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왕을 먹어 치웠다”…기이한 사건 하나가 만든 역설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4. 1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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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64] 젊은 왕이 저잣거리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농사는 잘되는지, 시장은 활발한지, 굶어 죽는 이는 없는지. 시민들도 그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민중을 살피는 그의 심성을 알고 미소를 보냈지요.

해가 저물 무렵이었습니다. 이제 궁으로 돌아갈 시간. 왕이 말머리를 돌리던 순간, 무언가가 확 스쳐 지나갑니다. ‘돼지’였습니다. 말은 소스라치게 놀라 앞다리와 대가리를 치켜세웁니다. 왕이 고꾸라질 때 하필이면 머리가 바위 위로 떨어집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신체 위에 말발굽이 연달아 박힙니다. 얼굴에 한발짝, 심장에 한발짝, 갈비뼈에 한발짝.

“이 놈의 말이 왜 말을 안들어.”
놀란 말은 어느새 도망쳤습니다. 그 자리에는 넝마마냥 한 사람이 죽어있었습니다. 왕이었습니다. 돼지 한 마리 때문에 군주가 객사하는 불운이 닥친 것이었지요. 중세 프랑스 비운의 ‘젊은왕’ 필리프의 이야기입니다.

불운이 또 다른 불운을 불러온다는 머피의 법칙은 ‘국가’에도 적용됩니다. 왕의 죽음 이후 국가적 불행이 연달아 닥쳤기 때문입니다. 전쟁, 영토 손실, 교황으로부터 파문. 프랑스는 ‘저주받은’ 국가처럼 보였습니다.

사고로 죽은 필리프를 묘사한 그림.
국가적 불행이 역설적으로 미를 창조합니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고딕 성당, 프랑스를 상징하는 하얀 백합과 파란색의 이미지가 탄생한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돼지 한 마리 때문에 죽어버린 왕, 프랑스의 아름다운 고딕 성당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는 4월 15일은 고딕의 대표 건축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탄지 5년째 되는 날입니다.

불이 난 노트르담 드 파리. [사진출처=Wandrille de Préville]
루이 6세의 든든한 아들 젊은왕 필리프
“아들 필리프를, 나와 같은 공동왕으로 임명하노라”

젊은왕 필리프가 즉위한 건 1129년 4월 14일이었습니다. 아버지였던 루이 6세는 아들 필리프를 자신과 같은 ‘공동왕’(Rex junior)으로 내세웠지요. 카페왕조 초기 왕권이 불안했기에, 왕세자를 공동왕으로 올리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젊고 힘 있는 왕세자가 ‘왕’이라는 타이틀로 통치해야 아무래도 힘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왕도 다다익선이 아니겠는가 하하” 한참 후대 화가인 메리 조셉 블론델이 그린 루이6세.
필리프는 잘생기고 힘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만큼 중세 프랑스 대중 사이에서 인기도 대단했지요. 시민들과 많은 접점을 만든 것도 그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인기좋은 필리프왕이 허망하게 떠나갈 줄은.

1131년 10월에 필리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돼지 한 마리 때문이었습니다. 훅 튀어나온 돼지에 놀란 말이 필리프를 바닥으로 내팽개친 것이지요. 심각한 낙상사고였습니다. 시민들은 “불결한 집돼지가 왕을 먹어치웠다”고 수근댔지요.

왕을 죽음에 이르겐 한 돼지 한마리. [사진출처=티아몬토]
왕의 죽음이 불러온 저주
“이건 어쩌면 신의 징벌이 아닐까”

필리프의 죽음을 슬퍼한 건 왕가만이 아니었습니다. 시민들 역시 젊은왕의 죽음을 불안하게 느꼈지요. 당시는 아주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신의 뜻처럼 비치던, ‘종교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왕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그것도 돼지 한 마리 때문이라면 더욱 더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되던 것이지요. 당시 연대기에는 필리프의 죽음을 이렇게 적었지요. “불명예스럽고, 비천한, 수치스럽고 동시에 비참한 죽음.”

