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는 대통령을 거부한다

이재호 기자 2024. 4. 1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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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여당 108석 범야권 192석, 정치 전문가 10명이 본 총선 결과
독선적이고 민생에 무능한 정권 심판한 국민
대통령사진기자단

“이재명을 살려준 건 윤석열이었다.”(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은 윤석열이었다.”(김경미 섀도우캐비닛 공동대표)

2024년 4월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의 결과는 ‘윤석열의, 윤석열에 의한 실패’로 요약된다. 국민의힘은 지역구에서 90석을 얻고,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석을 얻어 모두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20년 치러진 제21대 총선(103석)보다는 다섯 자리를 더 얻었지만, 당시는 야당이었고 현재는 집권여당임을 고려하면 참패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161석,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14석으로 모두 175석을 얻어 지난 총선(180석)보다는 다섯 자리가 줄었다. 그러나 ‘반윤석열’이라는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조국혁신당(12석)과 합하면 187석을 차지하게 됐다. 재적 의원 수의 5분의 3을 훌쩍 넘는다. 총선 참패로 윤석열 대통령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국민의힘에서 생길 수 있는 이탈표를 고려하면, 범야권이 이들과 힘을 합칠 경우 탄핵과 개헌까지 가능해진다. <한겨레21>은 총선 결과가 나타난 4월11일 오전 나온 대통령실과 여야 반응을 바탕으로 정치·사회 전문가 10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번 총선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총체적으로 분석해봤다.

임기 5년 내내 여소야대 대통령…헌정사 최초

총선 참패가 확인된 4월11일 오전, 윤 대통령이 입장을 내놨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한 총리는 윤석열 정부 초대 총리이고, 이 실장 또한 국정기획수석비서관·정책실장·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정부 출범 초기인 2022년 8월부터 대통령을 보좌했다. 국정 쇄신을 위한 인적 쇄신이라는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의 짧은 입장 속에 이번 총선 결과가 나온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윤 대통령 자신의 말대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고 “국정을 쇄신”하는 정치를 집권 초기부터 해왔다면 총선에서 참패했을까. <한겨레21>이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지난 2년 동안 윤 대통령이 보인 불통과 오만이 총선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고문은 “특정 악재가 터진 것도 있지만, 근원은 2년간 계속된 불통”이라며 “불통하지 않고 평소에 잘했다고 쳐보면, 국민이 특정 논란에 이 정도로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진순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은 유권자들의 정권심판을 “국민의 윤석열 거부권 발동”이라고 규정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 결정에 아홉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오만과 불통의 이미지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임기 내내 여소야대 국회를 마주하게 된 헌정 사상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결과를 받아안게 됐다는 얘기다. 이 이사장은 “대통령이 임기 2년 동안 거부권을 아홉 번 행사했는데, 1987년 이후 최다 사례다. 특히 김건희 특검법도 거부했다. 자기 배우자에 대한 비리 의혹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는 오만하고 교만한 대통령에 대해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총선 국면에 접어든 2024년 초부터 잇따라 주요 이슈에서 상식과 동떨어진 대응책을 내놨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수사받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해 호주로 출국(3월10일)하도록 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이른바 ‘런종섭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은 윤 대통령의 무도한 정치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게다가 3월14일 기자단 오찬 자리에서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에 대해서도 대응을 미적대다 이 사건이 보도되고 6일이 지나서야 황 수석을 사직 처리했다.

여당 구원 투수 한동훈, “자기 세대 지지도 못받아”

제22대 총선일인 2024년 4월10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왼쪽)와 국민의힘 지도부(오른쪽)가 개표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을 발표한 3월 초 대통령 지지율이 직전 달보다 10%포인트 높아져 39%가 됐지만, 그뿐이었다.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에 들어간 뒤 50일이 넘어 갈등이 장기화하고 의료공백이 커지자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정치력과 문제 해결 능력에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는 총선 구도에서 고스란히 여당의 지지세 약화로 이어졌다. “(이번 총선 결과는) 정치인이 되지 못한 검사 출신 대통령의 말로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전혀 대중적 화법을 구사하지 못했다. 대중을 설득할 마음가짐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의대 정원 증원, 이종섭 출국, 황상무 건 등 촘촘히 단계마다 다 실패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대통령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총선 결과는 윤석열의 실패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의 말이다.

