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론에 가려진 담론…민생은 뒷전됐다
정의당은 20년 만에 원외정당
2024년 4월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의 결과는 ‘윤석열의, 윤석열에 의한 실패’로 요약된다.
국민의힘은 지역구에서 90석을 얻고,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석을 얻어 모두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20년 치러진 제21대 총선(103석)보다는 다섯 자리를 더 얻었지만, 당시는 야당이었고 현재는 집권여당임을 고려하면 참패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161석,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14석으로 모두 175석을 얻어 지난 총선(180석)보다는 다섯 자리가 줄었다. 그러나 ‘반윤석열’이라는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조국혁신당(12석)과 합하면 187석을 차지하게 됐다. 재적 의원 수의 5분의 3을 훌쩍 넘는다. 총선 참패로 윤석열 대통령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국민의힘에서 생길 수 있는 이탈표를 고려하면, 범야권이 이들과 힘을 합칠 경우 탄핵과 개헌까지 가능해진다.
반사이익 민주당과 신스틸러 조국혁신당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의 철저한 수혜자가 됐다. 다만 들끓은 심판론은 언제나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유행 중 치러졌던 제21대 총선에서 당시 집권당(민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했던 민심은 2년 뒤 등을 돌리며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집권 정당을 바꿨고, 2년 뒤인 2024년 총선에서 다시 집권 정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진순 이사장은 “지난 대선은 윤 대통령이 잘해서 당선된 승리라기보다 문재인 정부가 못해서 이긴 반사이익의 승리였다. 같은 논리로 이번 총선은 민주당이 잘해서 한 승리라기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오만과 독선, 무능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크다보니 그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상대가 못해서 반사이익으로 승리하면 겸허해야 하고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재명의 민주당도 윤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민주당이 차기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지금의 윤석열 정부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막말, 흠집 내기로 간다면 민심을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검찰 공화국으로 묘사됐던 윤석열 정부에 종언을 고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단연 이번 선거의 신스틸러였다. 조국혁신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후보를 한 명도 내지 않고 비례대표에서만 24.25%의 득표율로 12석의 의석을 확보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이어 원내 3당이 됐다.
2024년 2월8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김우수)가 조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1심과 같이 징역 2년을 선고할 때만 해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5일 뒤인 2월13일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나서겠다고 할 때도 부정적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월 말께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가 친문(친문재인)계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박용진·윤영찬 의원 등 비명(비이재명)계로 꼽히는 현역 의원들이 줄줄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이른바 ‘비명횡사’ 논란이 일면서 민주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했다.
이런 가운데 조 대표가 3월3일 조국혁신당을 창당하고 “윤석열 3년은 너무 길다” 같은 선명한 구호를 내세우자 유권자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조국혁신당은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라는 구호를 앞세워 민주당의 지지율 상승까지 이끌었다. 신진욱 교수는 “조국혁신당이 윤석열 반대 구호를 가장 선명하게 들고나와 강하게 때리면서 약한 고리를 계속 파고들었다”며 “조국혁신당이 만든 균열 사이로 민심이 터져나왔고, 터져나온 민심을 쓸어담은 건 민주당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조국 대표의 사법리스크 때문에 조국혁신당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법원에서 조 대표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내려놓고 징역형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조 대표는 자신이 감옥에 가더라도 조국혁신당은 지속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진순 이사장은 “조국혁신당은 창당 배경이나 취지 자체가 국가를 어떻게 운영해나갈지에 대한 고민이나 가치가 없고, 정치 윤리가 부재한 정당”이라며 “비례후보를 보더라도 노동이나 여성, 청년이 없는 아재 정치의 연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윤철 교수도 “결국 대여 강경 투쟁을 중심으로 운영해나갈 텐데 투쟁하다보면 결국 몸집이 큰 민주당이 도드라져 보이고, 조국혁신당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반윤석열 구호로 등장한 정당이어서 사안에 따라 국민의힘과 협력하는 등 과거 정의당처럼 원내 3당으로서 거대 양당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기도 힘들어, 대안 정당으로 성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에 합쳐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정권심판, 민주당의 공천 파동 때문에 소환된 조국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감옥에 가면 민주당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서로 심판만 하겠다는 양당에 뒷전된 민생
조국혁신당이 선전하면서 진보정당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외형적으로는 조국혁신당이라는 제3당이 12석을 얻어 양당 체제가 다소 완화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도 있지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합쳐놓고 보면 양당제는 더욱 굳건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서 살펴봤듯 지역구 의원이 없고 정치 기반이 약한 가운데 반윤석열 구호를 내걸고 출범한 조국혁신당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석수를 놓고 보면, 제21대 총선에선 정의당(5석), 국민의당(3석), 열린민주당(3석)이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했지만 이번 선거에선 개혁신당만 2석을 얻었을 뿐이다. 진보당과 새진보연합 등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합류해 의석을 확보하긴 했으나, 국회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권김현영 소장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미 끝났다. 더 이상 제도를 지킬 이유가 없어졌다”며 새롭게 구성되는 제22대 국회에서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2대 총선이 “정치 담론은 없고 심판론만 남은”(손희정 교수) 선거가 되면서 민생 의제와 정책이 없는 선거가 된 점은 유권자에겐 비극이 됐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대통령선거부터 시작됐다는 평가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저서 <2022년 대통령 선거와 한국 정치>(동아시아연구원·공저)에서 “2022년 대통령선거는 과거와 달리 미래지향적 ‘거대 담론’이 제기되지 않았다. 후보들은 지역별, 집단별 맞춤형 공약을 경쟁적으로 제시했다. 선거 운동 기간 중 관심을 끄는 이슈는 후보자 개인이나 부인의 도덕성이나 처신 논란과 관련한 것이었거나,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회고적 속성의 것이었다”고 짚은 바 있다. 이번 총선도 비슷한 맥락에서 치러졌다. 거대 양당의 지역구 후보 공약들은 지역 개발 공약으로 점철됐고, 민생과 관련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는 찾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청년들은 선거운동이 “치열한데 한가하게 들렸다”(박혜민 청년정치 에이전시 뉴웨이즈 대표)고 했다. 박 대표는 <한겨레21>에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과 낮은 합계출생률, 고령화, 연금 문제 등 중요한 이슈들은 모두 제쳐두고 거대 양당들은 상대방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냈을 뿐”이라며 “언론이 정당들의 승패를 말하고, 국민이 이겼다고도 하던데 모두가 패배한 것 같다”고 했다.