“왕 생활도 제대로 못해보고...” 돼지 때문에 죽음을 맞은 필리프를 묘사한 13세기 그림.
시민들의 불안은 적중합니다. 필리프의 자리를 이어받은 동생 루이7세의 ‘실정’ 때문이었습니다. 왕세자 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부작용이 터져버린 것이었지요. 오늘날로 치면 정치 신인이 벼락처럼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셈이었으니까요.
외교도, 내치도 가정생활도 모두 실패한 루이 7세
루이 7세가 추진하는 정책은 엉성하기 그지없었고, 이해관계자와 갈등은 조정되지 않았습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와 드잡이를 할 정도였습니다. 프랑스 영토 내에서 주교를 임명할 권한(서임권)을 왕인 자신이 갖겠다고 주장하면서였습니다.
“프랑스 루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파문해”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 [사진출처=Hugo DK]
인노켄티우스는 루이7세를 손봐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를 파문하고 프랑스 왕국 내 ‘성무’ 금지령을 내립니다. ‘성무금지’란 모든 미사를 금지한다는 것. 당시 사람들은 태어날 때도, 결혼할 때도, 죽을 때도 미사를 통해 신의 축복을 빌었습니다.

바꿔말하면 성무 없이는 태어날 수도, 결혼할 수도, 죽을 수도 없다는 뜻이었지요. 오늘날로 얘기하면 국가의 행정시스템이 올스톱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난 왕이 될 준비가 안됐는데...” 프랑스의 루이 7세(오른쪽)를 묘사한 14세기 그림.
정치적으로도 루이7세의 상황은 최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샹파뉴(영어로 샴페인) 지역 백작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접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는 과정에서 교회에 불을 질러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화재로 죽은 사람은 1000명.

루이7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치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그리스도”라고 힐난하는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였지요.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가정사’로부터 터져 나옵니다. 루이7세가 부인 엘레오노르와 이혼하면서였습니다. 엘레오노르는 프랑스의 빵 바구니라고 불리는 아키텐 지역의 공작 가문의 여식. 그녀는 루이 7세와 이혼하면서 이웃 잉글랜드 헨리 2세와 재혼을 결정합니다. 지참금으로 가져온 영토도 다시 가져간다는 뜻이었지요.

십자군 원정을 떠난 루이7세가 신하인 푸아티에의 레이몬드에게 인사를 받는 모습. 이 원정 이후 그는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아키텐 지역의 영토가 잉글랜드 손아귀에 들어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프랑스 시민들은 이제 그 죽음이 진짜 저주였음을 절감합니다. ‘젊은왕’ 필리프의 요절이 불러온 그림자였습니다.
신께 귀의하는 프랑스
“하나님 아버지의 분노를 풀어야 한다.”

저주받은 프랑스를 정상화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종교에 더욱 귀의하는 것. 그럼으로써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 프랑스의 왕족, 귀족, 일반 시민계층 모두가 종교에 빠져들었지요.

예수의 재림을 묘사한 그리스 이콘. 1700년 작품.
당시 중세 프랑스에서 유행한 ‘종말론’도 이러한 흐름에 배경이 됐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에는 기존 질서를 모두 뒤엎어버리는 ‘심판의 시간’이 존재합니다. 마태복음서 25장에도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고 적혀있지요.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묵시록’.
심판의 시간에 대해 교부의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서기 1000년경을 전후해 새로운 천년왕국이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이 7세가 지배하는 서기 1100년대 역시 심판의 시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지요. 서기 2000년 밀레니얼 종말의 공포에 떤 우리네 모습처럼요.
고딕성당으로 신께 용서를 빌다
“우리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직자를 모셔 오게.”

루이 7세도 두고만 볼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카페 왕조를 구할 고언을 얻고자 덕망있는 종교인 두 사람을 소환합니다. 생드니 수도원장 쉬제르와 클레르보 대주교 성 베르나르였습니다. 두 사람은 조언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닿을 수 있을 만큼 높은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요. 후대 사람들은 이를 ‘고딕양식’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선 더 높은 성당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쉬제르를 묘사한 그림.
이전까지 교회는 낮은 건축물과 작은 창문이 특징인 ‘로마네스크’의 형태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건축 방식을 교회에 적용한 것이었지요.

