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젊은 당신이 혈당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
당뇨 환자가 점점 젊어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좋지 않은 식습관과 과체중이 당뇨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직 젊은 당신이 지금부터 혈당을 관리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하지만 그 밖에도 우리가 혈당에 신경써야 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혈당이 다이어트, 뇌 활동,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하나씩 살펴보자.
● 가짜 배고픔 유도하는 혈당 스파이크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SNS를 보면 하루에 한 끼만 먹는 '1일 1식 다이어트',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키토 다이어트' 등 각양각색의 다이어트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중 최근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것이 혈당 다이어트다. '-8kg 빼는 동안 꼭 지킨 것, 혈당 스파이크 막기', '혈당 스파이크만 잡아도 살 빠진다'와 같은 제목은 마치 혈당 스파이크가 살이 찌는 원인이고 오르는 혈당만 잡으면 살이 빠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혈당 스파이크가 오면 살이 찌는 것은 사실일까. 인과관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몸의 혈당 조절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혈액 속 포도당은 기본적으로 몸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원료다. 음식을 섭취하면 탄수화물은 소화 과정을 거쳐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분해된 포도당은 소장을 통해 혈류로 흡수되고 이로 인해 혈액 내 포도당의 농도, 혈당 수치가 오른다. 이것을 혈류 속 포도당의 농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내분비세포 덩어리, 췌도의 베타세포가 감지하고 인슐린을 분비한다.
인슐린은 혈액을 타고 흐르는 포도당을 세포 내로 전달하는 경로를 활성화한다. 세포 내로 운반된 포도당은 미토콘드리아에서 TCA(Tricarboxylic Acid・트라이카복실산) 회로를 거치고 산화적 인산화를 통해 대량의 ATP를 생산한다.
만약 포도당을 에너지로 환원한 뒤에도 혈액 내에 포도당이 남아있다면 인슐린은 일차적으로 포도당을 간, 근육에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한다. 그러고도 포도당이 남아있으면 지방조직에 지방으로 저장한다. 인슐린이 이렇게 혈액 속 포도당을 모두 처리하고 나면 혈당 수치가 다시 떨어진다.
다시 돌아와 혈당 스파이크는 우리 몸이 처리해야 하는 포도당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상황이다.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양보다 더 많은 양의 포도당은 결국 지방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체중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한 두번의 혈당 스파이크가 직접적인 체중 증가로 이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혈당 스파이크 후에 오는 '가짜 배고픔'이 체중 증가를 유도한다. 김유미 세종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인슐린 호르몬이 급격히 분비되면 혈당도 급격히 떨어진다. 뇌는 이것을 에너지 부족 상태, 저혈당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짜 배고픔은 또 다른 섭취로 이어지고 그 결과 혈액 속 포도당의 농도는 다시 높아진다. 간과 근육에 저장하고도 남은 포도당은 지방조직에 저장된다고 했는데 그 양은 거의 제한이 없다. 체지방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김 교수가 급격한 인슐린 분비, 인슐린 스파이크가 체중 감량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대사장애, 비만, 당뇨 등의 질병 원인과 치료를 연구하는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혈당 자체가 체중 감량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혈당 스파이크가 자주 발생한다는 건 혈중 포도당의 양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며 "높은 혈당은 지방 축적과 체중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도한 체중의 증가는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한다"고 강조했다. 인슐린 저항성은 세포막 단백질인 인슐린 수용체의 이상으로 인슐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세포 내로 포도당을 옮길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김하일 교수는 "인슐린 저항성이 나타나면 충분한 당을 섭취해도 당이 세포 내로 잘 들어가지 못하고 에너지 생성으로 이어지지 않아 우리 몸은 더 많은 당을 원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시간으로 체내 혈당을 보여주는 연속혈당측정기(CGM)가 다이어트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과거 다이어트를 돕는 보조제로 식욕을 억제하는 '식욕 억제제', 영양소 흡수를 막는 '칼로리컷팅제' 등이 있었다면 최근엔 혈당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관리하는 CGM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혈당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식단 조절을 하게 돼 혈당 상승과 과도한 인슐린 분비를 방지하면 체중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대한비만학회는 3월 5일 "체중 감량을 위한 CGM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하지 않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비만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CGM은 당뇨인들을 위한 제품으로 당뇨병이 없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매우 부족하다"며 "진료지침위원회의 문헌을 통해 살펴본 결과 체중 관리에 대한 CGM의 효과를 확인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아직 과학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고가의 제품이 마치 과학적 원리로 만들어진 다이어트의 보조도구인 양 홍보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조금 다른 의견도 있다. 문준호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CGM으로 혈당을 관리하는 것이 체중 및 혈당 관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CGM은 자신의 혈당을 눈으로 볼 수 있어 건강한 생활방식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이는 자연스레 체중 감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과학적 근거가 다소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CGM과 체중 감량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하일 교수 역시 "어떤 원리로 혈당 관리가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필요에 의한 현명한 소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초콜릿이 집중력 높인다? 피로 유발할 수도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에 몰두하고 난 뒤 '당 떨어진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는 뇌의 에너지원이 바로 포도당이기 때문이다. 뇌 세포는 포도당을 분해해 에너지(ATP)를 생성한다.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시험을 치르기 전 초콜릿이나 사탕처럼 단 간식을 먹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대로 밥이나 간식을 많이 먹고난 뒤 머리가 멍하거나 졸음이 쏟아지는 경험을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뇌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한 것인데 왜 우리는 피로감과 집중력 감소를 느낄까. 여기엔 여러 복합적 이유가 작용한다.