윤 대통령이 선거 개입이라는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꾸준히 진행한 전국 민생토론회 역시 여론을 뒤집진 못했다. 그런 와중에 경제적 무능 이미지까지 덮어썼다. 이른바 ‘대파 사건’ 탓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대파 사건이 상징적이었다. 집권 세력이 세상 물정 모르는구나, 국민을 기만하려 한다는 인식이 영향을 줬다”며 “수습책은 성과도 없었고 타이밍도 늦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총선의 ‘구원투수’로 국민의힘에 투입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도 손발이 맞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사과 등을 두고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잡음이 생겼다. 한 위원장 역시 정치 입문 초기에는 세련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으나, 곧 보수의 콘크리트 지지층 안에만 의존하는 언변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버리지도 안지도 못했다. 기존의 보수 유권자층과 충돌하지 않고 외연 확장을 할 수 있느냐 이 딜레마를 안고 간 게 한 위원장인데, 국민의힘 대표 시절 보수 유권자와 충돌하며 치고 올라갔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달리 한 위원장은 보수 언론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략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루려고 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자기 세대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손희정 교수도 “한 위원장, 국민의힘, 윤 대통령 모두 정치적 비전이 없었고, 결국 잘 모르는 정치를 하면서 퍼포먼스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은 결국 국민의힘의 역사적 대패를 낳았다. 한 위원장은 4월11일 “민심은 언제나 옳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에 부족했던 우리 당을 대표해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미 시작된 레임덕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이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결과의 윤곽이 드러나며 패색이 짙어지자 상황실을 가득 채웠던 당직자와 비례대표후보들이 이석하며 빈자리가 많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이 참패했지만, 비윤으로 분류된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서울 동작을), 안철수 의원(성남 분당갑)과 윤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경기 화성을)는 경쟁을 뚫고 당선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윤 대통령의 입지 약화에 영향을 주면서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윤철 교수는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패배한 것에 견줘 안철수 의원 등이 정권심판론 속에서도 승리하면서 비윤계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이 부각될 것”이라며 “대권 구도가 복잡해지고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요소가 만들어졌다. 이준석 대표가 살아남은 것도 현 집권 세력에는 부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다수는 윤 대통령의 레임덕이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1년이 지나지 않아 끝난 느낌도 있다. 이미 국정 지지율 등으로 보면 윤 정부의 심리적 레임덕은 있었다. 거대 야당 구도가 되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될 거 같다. 윤 정부가 하고자 했던 것들은 구현이 안 될 것”이라며 “특히 행정부와 여당에서도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이야기하려는 분위기가 될 수 있고, ‘다음’(대통령 퇴임 이후)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과 시민사회 등에서 ‘정치 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던 검찰 수사도 부담을 안게 됐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수수 의혹, 이재명 대표의 경기지사 재직 당시 법인카드 유용 의혹, 윤 대통령 명예훼손 의혹,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이 그 대상이다.

여러 개의 특검법 추진도 윤 대통령의 레임덕을 이끌 수 있다. 범야권이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기준인 180석(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을 확보하면서 특검법 통과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종섭 주호주 대사 임명 관련 특검법’과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관련 특검법’ 등을 처리하겠다고 밝혀왔다. 대통령이 거부했던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등 ‘김건희 특검법’도 재추진될 수 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범야권이 200석을 넘지 않았기에 지금과 차이는 없지만, 여론은 대통령 반대 기조라는 게 확인됐다. 민주당이 특검법을 통과시킬 텐데,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정치적 교착상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서는 국정 기조를 바꿔 야권과의 대화가 필요하지만,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성정상 이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예상했다. 이강윤 고문은 “(대통령이) 상대에 대한 동등한 인정과 함께 ‘나도 틀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같은 눈높이가 돼야 한다. '선거도 졌고 당신들이 힘이 세졌다니, 들어는 볼게'라는 입장이라면 대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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