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조금의 역설…테슬라 빼곤 가격 인하 노력이 안 보인다
[주간경향] 전기차 시대를 선도하는 테슬라가 다시 한번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 4월 4일 테슬라는 부분 변경을 완료한 자사 전기차 ‘모델3’의 가격을 공개했다. 테슬라는 ‘시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들쭉날쭉한 가격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날 공개된 가격은 2021년 수준으로 회귀했다. 사륜구동(모델3 롱레인지) 차량 기준으로 3년 전과 같은 5999만원이었다.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후륜구동(RWD) 모델은 5199만원이었다. 아직 RWD 모델에 대한 전기차 보조금 액수가 확정되지 않았는데 세금을 제외한 실구매가는 5000만원대 아래로 내려갈 것이 유력하다.
테슬라는 과거에도 신차를 공개할 때면 공격적인 판매 전략을 선보였다. 후발주자들은 테슬라의 정책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021년 정부가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차량가격을 6000만원 미만으로 설정하자 테슬라는 당시 주력 차종이었던 모델3 롱레인지의 판매가를 6000만원에서 딱 1만원 내린 5999만원으로 설정했다. 이후 이런 방식의 가격책정이 전기차 판매 전략의 기본이 됐다.
지난해에는 모델Y에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RWD 모델을 시장에 선보였다.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의심,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한국에선 실패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지난 4월 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모델Y는 지난달에만 5934대가 팔렸다. 내연기관을 포함한 모든 수입차 중 판매 1위다. 언론, 누리꾼의 중국산 LFP 배터리에 대한 우려와 달리 실제 시장은 테슬라의 가격정책에 호응했다.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테슬라의 이러한 행보는 일관적이다. 원가절감과 이를 통한 실구매 인하가 테슬라가 잡은 확실한 방향이다. 상대적으로 값싼 중국산 LFP 배터리 탑재나 중국 기가팩토리(공장)에서 차량을 생산해 물류비용을 줄이는 것도 이러한 방향성 위에 있다. 과거 사례대로라면 테슬라를 좇는 후발주자들은 전기차 가격 인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국내 전기차 업계에는 기술개발 등을 통한 가격 인하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가 자사의 주력 전기차를 부분 변경해 내놓은 더 뉴 아이오닉 5의 가격은 이전 모델과 같았다. 애초에 값이 싸서 그런 게 아니다. 아이오닉 5 4륜 모델은 가격폭이 5700만원부터 6400만원까지다. 현대차의 몇몇 모델은 판매가가 테슬라보다 비싸기도 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격 경쟁력이 있다. 현대차에 유리한 정부 전기차 보조금 규정 때문이다. 올해 규정대로라면 현대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는 정부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다. 반면 테슬라는 어떤 모델을 선택하든 보조금 100%는 받을 수 없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목표로 만들어진 정부 보조금이 산업 보호만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전기차 보조금은 왜 존재하나
지난해 하반기 한국 시장에 공개된 모델Y RWD의 가격은 혁명적이었다. 해당 모델은 중국산 LFP 배터리를 탑재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삼원계(NCM) 배터리나 LFP 배터리는 모두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기를 발생시키는 ‘리튬 배터리’다. 양극에 있던 리튬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면 충전, 음극에 있던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하면 방전인 식이다. 리튬은 원소 상태에선 반응이 불안정해 리튬에 산소를 더한 ‘리튬산화물’ 형태로 양극에 사용한다. 이러한 리튬산화물을 ‘양극 활물질’이라고 부르는데 이 양극 활물질을 어떤 성분을 결합해 만들었느냐에 따라 LFP와 NCM으로 나뉜다.
LFP는 말 그대로 리튬+인산+철의 결합이다. 그래서 리튬인산철 배터리다. NCM은 니켈+코발트+망간의 결합이다. 이때 망간 대신 알루미늄을 넣으면 NCA,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을 모두 넣으면 사원계 배터리(NCMA)가 된다. LFP와 NCM의 구성이 다른 만큼 배터리의 성능도 다르다. LFP는 NCM보다 에너지 밀도, 용량, 안정성 등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차의 출력, 용량은 주행가능거리, 안정성은 배터리 수명과 연결된다. 대신 LFP에 주로 사용하는 철은 니켈, 코발트 등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이 배터리를 쓰면 전기차 가격 인하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각 배터리의 특성은 전기차에 그대로 반영된다. LFP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Y RWD는 지난해 5699만원에 판매됐다. NCM 배터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모델Y 롱레인지에 비해 주행가능 거리가 100㎞ 정도 줄고, 출력도 감소했다. 하지만 가격이 1000만원 넘게 싸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에겐 좋은 선택지가 됐다. 특히 지자체 전기차 보조금에 따라 일부 지역에선 4000만원대에 구매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른바 ‘5699 대란’. ‘수입차 판매 1위 모델’은 이렇게 탄생했다.
