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고립 택한 북한 축구 [경기장의 안과 밖]
북한과 일본의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B조 4차전은 3월26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3월20일 북한은 돌연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이 경기를 개최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일본과 3차전(도쿄 원정)에서 0-1로 석패한 지 하루 뒤 일이었다. 16년 만의 월드컵 출전 가능성을 스스로 걷어찼다.
일반적으로 경기 연기 요청은 전쟁이나 소요 사태, 악천후 등 선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는 변수가 발생할 때 이뤄진다. 북한은 홈경기 개최의 권리와 의무를 모두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 장소 마련 등 의견도 내지 않은 채 평양에서의 경기 진행 불가만을 주장했다. AFC는 상위 단체인 국제축구연맹(FIFA)으로 이 사안을 넘겼다. FIFA는 경기 취소를 선언하고, 규정에 따라 일본의 3-0 부전승으로 매듭을 지었다. 홈경기 개최 의무를 저버린 북한에 대체 경기 기회를 주지 않고 몰수패를 안긴 것이다. 동시에 북한 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서 추가 징계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이 세계 무대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건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이다.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해 화제를 모았다. 2019년 10월 예선전 당시 북한은 평양에서의 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 친선전 이후 29년 만에 평양 원정에 나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다만 북한은 한국 취재진의 입국과 중계방송을 금지했다. 손흥민·김민재 등이 출전한 가운데 현장에 있는 대표팀 관계자가 문자로 상황을 전달하는 ‘깜깜이 중계’가 화제가 됐다. 이후 북한은 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패하고, 레바논 원정에서는 비겼다. 이것이 지난해 월드컵 2차 예선에 참가하기 전까지 북한의 마지막 A매치 기록이다.
그사이 북한은 국제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동안 월드컵 예선 일정이 연기됐는데, 2021년 5월 북한은 월드컵 예선 잔여 일정과 향후 아시안컵 일정을 모두 포기한다는 의사를 AFC에 전달한 것이다. 당시 북한은 H조에서 2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조 2위로 최종 예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연기된 일정을 2주 동안 한국에서 진행하겠다’는 AFC의 결정에 반발해 기권한 것이다. 연령별 대표팀도 기조는 같았다. FIFA 랭킹 10위권 이내를 꾸준히 유지한 세계적 강호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도 대부분의 대회에 불참하거나 기권했다.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던 특급 유망주가 이 과정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북한의 호날두’라는 별칭을 갖고 있던 한광성이 대표적이다.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취임 후 ‘스포츠를 통한 정상 국가’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NBA 스타 데니스 로드먼과의 친분을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정치인·사업가들을 통해 북한의 축구 유망주를 유럽으로 진출시켰다.
한광성은 그중 대표 격인 인물이다. 만 18세에 이탈리아 무대에 진출해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유럽 입성 2년 만인 2019년 세리에 A 최고 명문인 유벤투스의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축구계 이목이 쏠린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광성은 유벤투스에서 기대만큼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이후 그의 무대는 중동이었다. 카타르 강호 알두하일에 입단했다. 유벤투스는 한광성에게 투자한 이적 자금을 회수하고, 북한은 기량 대비 많은 돈을 지급하는 중동에서 외화벌이를 기대할 수 있는 이적이었다. 한광성은 알두하일과 연봉 20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월 2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은 모두 북한에 송금했다고 알려졌다. 한광성의 카타르 생활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97호에 따라, 알두하일은 한광성을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11월 한광성의 근황이 알려졌다.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며 국제 스포츠에 복귀한 북한 축구대표팀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광성은 2차 예선 B조 첫 경기인 시리아 원정에 나섰다. 미얀마 원정에서는 1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쳤다. 이후 조총련이 발행하는 〈조선신보〉를 통해 그가 4·25 체육단 소속이라는 사실도 공개됐다. 지난 일본 원정경기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선수는 한광성이었다. 실제 가장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은 일본에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한광성을 앞세워 날카로운 공격을 펼쳤다. 오프사이드 파울로 골이 취소된 상황도 나왔다. 엘리트 선수의 기량은 여전히 묵직했다.
반짝이던 그의 존재감은 북한이 평양 경기 개최를 거부하면서 다시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사라졌다. 시리아, 미얀마, 일본을 상대로 원정 3연전을 마친 북한은 홈 3경기를 남겨둔 상태였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스포츠를 통해 폐쇄성을 해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본과의 4차전을 잘 버티면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 가능성은 충분했다. 6월로 예정된 시리아와의 홈경기가 실질적인 조 2위 결정전이 될 분위기였다.
일본발 전염병 때문에? 실익 없어서?
경기 개최를 거부한 이유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난무한다. 일본발 전염병을 의식했다는 설이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최근 일본에서 감염자가 늘고 있는 연쇄상구균독성쇼크증후군(STSS)을 보도하며, 예민한 분위기를 보였다. 일본 선수단이 방북해 전염병이 퍼질까 봐 우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미 북한 선수단 30여 명이 일본에 입국해 원정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이런 이유로 홈경기만 거부한다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반박도 나온다. 평양의 현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는 점을 꺼렸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 극히 통제된 자국 상황만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북한의 특성상, 20명 넘는 일본 기자들의 방문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취재 신청을 한 일본 기자 중 재일동포 3세를 비롯한 한국계와 미국계 기자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실익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반발이라는 관측도 있다. 월드컵 2차 예선 경기 티켓과 중계권 판매 수익은 홈팀 축구협회가 갖는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로 경기 중계권을 판매할 수 없다. 2019년 한국이 평양에서 원정경기를 치를 때도 이런 이유로 중계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한 조에 편성된 뒤 북한은 일본 방송국에 평양 홈경기 중계권을 약 150만 달러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결국 이 구상은 불발됐다. 경기 수익을 챙기지 못하는 북한으로서는 ‘개최 포기’의 출혈도 다른 나라보다 적은 셈이다.
그러나 북한이 기대했던, 국제 스포츠를 통한 외교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미 2021년 도쿄올림픽에 일방적으로 불참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관 대회에 참가 자격이 정지된 사례가 있다. FIFA도 비슷한 형태의 징계를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한광성을 비롯한, 전성기가 짧은 축구 선수들에게는 치명적 조치다. 하네다 공항으로 입출국하는 북한 선수단을 향해 인공기를 흔들던 조총련 관계자들의 모습은 소소한 화제를 모았다. 당분간 이것이 북한 스포츠가 남긴 마지막 이미지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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