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대상 언론] 언론사 뉴미디어팀, 페미니즘 다루기 어려워진 이유 있다

윤유경 기자 2024. 4. 1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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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뉴미디어팀 청년 여성 노동자 12명 인터뷰
젠더 논의 소강…'언론사 내 주변부' 뉴미디어팀 성과 압박 심해져
비정규직 고용 관행과 인정받지 못하는 경력 속 커지는 불확실성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사진=gettyimagebank

편집자주: 언론·미디어 연구 속 언론은 변화가 더딘 혁신의 대상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학계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은 그 차이를 확인하고 간극을 좁히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은 현업인들에게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언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3줄 요약: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 축소와 페미니즘 백래시로 소수자 콘텐츠를 제작해온 언론사 뉴미디어팀 노동이 위축되고 있다.

-언론사 내부 '주변부' 위치와 성과 압박, 불안정한 고용 형태가 뉴미디어팀 청년 여성 노동자를 불확실성으로 내몰고 있다.
-사그러든 관심과 성과 압박에 직면한 뉴미디어팀은 페미니즘 방향성을 절충하는 형태의 대중성을 선택하고 있다.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 자체가 희미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2024년. 다양한 소수자 의제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왔던 언론사 내 뉴미디어 조직에서 '소모적이더라도 과거 논쟁 속 치열한 고민이 젠더 이슈를 해결하는 데 유의미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심화되는 분위기와 콘텐츠에 대한 적대적 반응은 관련 노동을 위축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슈와 쟁점'이 소개한 석사학위논문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청년 여성들의 일하기: 언론사 내 뉴미디어 조직의 사례를 중심으로>(강다겸·신승은, 서울대 사회학과·인류학과)엔 인턴·프리랜서·정규직 기자·PD 등으로 언론사 뉴미디어팀을 경험한 20~30대 청년 여성 노동자들 12명의 목소리가 담겼다. 2015년 전후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페미니즘 리부트'를 경유해 페미니즘 지향을 자신의 '일'과 연결시키려 시도한 여성들이다.

'언론사 내 주변부' 뉴미디어팀 향한 성과 압박 심해져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줄고 성과 압박이 남은 현실에서 뉴미디어팀의 청년 여성들은 '대중성'을 택했다. 연구진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썸네일에 오락적 요소를 가미하거나, 흥미에 방점이 찍힌 대중적인 주제의 영상을 기획하기 등이 시도됐다”며 “'사회에 기여하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조직의 기조는 이러한 타협의 상한선을 긋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 인터뷰 참여자는 성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콘텐츠”가 있을 때 “팀이 만들어온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은 그저 '회사원이니 힘 빼지 말자'는 식의 논리를 통해 심리적 부담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했다고도 했다. 성과 중심적 선택을 아쉬워하면서도, 젠더 이슈가 갈등으로만 다뤄지는 상황에서 더 많은 시청자에게 닿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밝힌 인터뷰 참여자도 있었다.

▲사진=gettyimagesbank

애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여성들이 속한 뉴미디어팀들이 생겨난 일차적 이유는 '젠더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라기 보단 '뉴미디어 사업을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언론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자 마련한 공간에 페미니즘 관심을 가진 청년 여성들이 합류해 콘텐츠 방향성을 구축해낸 것이다. 연구자는 “언론사에서 뉴미디어팀에게 근본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페미니즘을 잘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성과 자체라는 점에서, 팀에선 채널의 지속을 위해 기존의 페미니즘 방향성을 일부 수정하면서 조회수를 높일 방법을 강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채널 지속 여부나 제작 지원 등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언론사와의 권력 관계도 성과의 압박을 부추긴다. 연구진은 “언론사는 뉴미디어팀의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자원이나 채널의 대중적 영향력을 부분적으로 보장해주지만, 동시에 뉴미디어팀은 수익 창출과 같은 명시적인 성과를 보이라는 요구에 부응해야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언론사 내에서 뉴미디어팀이 '주변부'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뉴미디어 콘텐츠는 수익을 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적 성격으로 강조되거나, 시사 이슈를 다뤄도 저널리즘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성과 압박을 더 강화하고, 높은 노동강도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으로 설명되는 뉴미디어팀의 노동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을 경우 뉴미디어 채널이 사라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가령 A조직이 속한 언론사는 구독자 확장 규모나 구체적인 수익액 등으로 이뤄진 연간 KPI(핵심성과지표)를 설정해 두고 있었다. C조직에서 일한 인터뷰 참여자는 '돈이 안 되는 콘텐츠만 만든다'는 회사 내부 여론이 암묵적으로 존재하며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먼저 경제적 성과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비정규직 고용 관행·인정받지 못하는 경력 속 커지는 불확실성

뉴미디어팀의 고용 불안정성도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인터뷰에 참여한 PD들은 고용형태, 임금 산정 등과 관련해 PD와 기자간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연구진은 “PD들은 비정규직을 경력으로 쌓은 뒤 조직 내의 정규직 전환이나 타 조직에서의 경력직 채용을 통해 정규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비정규직으로 쌓아온 경력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호봉이 삭감되는 일도 잦았다”고 밝혔다.

관리직엔 기자를 배치하고, 실무엔 영상 직군의 노동자들을 필요에 따라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하는 관행도 지적됐다. 연구자는 “뉴미디어팀을 신설할 때부터 해당 인력을 어떻게 관리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 고민이 부족했으며 실질적 자원 투입에도 소극적이었단 점이 문제를 심화시켰다”며 “많은 PD 참여자는 자신들의 미래를 이곳에서 그리기 어렵다고 보고 있었다”고 했다.

▲동영상 편집, 촬영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gettyimagesbank

뉴미디어팀에 소속된 기자들은 팀에서 쌓은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할 거란 불안감을 느꼈다. 뉴미디어팀이 '주변부'로 간주되는 경향과 더불어 '출입처에서 만나는 취재원들과의 네트워크'를 주요 능력으로 간주하는 출입처 중심 취재 관행에서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A조직 기자들은 자신들이 쌓은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다른 경로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페미니즘이 개인들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친밀한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일'의 영역에선 어떻게 나타나는 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해 필요하다”며 “뉴미디어 산업이 일터로서, 사회 전반의 담론을 만들어가는 곳으로서 다양한 가치를 담기 위해선 뉴미디어 산업의 구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대한 언론사의 협소한 이해 혹은 평가 절하는 뉴미디어팀이 꾸준히 사회적 메시지를 내며 살아남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청년 노동자에 대해 이들이 일에서 소득이나 '워라밸'을 중시한다는 통념이 있는데 이는 청년들이 일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편하게 살 궁리만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내포한다”며 “통념이나 당위적 판단을 넘어 (청년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일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실현되는지 계속해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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