모델Y RWD 판매량이 늘었다는 것은 전기차 보급이 확대됐다는 의미다. 이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명분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올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규정에 몇 가지 조항이 추가됐다. 핵심은 지난해 가격 대란을 만든 LFP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삭감이다. 지난 2월 6일 환경부가 발표한 ‘전기차 성능 및 환경성 제고를 위한 보조금 전면개편’ 내용을 보면, 전기 승용차에도 ‘배터리효율계수’를 도입해 에너지 밀도에 따라 차등 지원하고, 배터리 재활용 가치에 따른 ‘배터리환경성계수’를 새로 도입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에너지 밀도와 배터리 재활용, 수명 등은 LFP 배터리가 갖는 약점이다. 보조금 개편안에는 명시적으로 LFP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삭감이 적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LFP 배터리임은 분명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특정 종류의 배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님에도 결과적으로 그 배터리(LFP)의 보조금 산정이 낮게 된 것”이라며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높고, 재활용 가치가 높은 쪽으로 유도하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NCM 쪽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LFP 배터리를 사용한 차량의 보조금 삭감은 소비자가 종전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거나 구매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라는 보조금의 목표와는 배치된다. LFP 배터리가 재활용 등이 어려워 환경보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도 문제다. 테슬라는 보조금이 삭감되자 모델Y RWD 가격을 5499만원으로 200만원 낮췄다. 결국 소비자가 지난해보다 소폭 더 지출을 해야 한다는 것 외에 보조금 삭감으로 인한 정책 효과는 사실상 없는 셈이 됐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보조금의 목적 중에는 차량 가격 인하도 포함돼 있다. 테슬라가 보조금이 삭감된 만큼 가격 인하를 한 것은 사실인 만큼 목적에 벗어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의 이유는 단순하다. 어떻게든 테슬라를 잡겠다는 정부와 어떻게든 빠져나가겠다는 테슬라가 숨바꼭질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그 결과가 국내 기업이 혁신을 이루고, 소비자는 더욱더 값싼 전기차를 살 수 있다면 다행인데 반대로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전기차 보조금의 역효과
한국 전기차 업계는 원가절감을 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기존에 탑재하고 있던 NCM 배터리만 잘 유지해도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국내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전체 전기차 판매량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변화에 나설 이유도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현대차는 LFP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을 언제까지 출시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오닉 5 차량 등에 대한 가격 인하 계획 역시 없다”고 덧붙였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 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도 태도가 비슷하다. 현재 전기차용 LFP 배터리의 상용화를 대외적으로 밝힌 곳은 SK온 한군데뿐이다. 이마저도 “2026년에 가능하다”는 정도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는 중국, 한국 등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일환으로 LFP 배터리를 만들고 있고, 전기차용 LFP 배터리는 만들 예정”이라며 “구체적 시점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한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 SDI 역시 “전기차용 LFP 배터리 생산과 관련해서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우선 2026년까지 ESS용 LFP 배터리를 만들고, 전기차용은 그 뒤다. 전기차용 LFP 배터리는 진출이 아닌 개발 단계”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LFP 배터리의 점유율은 2020년 11%에서 2022년 31%로 상승했다. 2030년에는 40%까지 뛸 전망이다. 이는 기존 NCM 배터리의 점유율 축소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모델Y RWD의 성공을 통해 LFP 배터리의 점유율 확대가 전망이 아닌 현실임이 확인됐다. 테슬라는 이미 주력 차종에서 LFP 배터리 탑재 모델과 NCM 배터리 탑재 모델을 모두 생산하며 소비자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이는 차량 옵션 몇 개를 넣느냐, 마느냐로 등급을 나누는 것과는 근본적 차이다.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결과적으로 LFP 배터리를 차별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전기차 관련 기업도 배터리 다변화에 신중하다. 그런데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 외에 LFP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곳은 없다. 오히려 세계시장에서 LFP 배터리는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통한 원가절감도 가격 인하도 없는 한국 전기차 업계가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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