프랑스 루이7세 시기부터 본격 등장한 고딕 건축물은 신께 용서를 구하는 듯한 높은 첨탑이 특징입니다. 큰 창문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도 일품이지요. 신의 빛을 교회 내부에 품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프랑스 파리 고딕 성당 중 하나인 생트샤펠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사진출처=Oldmanisold]
고딕 양식의 랭스 대성당.
가톨릭의 중심인 로마에서도 이같은 건축이 야만족인 고트족의 양식이라며 ‘고딕’이라고 비하합니다. 일련의 멸칭이었는데, 그 압도적 아름다움 때문에 고딕 양식은 어느덧 미의 상징이 되었지요.
마리아 숭배도 본격화
“성모시여, 우리 프랑스를 구원하소서.”

쉬제르와 베르나르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분노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위해서는 새로운 구원자를 찾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꾸짖고, 어머니는 이를 보듬는 모습은 중세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젊은왕 필리프의 죽음으로 기울고 있는 프랑스를 성모 마리아께서 다시 품어줄 수 있다는 복음이었지요.

7세기 묘사된 마리아의 모습. 지금처럼 크게 숭배되지 않던 시절이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성모 마리아 숭배가 거의 없었습니다. 젊은왕 필리프의 죽음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세로 자리 잡습니다. 특히 루이 7세는 “마리아는 나의 어머니시다”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했을 정도였습니다. 루이 7세의 딸 이름 역시 ‘마리아’였습니다. 당시 마리아라는 이름은 거의 짓지 않던 이름이었지요.
마리아 숭배는 11세기 프랑스 이후로 크게 늘어났다. 안토넬로의 수태고지의 성모.
쉬제르와 베르나르는 전 프랑스가 마리아를 숭배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인식할 수 있게끔 마리아의 도상학적 특징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백합과 파란색이었습니다.

순수함과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과 ‘청금’이라고 불릴 중도로 고급의 대명사였던 파란색을 성모의 이미지와 결합한 것이었지요. 루이 7세는 그 도상학적 특징을 프랑스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프랑스 왕실의 상징인 파란색과 흰 백합의 조합은 11세기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림은 태양왕 루이14세.
프랑스 왕조의 상징이 파란색 바탕에 백합이 놓인 배경입니다. 그 덕분인지 프랑스의 국력은 점점 회복되기 시작하지요. 마치 마리아가 프랑스를 굽어살핀 것처럼요.
고딕 성당의 아름다움은 비극적 사건 하나에서 꽃피운셈
백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고딕 성당들이 잇달아 완공됩니다. 프랑스는 이제 가톨릭의 큰 딸이자 성모 마리아의 나라였습니다. 프랑스의 군주들은 ‘성당’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합니다.
19세기 대관식을 위해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한 나폴레옹을 묘사한 그림.
프랑스의 많은 성당에 ‘노트르담’(Our Lady라는 뜻의 불어. 성모 마리아를 의미)이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본 명칭 역시 노트르담 드 파리입니다.

오는 4월 15일이면,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인 지 5년째가 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재건의 과정에서 또 다른 미가 탄생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젊은왕 필리프의 죽음이 프랑스의 아름다움을 만든 것처럼. 역사는 그렇게 시나브로 나아갑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올해 말 재건이 예정돼 있다. [사진출처=Ali Sabbagh]
<네줄요약>

ㅇ12세기 프랑스의 젊은왕 필리프가 집돼지와 부딪히는 사고로 죽은 뒤 국운이 기울었다. 마치 신의 저주처럼.

ㅇ뒤를 이은 왕 루이 7세는 이를 극복하고자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면서 많은 성당을 짓고 그녀를 숭배하는 여러 도상을 도입했다.

ㅇ프랑스를 대표하는 고딕성당이 그 결과물이었다. 마리아를 상징하는 하얀백합, 파란색도 왕조의 상징으로 삼았다.

ㅇ프랑스 많은 성당 이름에 ‘노트르담’(성모 마리아를 의미)이 붙은 이유다.

<참고문헌>

ㅇ미셸 파스투로, 돼지에게 살해된 왕, 오롯,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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