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 포문 연 미국과 유럽…한국은 ‘뒷짐지고 구경’
아이폰을 쓰는 사람 중엔 간간이 '탈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짜 교도소는 아니고, '애플 감옥'에서 탈출합니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제조사 애플의 운영체제 iOS의 기본 기능을 바꿔서 제한을 풀어버리는 걸 '탈옥'이라고 표현합니다. 애플과 앱스토어가 막아둔 기능과 콘텐츠가 많아서, 아이폰을 쓰는 게 마치 감옥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거죠.
애플 측은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제한을 거는 거라고 설명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한이, 이용자를 위한 조치가 아닌 애플의 판매전략이었다면 어떨까요.
이런 의혹들이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은 애플을 벼르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미국 법무부는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도 지난달 초, 애플의 음악 스트리밍 앱 시장 독점을 문제 삼아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자연스레 "우리는 왜 가만히 두냐?" 는 생각이 들죠. 한국이 같은 내용으로 애플을 제재할 수 있을지, 짚어보겠습니다.
■ 미국 "애플이 소비자를 가뒀다"
미국 법무부(DOJ) 반독점국이 제출한 88쪽짜리 소장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록(lock, 가두다)'입니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의 말도 인용했습니다. 잡스가 2010년 "소비자들을 우리의 생태계에 어떻게 가둘지", "사람들이 애플의 생태계에 어떻게 더 착 달라붙게 만들지"를 고민하고 논의했다고 썼습니다.
이번 소송은 단순 상품을 넘어 애플의 '생태계'를 겨냥하고 있는 겁니다.
"애플은 지난 몇 년간 사용자들이 애플 생태계를 떠나는 것을 어렵거나 비싸게 만들었고, 궁극적으론 애플에 머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중략) 이런 환경에서 애플은 더 많은 수수료를 가져가고, 혁신을 저해하고, 이용자들에겐 불안정하거나 퇴행적인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했으며 경쟁자를 축출했습니다."
결론은 애플이 폐쇄적인 생태계를 통해 휴대전화 시장을 독점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운영하는 방식을 문제삼았습니다. 구체적으론, 애플은 '슈퍼앱', '클라우드서비스 게임' 등 소프트웨어를 애플 기기에서 사용하는 걸 막아 왔습니다. 또 애플 제품이 아닌 타사의 스마트워치나 장비를 애플 생태계에서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아이메시지(iMessage)' 색상입니다. 아이폰 사용자끼리 문자를 주고받을 땐 내가 보낸 말풍선이 파란색으로 뜨지만, 다른 OS 사용자에 메시지를 보내면 초록색 말풍선이 뜹니다. 법무부는 이걸 '사회적인 압력'이라고 봤습니다. 아이폰 사용자를 사회적 집단으로 만들어 계속해서 아이폰을 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메시지 색상에까지 애플의 독점적인 생태계가 반영돼 있다고 본 미국 법무부. 애플에 '반영구적인 조치'를 취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 한국에선 "아이폰 사용자 적어"
우리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도 미국 법무부의 소장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혐의를 적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 법무부는 애플이 '시장 지배적 지위', 다시 말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시장의 경쟁을 어지럽혔다고 봤습니다. 시장 지배력은 시장의 영향력으로 평가하는데 특정 시장에서 제품의 가격과 품질 등을 좌우할 정도로 독점력을 가진 사업자는 지배적 지위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독점적 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를 차단하는 건 경쟁법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제재 여부를 두고 심의할 때는 시장지배적 지위가 있는지를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공정위의 올리브영 제재 사례도 시장지배적 지위의 유무에 따라 과징금 수천억 원이 오간 것처럼요.
미국에서 애플은 명백한 독점적 사업자입니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64%를 점유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상황이 반대입니다. 한국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전자가 73%를, 애플이 25%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국내 시장에서 애플을 시장지배력 남용으로 제재하기 어렵습니다.
공정위는 앞서 애플이 통신사에 광고비를 떠넘긴 혐의로 제재를 추진한 적이 있는데, 이 때도 '거래상 지위를 남용했다'는 조항을 적용했습니다.
■ 애플, 유럽엔 자진 꼬리 내리기
미국보다 앞서 유럽은 이미 애플 제재에 들어갔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애플이 자사 앱스토어에서만 앱을 사고팔 수 있게 한 건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18억 유로, 우리 돈으로 2조 7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런데 제재가 확정되기 전 애플은 자진 시정에 나섰습니다. 유럽에서 운영체제와 앱스토어 운영을 개편하겠다고 한 건데요. 그래서 이르면 이번 달부터 아이폰용 앱을 앱스토어 외에 다른 앱마켓에서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또 애플의 결제 시스템 외에 구글페이 등 타사 결제 시스템도 허용됩니다. 이용자들이 '탈옥'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벽을 허물어준 겁니다.
