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3중 자화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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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에서 최초의 자화상은 르네상스 때 등장했다.
숱하게 많은 자화상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은 오스트리아 화가, 요하네스 검프(1626~?)가 1646년께 그린 '3중 자화상'이다.
3중 자화상은 철학적 논변으로 이어진다.
3중 자화상만 묘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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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서양 미술에서 최초의 자화상은 르네상스 때 등장했다. 르네상스란 인간을 주체로 보기 시작한 시대다. 화가도 신이나 역사가 아닌 자신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그린 자화상이 최초라는 것이 정설이다.(※최근엔 얀 반 에이크 '빨간 터번을 쓴 남자'(1433)가 먼저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1500)처럼 정면을 응시하는 자화상은 자의식의 완성이며 절정이다.
자화상은 화가가 주체임과 동시에 객체가 된다. 자신을 그저 닮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 그릴 수 있다.
렘브란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처럼 자화상을 자주 그린 화가들 공통점은 삶에 부침이나 굴곡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 사슬에 대한 절규가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숱하게 많은 자화상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은 오스트리아 화가, 요하네스 검프(1626~?)가 1646년께 그린 '3중 자화상'이다.
그림에 3명의 검프가 있다. 그림 속 화가(1)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2)을 캔버스에(3) 옮긴다. 캔버스에 그려진 자화상은 거울상의 거울상이다. 시선도 살짝 뒤틀려 있다.
혼란스럽다.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가상인가? 어떤 것이 원본(Model)이고, 어떤 것이 복사본(Copy)인가? 물론 진짜 검프는 그림 밖에 있다.
검프는 비슷한 초상화를 한 점 더 그렸는데,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건 딱 이 두 작품밖에 없다. 그래서 더 기묘하다.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겸 삽화가였던 오노레 도미에(1808~1879)는 검프 그림을 분명히 봤다. 아래 같은 드로잉을 남겼다.
권력에 대한 저항과 소시민에 대한 온화한 시선을 유지한 도미에는 그림에서 화난 표정으로 자신을 스케치했다. 당대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저항을 드러낸 듯하다.
반면 20세기 중엽, 미국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낙천적인 미국 일상을 자주 그린 노먼 록웰(1894~1978)은 같은 구도로 재치 있게 그렸다. 소품으로 활용한 독수리, 성조기 문양, 음료수(콜라 추정) 등으로부터 미국적 자기애를 유별나게 드러냈다.
3중 자화상은 철학적 논변으로 이어진다. '화가는 거울에서 본 자기 모습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자기를 보지 못한다. 그림이란 결국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일이다'는 주장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다.
'박물지'를 쓴 1세기 로마 학자 플리니우스는 이런 이야기를 기록했다. "디부타데스라는 여인은 연인이 떠나기 전 벽에 비친 남자 그림자를 따라 그림을 그렸다"
이를 토대로 벨기에 화가 조셉 브누아 쉬베(1743~1807)는 '디부타데스, 회화의 기원'(1791)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데리다는 이 그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회화의 기원은 '눈멂'이다. 그림자 선을 따라 그림을 그릴 때 여인은 남자를 볼 수 없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여인은 남자에 대해 눈먼 시각장애인이다"
3중 자화상만 묘한 게 아니다. 회화 자체가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일이다. 회화란 화가 상상력의 결실이다. 자신을 그리든, 풍경을 그리든, 정물을 그리든, 눈앞에 놓인 것을 '재해석하는' 일이 화가의 역할이다.
그런데도, 그러므로, 화가는 그린다. 숙명처럼 그린다. 대상을, 대상 아닌 것을 운명처럼 그린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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