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왕을 먹어 치웠다”…기이한 사건 하나가 만든 역설 [사색(史色)]
[사색-64] 젊은 왕이 저잣거리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농사는 잘되는지, 시장은 활발한지, 굶어 죽는 이는 없는지. 시민들도 그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민중을 살피는 그의 심성을 알고 미소를 보냈지요.
해가 저물 무렵이었습니다. 이제 궁으로 돌아갈 시간. 왕이 말머리를 돌리던 순간, 무언가가 확 스쳐 지나갑니다. ‘돼지’였습니다. 말은 소스라치게 놀라 앞다리와 대가리를 치켜세웁니다. 왕이 고꾸라질 때 하필이면 머리가 바위 위로 떨어집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신체 위에 말발굽이 연달아 박힙니다. 얼굴에 한발짝, 심장에 한발짝, 갈비뼈에 한발짝.
불운이 또 다른 불운을 불러온다는 머피의 법칙은 ‘국가’에도 적용됩니다. 왕의 죽음 이후 국가적 불행이 연달아 닥쳤기 때문입니다. 전쟁, 영토 손실, 교황으로부터 파문. 프랑스는 ‘저주받은’ 국가처럼 보였습니다.
돼지 한 마리 때문에 죽어버린 왕, 프랑스의 아름다운 고딕 성당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는 4월 15일은 고딕의 대표 건축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탄지 5년째 되는 날입니다.
젊은왕 필리프가 즉위한 건 1129년 4월 14일이었습니다. 아버지였던 루이 6세는 아들 필리프를 자신과 같은 ‘공동왕’(Rex junior)으로 내세웠지요. 카페왕조 초기 왕권이 불안했기에, 왕세자를 공동왕으로 올리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젊고 힘 있는 왕세자가 ‘왕’이라는 타이틀로 통치해야 아무래도 힘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1131년 10월에 필리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돼지 한 마리 때문이었습니다. 훅 튀어나온 돼지에 놀란 말이 필리프를 바닥으로 내팽개친 것이지요. 심각한 낙상사고였습니다. 시민들은 “불결한 집돼지가 왕을 먹어치웠다”고 수근댔지요.
필리프의 죽음을 슬퍼한 건 왕가만이 아니었습니다. 시민들 역시 젊은왕의 죽음을 불안하게 느꼈지요. 당시는 아주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신의 뜻처럼 비치던, ‘종교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왕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그것도 돼지 한 마리 때문이라면 더욱 더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되던 것이지요. 당시 연대기에는 필리프의 죽음을 이렇게 적었지요. “불명예스럽고, 비천한, 수치스럽고 동시에 비참한 죽음.”
바꿔말하면 성무 없이는 태어날 수도, 결혼할 수도, 죽을 수도 없다는 뜻이었지요. 오늘날로 얘기하면 국가의 행정시스템이 올스톱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루이7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치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그리스도”라고 힐난하는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였지요.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가정사’로부터 터져 나옵니다. 루이7세가 부인 엘레오노르와 이혼하면서였습니다. 엘레오노르는 프랑스의 빵 바구니라고 불리는 아키텐 지역의 공작 가문의 여식. 그녀는 루이 7세와 이혼하면서 이웃 잉글랜드 헨리 2세와 재혼을 결정합니다. 지참금으로 가져온 영토도 다시 가져간다는 뜻이었지요.
저주받은 프랑스를 정상화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종교에 더욱 귀의하는 것. 그럼으로써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 프랑스의 왕족, 귀족, 일반 시민계층 모두가 종교에 빠져들었지요.
루이 7세도 두고만 볼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카페 왕조를 구할 고언을 얻고자 덕망있는 종교인 두 사람을 소환합니다. 생드니 수도원장 쉬제르와 클레르보 대주교 성 베르나르였습니다. 두 사람은 조언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닿을 수 있을 만큼 높은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요. 후대 사람들은 이를 ‘고딕양식’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 루이7세 시기부터 본격 등장한 고딕 건축물은 신께 용서를 구하는 듯한 높은 첨탑이 특징입니다. 큰 창문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도 일품이지요. 신의 빛을 교회 내부에 품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쉬제르와 베르나르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분노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위해서는 새로운 구원자를 찾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꾸짖고, 어머니는 이를 보듬는 모습은 중세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젊은왕 필리프의 죽음으로 기울고 있는 프랑스를 성모 마리아께서 다시 품어줄 수 있다는 복음이었지요.
순수함과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과 ‘청금’이라고 불릴 중도로 고급의 대명사였던 파란색을 성모의 이미지와 결합한 것이었지요. 루이 7세는 그 도상학적 특징을 프랑스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오는 4월 15일이면,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인 지 5년째가 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재건의 과정에서 또 다른 미가 탄생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젊은왕 필리프의 죽음이 프랑스의 아름다움을 만든 것처럼. 역사는 그렇게 시나브로 나아갑니다.
ㅇ12세기 프랑스의 젊은왕 필리프가 집돼지와 부딪히는 사고로 죽은 뒤 국운이 기울었다. 마치 신의 저주처럼.
ㅇ뒤를 이은 왕 루이 7세는 이를 극복하고자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면서 많은 성당을 짓고 그녀를 숭배하는 여러 도상을 도입했다.
ㅇ프랑스를 대표하는 고딕성당이 그 결과물이었다. 마리아를 상징하는 하얀백합, 파란색도 왕조의 상징으로 삼았다.
ㅇ프랑스 많은 성당 이름에 ‘노트르담’(성모 마리아를 의미)이 붙은 이유다.
<참고문헌>
ㅇ미셸 파스투로, 돼지에게 살해된 왕, 오롯,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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