지역구 여성 의원이 36명으로 역대 최다라고는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실질적인 여성주의 정치로 나아가기엔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왔다. 공천 과정을 보면 여성 후보이긴 하지만 반여성적 성향의 후보도 많았고, 공천권자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발탁되기도 해 다양성이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손희정 교수는 “성평등 정책이 없는 것을 넘어서 비전 자체가 퇴행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기후·노동·젠더 등 민생과 관련한 정책을 고민하고 의제화하는 정당들도 국회 밖으로 밀려났다. 녹색정의당은 2.14% 득표율에 그치며 봉쇄조항(득표율 3%)을 넘지 못했다. 심상정 녹색정의당 의원도 지역구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정의당은 민주노동당의 2004년 원내 입성 이후 20년 만에 원외 정당이 됐다.
‘강남·영남당’ 색채 뚜렷해진 국민의힘
다만 이번 선거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지점도 있다. 먼저 67%를 기록한 최종투표율이다. 이는 1992년 제14대 총선(71.9%) 이후 3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신진욱 교수는 이를 두고 적대적 정치 구도에도 불구하고 다수 유권자는 전략적 투표를 한 것이라 분석했다. “진보진영의 전통적인 시각처럼 여야 정치가 적대 공존의 도돌이표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 다수는 정치 무관심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습니다. 다수 유권자가 열성적인 인물 지지는 아니더라도, 전략적 투표를 하고 있어요. 자신의 한 표를 소중히 행사하는 겁니다. 진보정당이 이런 흐름을 포착해 전략을 세워야 해요.”
이번 총선은 ‘그레이 총선’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50대 이상 유권자가 51.57%로 과반을 한 첫 전국 단위 선거였고, 이제까지 이뤄진 선거 가운데 처음으로 60대 이상(31.89%)이 30대 이하(30.67%)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총선 출구조사를 살펴보면, ‘나이 들수록 보수화된다’는 명제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는 50·60대가 범민주진보 진영에 표를 던진 경우가 많았다. 출구조사 기준으로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지지하지 않은 60대 유권자는 남성이 53.1%, 여성이 48.8%였다. 국민의미래는 50대 표 전체 중 3분의 1(남성 23.8%, 여성 29.4%)에도 못 미치는 표를 받았다. 신진욱 교수는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는 연령효과가 전부가 아니다. 뒷세대로 갈수록 50·60대 성향이 과거 선거만큼 압도적으로 보수적이진 않은 것으로 나온다”며 “한국의 보수정당이 민주당처럼 되고, 민주당이 혁신되는 게 변해가는 유권자 구조에 맞는 좌우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석이 보수 텃밭인 ‘강남’과 ‘영남’으로 한정되는 경향도 뚜렷해졌다. 국민의힘이 확보한 지역구 의석 90석 중 59석이 영남에서, 7곳이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에서 나왔다. 김수민 정치평론가는 “전국이 밀물인데, 영남은 썰물이었다. 국민의힘은 ‘강남’ ‘영남’ 당이 됐고 사수력이 더 높아졌다. 다른 당 정치인들은 이곳에 점점 더 벽이 높아진다”며 “결국 이런 구도는 선거제도 개혁 아니고는 풀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총선은 끝났지만 정치는 계속된다
다만 양당을 중심으로 양극화한 정치체제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이념적 당파 정렬의 효과가 하락하고, 감정적 당파 정렬의 효과가 상승한 2022년 대통령선거 결과는 유권자 정치 양극화가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이후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부교수는 <2022년 대통령 선거와 한국 정치>에서 선거를 통해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평가했는데 이번 총선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양극화된 정치에선 좋은 국회의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진순 이사장은 “정파적인 선명성을 내세워 당선된 제22대 국회의원들은 전반적으로 자질 면에서 걱정이 많이 되고 의심스럽다. 최악의 국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국민이 현명하게 정치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꼬집었다. 총선이 끝났지만 우리의 정치가 끝날 수 없는 이유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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