한다. 자기가 진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일은 죄라더니, 제우스와 남자 신들은 왜 그리 지분대며 인간 여성을 쫓아다니나? 자기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일은 죄라고 해놓고, 인간이 제단에서 제물을 불사를 때 신들은 왜 좋다고 제물 타는 향기를 즐기나? 마르크스처럼 그리스 신화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루키아노스의 글을 낄낄거리며 읽었을 것 같다.

기원전 5세기에 비장한 투쟁의 대상이던 고대의 신들은 기원후 2세기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마르크스는 이 차이에 주목한다. “아이스킬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 이미 한번 비극의 형태로 치명적 상처를 입은 바 있는 그리스의 신들은 루키아노스의 ‘대화편’에서 또 한번 희극의 형태로 죽임당했다.” 마르크스는 덧붙인다. “역사의 진행은 왜 이러한가? 인류가 자신의 과거와 즐겁게 이별하기 위해서다.” 옛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하는 일, 낡은 질서가 무너졌음을 확인하는 일, 이것이 웃음의 힘이다.

말 많고 탈 많던 총선이 지나갔다. 이번 총선 때 어떤 사람은 얼굴 벌겋게 사자후를 토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대파를 보며 키들키들 웃었다. 내가 희망을 두는 쪽은 웃음이다. 웃음은 새 시대에 속하니까.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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