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서해랑길을 가다…③실존의 길, 전설의 길(8코스)

조영석 기자 2024. 4. 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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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백구'는 전설의 고개를 넘고, '삼별초 궁녀둠벙'은 전설로 남았다

[편집자주] 날이 풀리고 산하엔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길 따라 강 따라 굽이굽이 얽힌 삶과 역사의 흔적을 헤아리며 걷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뉴스1>이 '서해랑길'을 따라 대한민국 유일의 '민속문화예술 특구'인 진도구간을 걸으며 길에 새겨진 역사, 문화, 풍광, 음식, 마을의 전통 등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신들메를 고쳐 매고 함께 떠나볼까요.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시(詩)·서(書)·화(畵)의 고장 진도는 삶 자체가 신명이고, 신명이 예술인 동네다. 신명은 지난한 삶을 이어가기 위한 희망이자 위로의 언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강술래, 진도아리랑, 소포걸군농악은 물론 다시래기, 씻김굿, 북춤 등이 그렇다. 이들은 저마다 산맥으로 솟아 개별이 전체를 아우르며 진도가 된다.

◇개별 그 자체로 진도가 되는 '운림산방'

진도 서해랑길 8코스의 출발지인 운림산방(雲林山房)도 개별 그 자체로 진도가 되는 곳이다. 조선 말기 남종화의 거장 소치(小痴) 허련 선생이 1856년 49세 된 해에 한양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화실이다.

운림산방. 2024.4.12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소치로부터 미산(米山)- 남농(南農)- 임전(林田)- 동원(東園)·소정(小丁)으로 이어진 직계 5대가 200여 년 동안 남화의 맥을 계승, 발전시켜 온 대화맥의 산실이다. 대한민국 유일이자 세계 유일이다.

국가지정 명승인 운림산방은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에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숨결이 더한다. 초의선사는 허련을 추사에게 천거하고, 추사는 제자에게 '소치'라는 호를 내렸다. 소치는 스승의 초상화로 화답하며 허리를 숙였다. 이들이 나눈 묵향의 언어가 봄철의 산방에 자목련, 백목련으로 피어나고 있다.

운림예술촌 입구. 2024.4.12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길은 곧바로 첨찰산 쌍계사 일주문 앞을 지나 운림예술촌과 운림삼별초공원을 거쳐 덕심산 고개를 넘는다. 고갯마루까지는 출발지인 운림산방에서 1시간 쯤 소요된다. 내려선 길은 옥대저수지와 '진도 울금가공사업단' 앞마당을 지나 의신면 읍내로 들어선 뒤 돈지마을 백구테마센터로 향한다.

진돗개를 형상화한 형태의 백구테마센터는 주인을 찾아 천리 길을 되돌아 온 백구를 기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

◇돌아온 백구와 삼별초 궁녀둠벙

'1993년 3월 대전으로 팔려간 백구가 주인 할머니의 정을 잊지 못해 목줄을 끊고 300km의 거리를 달려 7개월 만에 되돌아왔다.' 테마센터 '돌아온 백구기념비'에 새겨진 백구의 사연이다.

돈지리 들판너머의 백구테마센터. 2024.4.12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리고, 동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던 백구의 이야기는 한 세대가 지나며 백구가 묻힌 지석묘와 함께 전설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돌아온 백구'가 전설의 고개를 넘고 있다면, 실존이 소멸된 '삼별초 궁녀둠벙'은 전설로 남았다.

백구테마센터를 뒤에 두고 돈지리 들판을 지나 의신천을 건너면 만길재 들머리에 삼별초 궁녀둠벙이 자리한다. 여몽 연합군에 쫓기던 삼별초 용장성의 궁녀들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던 장소이다. 궁녀둠벙에 백제말 나당연합군에 쫓겨 3000 궁녀가 뛰어 내렸다는 백마강가 낙화암이 소환된다.

삼별초 궁녀둠벙. 2024.4.12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절구를 던져 넣으면 금갑리 앞바다로 떠오를 만큼 수심이 깊었다고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실존의 흔적이 마르듯 물이 마르고 이제는 작은 연못으로 변했다.

비오는 날에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밤길 가기를 두려워했다는 삼별초 궁녀둠벙의 벼랑에 흰 동백꽃이 소리 없이 지고 있다.

