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여사님’들, 한복 입고 불 꺼진 청사 앞에서…봄날의 ‘찰칵’
지방 작은 검찰청에서 요리·청소
범죄피해자 지원 등 업무 묵묵히
처음 찍은 사진 속 자부심 가득
범죄·수사 너머엔 이들의 노동이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지역의 작은 검찰청에서 지청장으로 근무할 때의 기억이다. 검찰청 직원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빠져나간 시간, 성 여사와 권 여사와 이 처장은 구내식당에 모여 앉았다. 계절은 봄이 한창이다. 검찰청 청사 앞 천변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계절에 맞춰 검찰청 구내식당 메뉴는 봄나물 비빔밥이다. 여사님들은 식판 대신 커다란 대접에 나물들을 수북하게 담아 와 앉았다. 살이 연한 풋나물 위로 냉이 된장을 척척 끼얹어 비벼 먹는 맛은 다른 무엇에 비할 수 없는, 봄맛, 그 자체.
언젠가 여사님들에게 왜 직원들 식사시간이 다 끝나고 나서야 식사를 하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밥을 하시는 성 여사님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두분은 일찍 다른 직원들과 같이 드셔도 되지 않느냐고.
“에이, 우리는 그냥 나중에 따로 먹는 게 편해요. 그래야 반찬도 마음껏 많이 갖다 놓고 먹고요. 다 먹고 나서 믹스커피도 한잔씩 타 마시고요.”
검찰청 공무원증을 목에 건 젊은 직원들이 새모이만큼(여사님들 표현이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카페로 몰려간 이후에야 마침내 시작되는 여사님들의 여유롭고도 풍성한 식사시간을 상상하니 냉이 된장의 향내와 함께 부러움 같은 것이 울컥 올라왔다.
“꽃놀이엔 모름지기 한복 입어야”
구내식당의 음식은 성 여사님이 만드신다. 규모가 작은 검찰청에 딸린 구내식당인지라 영양사·조리사도 따로 없고 성 여사님 혼자서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친다. 젊은 직원들은 항상 고기반찬이 부족하다고 불만이기에 돈가스도 튀기고 제육볶음도 만든다. 성 여사님의 나이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손이 빠르고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가끔 특식을 하는 날에는 권 여사님이 오셔서 손을 보탠다.
권 여사님은 공무직 관리사이다. 청사 관리와 환경 미화가 권 여사님의 일이다. 검찰청에 누구보다 일찍 출근을 해 화장실이며 복도며 반짝반짝 닦아두신다. 검찰청 화단에 꽃도 심고 화단 구석에는 상추에 파에 쑥갓도 심는다. 퇴근 뒤에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손자·손녀 돌보고, 집안에서 하는 나락농사, 감농사도 거든다.
그리고 나에게 우리 검찰청 ‘세 여사님 스토리’를 들려주시고 계신 분은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의 사무처장님이시다. 말하자면 세 여사님 중에서는 유일한 사무직이고, 이제 갓 60대에 들어선 ‘젊은 막내’다. 이 처장님은 이 지역의 범죄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신다. 집 밖에 나가기 무섭고 사람 그림자만 봐도 깜짝깜짝 놀란다는 피해자들을 불러 비누도 만들고 꽃나무도 심는다.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엉켜 안고 울기도 하고, ‘그놈’이 어떻게 재판받는지 보자고 피해자의 손을 잡고 법정 모니터링도 씩씩하게 다니신다.
그 검찰청에서 성 여사님이 해주신 밥 먹고, 권 여사님이 닦아주신 책상에 앉아 온갖 범죄기록을 헤집던 나는, 어느 봄날의 오후 이 처장님의 사무실에서 여사님들의 특별한 꽃놀이 이야기를 들었다. 처장님이 새로 만들었다는 쑥 미숫가루 한잔을 내어놓으시며 내게 말했다.
“아니 글쎄, 성 여사님, 권 여사님이 꽃놀이를 못 가서 병이 난 거예요.”
나는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물었다.
“꽃놀이는 그냥 가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당장 검찰청 문만 나서면 죄다 벚꽃이잖아요.”