이런 개편은 유럽에만 한정됩니다. 유럽에서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디지털시장법(DMA)에 대응해 애플이 유럽 시장에 한정해 내놓은 대책이기 때문입니다. DMA 법은 EU가 빅테크 기업들을 제어하기 위해 만든 법입니다. 2020년 12월 초안을 내놓았고, 지난달 7일부터 전면 시행됐습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들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이 기업들에 여러 의무를 부과해 반경쟁적인 행위를 사전에 막자는 게 핵심입니다. 법을 위반하면, 연 매출의 최대 10%에 과징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알파벳(구글·유튜브), 애플,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아마존, 바이트댄스(틱톡), 마이크로소프트 6개 기업이 게이트키퍼로 지정돼 있습니다.
DMA 법은 지금까지 나온 빅테크 규제 중 가장 강력한 내용으로 평가됩니다. 그만큼 반발도 컸습니다. 애플은 "(DMA 법으로)사생활 침해와 데이터 보안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반발했고, 바이트댄스는 "(게이트키퍼 지정에)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반발이야 어찌 됐든, 법은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게이트키퍼 기업들은 자사 플랫폼에서 제3자 서비스를 배제해선 안 되고, 자신의 서비스를 유리하게 설정해 자사를 과도하게 우대해서도 안 됩니다.
애플도 별수 없이 꼬리를 내린 배경엔 신속하게 수십조 원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 강력한 규제가 있는 겁니다.
■ 국내에선 자진 시정도 조사 착수 4년 만에...
앞서 언급한대로 공정위도 애플 제재를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2016년, 공정위 조사국은 애플코리아가 아이폰 광고비와 수리비를 국내 통신사에 떠넘겨 갑질을 했다는 의혹을 조사해 1천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곧장 1천억 원 규모의 상생기금을 내고, 아이폰 이용자들의 수리비를 깎아주고, 통신사와의 불공정한 계약 조항을 개선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미 조사에 2년, 심의를 위한 분석에 2년이 걸렸는데 만약 애플이 심의 결과에 불복하고 소송까지 진행한다면 피해자 구제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공정위는 ' 신속한 거래 질서 개선이 더 나은 대안일 수 있다'며 이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 '제도 공백' 사이 소비자 보호는?
이렇듯 공정위 조사와 심의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반면 빅테크의 갑질이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는 실시간으로 일어납니다. 이미 빅테크들이 갑질 등으로 시장을 다 먹고 난 뒤에야 제재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조사와 분석을 대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공정위는 규제 대상을 미리 정해두고,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바로 제재에 착수할 수 있는 법 제정에 들어갔습니다. 유럽의 DMA 법과 비슷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입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보고하고, 입법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플랫폼 시장에서 '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정하고, 끼워팔기와 자사우대 등 시장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막는 내용이 주가 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후 약 한 달 반 동안, 반발이 쏟아졌습니다. 스타트업 이익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플랫폼법은 스타트업 업계를 이중으로 옥죌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나섰습니다. "이해관계자와 논의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 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했습니다.
결국 공정위가 '한 수' 접었습니다.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이 지난 2월 초 브리핑을 열고 "당장 법안을 공개하기보다 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추가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한국 인터넷 기업들이 법안 반대를 위해 로비를 벌여 일시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보도했습니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은 바다 건너서 진행되는 애플의 서비스 개편을 남의 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최근 유럽연합 외에 영국, 호주, 일본, 인도도 플랫폼과 테크 기업을 규제할 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빅테크 규제 법안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 간 기업의 정책과 소비자 보호 제도에 격차가 생길 수 있는 겁니다.
애플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애플처럼 폐쇄적인 생태계를 노리는 플랫폼들이 언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키울지 알 수 없습니다. 플랫폼법이 빅테크에 대응할 유일한 답은 아닐 수 있지만, 플랫폼들이 시장을 어지럽히는 게 시간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 남은 건 투명한 입법 절차
공정위는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며 입법에 나섰지만, 정작 외부 반발에 부딪혀 논의가 멈춰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플랫폼법의 구체적인 내용도, 플랫폼법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조심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전달된 내용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지난달 7일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강연에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한 참석자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질문에 그간의 혼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강연 참석자
"플랫폼 규제의 수혜층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자인데, 최근까지 법 추진 과정에서 홍보가 안 됐습니다. 오히려 중소 사업자들이 조직화 돼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상황도 생겼습니다. 수혜자들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어떻게 더 적극적인 소통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전술적으로 새로운 교훈이나 방향으로는 어떤 게 있나요."
한 위원장은 이 질문에 "의견수렴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며 원론적인 답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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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윤 기자 (dobb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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