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희생자 김기웅씨의 어머니 김광숙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98]

조남진 기자 2024. 4. 1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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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씨(70)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아들 김기웅씨(당시 28세)와 그해 10월 아들과 결혼을 약속한 예비 며느리 정현선씨(당시 28세), 그리고 조카 방현수씨(당시 21세)를 세월호 참사로 잃었다.

지금은 결혼한 딸네 집과 인천 집, 그리고 세월호 일반인추모관을 오가며 살고 있다.

현선이는 세월호 정식 직원이라 제주도 갔다 오면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같이 밥해 먹고 가고 한 3년을 그랬어요.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제가 세월호 가족인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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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시사IN〉이 그날까지 ‘세월호 사람들’ 100명을 만납니다.
김광숙씨는 세월호 참사로 아들과 예비 며느리, 조카를 잃었다. ⓒ시사IN 조남진

김광숙씨(70)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아들 김기웅씨(당시 28세)와 그해 10월 아들과 결혼을 약속한 예비 며느리 정현선씨(당시 28세), 그리고 조카 방현수씨(당시 21세)를 세월호 참사로 잃었다. 지금은 결혼한 딸네 집과 인천 집, 그리고 세월호 일반인추모관을 오가며 살고 있다.

“이런 큰 사고가 남한테만 나는 줄 알았지 내 자식한테 올 줄은 몰랐어요. 세월이 흐르면 잊힌다고도 하던데…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자식 보고 사니까 그냥 잊어가면서 사는데, 자식이 그렇게 되니깐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새록새록 기억이 더 나요. 문득문득 보고 싶고….

우리 기웅이는 대학교 4학년이었어요. 불꽃놀이 진행요원으로 알바를 했는데, 화약을 다루는 일이라서 위험물 취급 자격증도 땄어요. 그래서 알바치고는 괜찮았어요. 원래 오하마나호를 탔는데 아마 세월호에는 그날 처음 탔던 것 같아요. 기웅이는 그해 7월에 학교 졸업하면 현선이랑 10월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상태였어요. 현선이는 세월호 정식 직원이라 제주도 갔다 오면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같이 밥해 먹고 가고… 한 3년을 그랬어요.

세월호가 기울었을 때 기웅이 괜찮냐고 사람들이 많이 물어봤어요. 그래서 ‘우리 아들은 그 배 안 탔는데, 며느릿감이 타서 걱정’이라고 말했어요. 그날 우리 제부도 9시쯤 뉴스를 보고 걱정돼서 전화했대요. 현수한테 전화를 했는데 우리 기웅이가 건네받았대요. ‘이모부,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큰 배가 태풍도 아니고 쓰러질 리 없어요’ 하더래요. 그래서 기웅이랑 현수가 세월호에 탔다는 걸 알게 됐죠. 방현수는 우리 막내 여동생 외동아들이에요. 군대 갈 날 받아놓고 용돈이라도 벌겠다고 그 배를 탔는데 잘못됐어요. 우리 아들이랑 현선이는 승객들을 구하다가 잘못돼서 ‘의사자’로 지정됐어요.

4월16일 아침에 사고 소식을 듣고 나서 제부랑 진도로 내려갔어요. 팽목항에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기웅이랑 현선이는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현수도 나왔는지 물어보니까 ‘아유 기웅이랑 다 나왔으면 현수도 나왔겠죠’라고 해요. 그래서 그날 밤새 목포에 있는 병원을 다 찾아다녔는데 없더라고요. 이튿날 아침에 배를 타고 사고 지점을 갔는데, 현장 도착하자마자 뉴스에 나오더라고요. 기웅이랑 현선이 나왔다고. 현수는 한동안 못 나왔는데, 현수 생일이 4월 말이거든요. 그래서 현수 엄마인 우리 막내 여동생이 ‘너 생일 밥 먹으려면 빨리 나타나라’고 그랬어요. 그래서인가 4월29일 생일 전날 현수도 나왔어요.

세월호 침몰하고 나서 우리 애 어렸을 때부터 살던 동네를 떠났어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니까 이겨내지 못하겠더라고요. 뒤에서 수군수군하는데 가슴 아픈 소리만 하는 거예요. 자식 팔아서 부자 되려고, 한밑천 잡으려고 하느냐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그래서 그 동네를 떠났어요.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제가 세월호 가족인지 몰라요. 숨기고 사는 거지요. 누가 아들은 없냐고 물어보면 우리 아들 유학 갔다고 해요. 외국으로 유학 보냈는데 아주 이민 가서 안 온다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요. 아들 보고 싶을 때, 설 때 떡국 끓여주러 가고, 추석 때는 송편 놔주러 가고, 생일 때 가고, ‘크리스마스이브다 아들’ 하면서 가고, 그렇게 일반인 추모관을 오가면서 살고 있어요.”

김광숙씨 휴대전화에 남겨진 아들 고 김기웅씨와 예비 며느리 고 정현선씨의 사진. ⓒ시사IN 조남진

 

조남진 기자 chanm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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