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빠진' 보잉…돈, 돈 하더니 안전도 돈도 잃었다 [스프]
비행 중인 여객기의 벽체가 떨어져 나간다. 이륙하려고 달리던 여객기의 바퀴가 빠진다. 이륙 중에 엔진 덮개가 떨어지더니 날개를 친다. 그 상태로 날아간다. 이 중 하나라도 내가 겪는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이 세 사고는 미국 보잉(Boeing)이 만든 여객기들에서 최근 석 달 사이 벌어진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6년 전 보잉 여객기 2대가 연속으로 추락한 이후 '안전 제일', '품질 회복'을 다짐하는 가운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비행기를 어떻게 만들고 있길래 그럴까? 미국의 항공산업 전문가들은, 보잉의 기업 문화와 경영 철학에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한다. 머리부터 썩어들어간 생선에 비유하기도 한다.
미국의 항공산업 전문가들은 보잉이 지난 20여 년간 '잭 웰치(Jack Welch)식 경영의 부작용으로 깊은 병에 걸린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맞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GE의 잭 웰치, 그 사람이다.)
무슨 얘기일까. 사고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답이 보인다.
여객기 타기 무섭다…비행기를 어떻게 만들고 있길래
비행기는 이 상태로 활주로를 달려 이륙한 뒤, 날개 위에 엔진 덮개 금속판이 걸친 채로 1만 피트까지 상승했다. 그사이 기장과 관제탑은 교신을 통해 항공기 작동 상태를 점검하고 25분 만에 안전하게 회항하는 데 성공했다. 승객들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달 전인 지난 3월 7일에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이륙하던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의 보잉 777-200 여객기에서 랜딩기어 부품이 떨어져 나갔다. 부품은 공항 직원주차장으로 떨어졌고, 세워져 있던 차량이 박살났다. 타이어 하나가 유실됐지만 나머지 타이어들이 있어서 해당 항공기는 목적지에는 무사히 착륙했다.
위 두 사고도 황당하지만, 1월 5일(현지 시간)의 사건은 더욱 위험했다. 1만 6천 피트 상공을 날던 비행기의 벽체가 뜯겨 나간 것이다. 하마터면 창가 승객이 허공으로 빨려 나가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질 뻔했다.
뜯겨나간 부분은 '도어플러그'라고 부른다. 기사 쓰기 복잡해서 '문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문짝은 아니고, 문이 달릴 자리에 - 그러나 당장은 문이 필요 없어서 - 막아놓은 문짝 모양 부품이다. (그래서 '플러그'라 부른다.)
떨어져 나간 도어플러그는 가정집 뒷마당에서 수거했다. 하마터면 애먼 사람이 이것에 맞아 희생될 뻔했다.
항공안전당국이 수거된 부품과 뜯겨나간 기체를 정밀 조사했는데, 뜯겨나갔다는 것보다 더 황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도어플러그를 동체에 고정해 두고 있어야 할 나사 4개가 애초에 안 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나사 빠진"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팩트였던 셈이다.
이 사안에 대해 단독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사정은 이러했다. 해당 항공기는 시애틀 외곽의 렌튼 공장에서 만들어지는데, 동체 부분은 협력사인 '스피릿에어로시스템즈'에서 만든다. 아예 스피릿에어로 측 인원들이 보잉 공장에 들어와서 일을 한다.
보잉 측 작업자는 도어플러그의 나사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제거한 뒤 스피릿 측에 제대로 된 나사를 박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계속 날짜가 지연됐다. 납품 일정을 맞춰야 하니 동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제대로 된 나사가 제자리에 박혔는지 누구도 사후 점검을 정확히 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제조상의 문제지만, 아예 설계 자체가 잘못돼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내기도 했다. 2018년 10월 29일, 인도네시아 라이온(Lion) 에어가 운용하는 보잉 737 맥스(Max) 여객기가 추락해 189명이 숨졌다. 채 넉 달이 안 된 2019년 3월 10일, 이번엔 에티오피아항공사가 운용하는 737 맥스8 여객기가 추락해 157명이 산화했다.
이 두 건의 사고는 원인이 같았다. 비행기가 조종사의 의사에 반해 스스로 코를 땅으로 처박아 추락한 것이다. 737 맥스는 기존 737의 프레임에 더 크고 강력한 엔진을 달았다. 그 영향으로, 이륙 시 비행기 앞부분이 더 많이 들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에어버스(A-320)와의 경쟁 때문에 빨리 이 비행기를 시장에 내놓고 싶었던 보잉은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비행기 앞부분을 잡아 내리는 시스템(MCAS)을 탑재한다. 그런데 센서에 문제가 있었다. 실제보다 더 기체 앞부분이 들린 걸로 인지한 MCAS 시스템은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날고 있는데도 비행기 앞머리를 숙였다. 기장은 당황해서 수동으로 비행기의 고개를 들려 했지만, 그럴수록 시스템은 더욱 강한 힘으로 비행기의 앞머리를 끌어내렸고,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보잉은 조종사들,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의 후진성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했지만, 설계시 안전을 위한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았고, 고객사(항공사)에 대해 충분한 교육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뉴얼엔 MCAS 자동 기능에 대한 설명이 없었고, 이 기종을 구입한 라이온에어가 '조종사들을 위한 시뮬레이터 교육'을 요구하자 '그런 거 없어도, 기존 737처럼 몰면 된다'고 일축했던 것이다.
보잉은 원래 어떤 회사였나
보잉은 가족 같은 분위기, 여유로운 근로 문화를 자랑하는 직장이었고, 항공 엔지니어들의 꿈의 회사였다. 경영자들도 그런 엔지니어들 가운데서 올라온 사람들이 맡았다. 최고경영진과 일선 엔지니어들 간에 권위주의적인 문화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시애틀 지역의 분위기가 그대로 회사에도 녹아 있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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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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