“저도 그렇게 말했죠. 당장이라도 가면 되지. 근데 이 여사님들 말이 꽃놀이는 모름지기 한복을 딱 떨쳐입고 가야 진짜라는 겁니다.”
아…. 한복이요? 원래 꽃놀이는 한복 입고 하는 거였나? 뜻밖에 본격적인 전개였다. 처장님이 말을 이었다.
“‘나는 한복이 없는데…’ 했더니 성 여사님이 자기한테 한벌 더 있대요. 그래서 성 여사님이 내 한복까지 싸 와서 꽃놀이를 가기로 했거든요. 아니 그런데, 이 여사님들이 자기들은 자식들 결혼시킬 때 맞춘 예쁜 신식 한복을 입고요, 저한테는 진짜 옛날 한복을 준 거예요.”
그러면서 처장님이 내민 사진을 보고 하마터면 마시던 미숫가루를 뿜을 뻔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연분홍색, 보라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두 여사님 사이에 처장님 혼자 아래위로 호박색인 공단(두껍고 무늬가 없는 비단) 한복을 입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키가 큰 편인 처장님의 흰 양말 발목이 치맛자락 아래로 껑충하니 드러났다. 머리 위로는 지역의 자랑인 북천 왕벚꽃이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꽃놀이 날. 온 지역 사람이 다 꽃놀이를 나온 듯한 날이어서 처장님은 아는 사람 만날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알고 지내던 시청 공무원을 딱 마주쳤다고 한다. 시청 공무원은 마침 벚꽃길 홍보 사진을 찍는 중이라며 한복을 입은 세 여성에게 사진을 좀 찍자고 제안했다.
“저는 우리 여사님들이 절대 안 된다 할 줄 알았거든요. 아, 웬걸요. 말 끝나기 무섭게 벌써 나무 밑에 떡하니 서서 포즈를 잡고 있는데, 이것 보세요. 포즈가 아주 의젓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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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아무도 없으니 후딱 찍자”
나는 처장님으로부터 아예 휴대폰을 넘겨받아 꽃나무 아래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사님들의 사진을 차례로 넘겨 보았다. 검찰청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천진하고 화사한 모습이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웃고 계신 여사님들의 사진을 신나게 넘기다가 어느 사진 한장에서 문득 손가락을 멈췄다. 어두운 밤 불 꺼진 검찰청 앞에 한복을 입고 서 계신 여사님의 사진이었다. 내가 어느 사진에서 멈췄는지 안다는 듯 처장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이제까지 검찰청에서 일하면서 이런 사진 한번 찍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밤에 아무도 없으니까 한장씩 후딱 찍자고 했어요. 엄청 좋아들 하시더라고요. 이제 어디 가서 나도 검찰청에서 일한다 하고 보여줄 거라고….”
앞치마를 벗고, 장화를 벗고 꽃보다 고운 한복을 입고서, 검찰청 마크가 잘 보이는 각도로 단정히 서서 정면을 응시하는 여사님들의 표정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자부심 가득한 미소로 웃고 계신 여사님들의 등 뒤로 그녀들이 쓸고 닦고 밥해 먹이는 힘으로 굴러가는 나의 직장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검찰청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가끔 글로 써 내는 일을 하는 나에게 세상이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대단한 무언가에 대한 것이다. 기막힌 범죄, 흥미로운 수사, 눈물겨운 사연들과 사회 정의를 위한 제언, 그도 아니면 차라리 권력조직의 구린 민낯에 대한 것. 그러나 검찰청 담벼락 위로도 편견 없이 연분홍의 봄꽃이 쏟아지는 날, 나는 문서창을 열고 검찰청 어딘가에서 콧노래 흥얼거릴 여사님들의 꽃놀이에 대해 쓴다. 체포와 구속, 거악과 척결 같은 각 잡힌 단어들 너머로 자부심 화사한 여사님들의 노동 역시 있다는 사실을 기록해둔다. 그런다고 검찰을 향한 세상의 서릿발 같은 시선이 누그러질 리 없겠지만, 그저 봄이기도 해서 말이다.
대구지검 부장검사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9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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