◇산들은 벚꽃이 피어 버짐처럼 번지고…

길은 삼별초 궁녀둠벙을 지나 만길재 고개를 넘는다. 근접한 들녘은 봄풀이 자라 푸른데 맞은바라기 먼 산은 먹구름이 끼어 봄빛을 잃었다. 비가 오려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만길마을과 원두마을 앞의 '빈지머리들'을 가로질러 송정저수지를 향하는데 가을비 같은 봄비가 내렸다. 다급해진 마음이 이정표까지 놓쳤다.

원두마을 앞 '빈지머리들'풍경. 2024.4.12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출발지에서 4시간을 걸어 구간의 절반을 왔으니 다시 4시간을 걸어 12㎞ 이상을 가야 한다. 길잃어 닿은 죽청마을 초입의 정자에 앉아 초점 없이 바라보는 비는 그칠 기미가 없고,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다. 돌아가야 하리.

이틀 뒤 다시 찾은 진도의 하늘은 만개한 유채꽃처럼 맑고, 산들은 벚꽃이 피어 버짐처럼 번졌다. 죽청마을앞 들판을 가로질러 다시 시작한 길은 매실골 계곡을 돌아 봉호산 고개를 넘은 뒤 겨울철 굴 구이로 유명한 죽림어촌체험마을을 향한다.

죽림어촌체험마을. 2024.4.12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죽림어촌체험마을로 내려오면 무지개색으로 단장한 해안 방호벽 너머로 호수 같은 바다가 펼쳐지고 마을 끝에는 조개잡이 체험장과 마을 갤러리, 카페들이 손짓하며 쉬어가길 청한다.

죽림어촌체험마을을 지난 길은 18번국도 진도대로를 타고 여귀산 돌탑길을 오른 뒤 보덕산 임도로 빨려 들어간다.

◇여귀산 돌탑의 전설과 외경

여귀산 돌탑길에는 종탑 형식의 돌탑을 비롯해 여려 형태의 돌탑과 시비, 돌에 새긴 수묵화들이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여귀산 돌탑길의 돌탑은 규모부터가 남다르다. 수 천, 수 만 개의 크고 작은 돌을 쌓아 올린 돌탑은 '남산'은 아니더라도 '집채'만 하여 토템의 외경을 품었다.

여귀산 돌탑길. 2024.4.12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여귀산을 중심으로 죽림 쪽에 남신, 탑리 쪽에 여신이 살았다. 남신이 여신을 지배하기 위해 힘과 지혜를 겨뤄 지는 신이 이긴 신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여신이 이기자 남신은 여신의 탑을 파괴시켜 버렸다. 그 후 힘과 지혜를 쓰지 못한 여신은 남신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돌탑을 쌓고 두 신의 화해와 고을의 안녕을 빌었다.'(진도군 공식 블로그 요약)

여귀(女貴)산의 이름처럼 모성을 귀히 여기는 세상을 위해 남신과 여신의 화해를 소망하며 보덕산 임도로 들어선 발길은 오봉산 등산로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마을로 내려간다. 발 아래로 귀성리 저수지와 아리랑마을관광지가 보이면서 구간의 마침표를 예감한 발길이 가벼워진다.

진도아리랑 체험관. 2024.4.12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귀성마을의 돌담길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발길은 여귀산 자락에 안긴 장구모양의 아리랑체험관과 종점인 국립남도국원에 닿는다. 두 번에 걸쳐 이룬 8구간 여정의 마무리다.

여행 팁 - 해남 땅끝에서 인천 강화를 잇는 109개 코스의 '서해랑길'가운데 진도구간은 6코스부터 12코스가 지난다.

진도 세 번째 구간인 8코스는 운림산방을 출발해 운림예술촌- 백구테마센터- 삼별초 궁녀둠벙- 만길마을- 송정저수지- 죽림어촌체험마을- 여귀산 돌탑- 국립남도국악원에 이르는 22.8㎞의 코스다. 8시간 정도 소요된다.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많은데다 구간의 길이로 인해 난이도 상중급이다.

들머리인 운림산방 앞에 식당과 찻집이 즐비하다. 백구테마센터 근처에 식당이 서너 개 있고, 죽림어촌체험마을에는 찻집이 있다. 남도국악원에 무료 주차 가능하다.

kanjo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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