먼저 섭취한 음식을 소화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혈액이 소화기관으로 쏠리고 뇌로 향하는 혈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뇌로 향하는 혈액이 줄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포도당 공급도 줄어든다. 적절한 에너지 공급을 받지 못한 뇌는 활동량이 감소하고 사람은 피로를 느낀다.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혈당이 급격히 낮아지는 것도 피로감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혈당이 뚝 떨어지면 인슐린과 대조적으로 혈당을 올리는 작용을 하는 글루카곤,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이 나온다. 이들은 우리 몸이 스트레스 상황일 때 반응하는 교감신경계 호르몬이다. 지속적으로 분비되면 우리 몸은 비상 상황이라고 여긴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김유미 교수는 "적당한 당 섭취는 피로를 해소하지만 과한 당 섭취는 반대로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며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나 과한 단순 당 섭취는 집중력이 필요한 청소년에게 특히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시험 전 집중력을 더욱 높이고 싶다면 간식으로 초콜릿이나 사탕과 같은 단순 당보다는 섬유질과 당이 함께 포함된 과일이나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포함한 견과류를 먹는 것이 좋다.
한편 혈당은 우리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분이 꿀꿀할 때 매콤달콤한 떡볶이나 꾸덕꾸덕한 브라우니를 먹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당 섭취는 스트레스를 낮추고 기분을 환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슐린이 혈당을 조절하는 역할 외에 아미노산 중 하나인 트립토판이 뇌로 이동하도록 촉진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트립토판은 세로토닌의 전구체로 뇌 속 트립토판 수치가 증가하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합성이 증가해 실제로 기분이 좋아진다. 또한 포도당은 보상, 쾌락과 관련된 도파민 분비도 촉진한다. 미국 임상영양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당을 먹으면 뇌의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돼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doi: 10.1093/ajcn/62.1.242S)
하지만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과한 당을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김유미 교수는 "최근 탕후루, 마라탕처럼 고탄수화물 식단이 유행해 지속적으로 과한 당을 섭취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과한 당 섭취는 도파민 수용체의 민감도를 감소시켜 보상 시스템의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달콤한 간식을 많이 먹는 데 익숙해지면 이후엔 더 많은 양을 먹어야 기분이 개선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몸 속 세로토닌의 양은 적당히 조절될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균형이 깨지면 우울감 등을 유발한다. 김 교수는 "우리 몸은 수많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매 순간 협업하며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며 "과한 당 섭취는 이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노화를 가속하는 혈당 스파이크
한동안 '저속노화밥'이라는 단어가 X(구 트위터)를 뜨겁게 달궜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언급하는 키워드를 보여주는 '실시간 트렌드'에 저속노화밥이 오르기도 했다. 저속노화밥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제안하는 것으로 렌틸, 귀리, 현미, 백미를 혼합한 뒤 전기 찜솥에서 조리하면 혈당지수가 낮은 밥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에서 나왔다.
정 교수는 저서 '느리게 늙는 법'을 통해 혈당지수가 낮은 밥을 섭취하는 것은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노화는 단순히 30대 전후로 찾아오는 주름, 탈모와 같은 외모의 노화가 아니다.
의학계에서 말하는 노화는 '세포의 노화(Senescence)'다. 세포가 더 이상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고장난 세포가 염증을 분비해 염증 수치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문 교수는 "세포를 고장 내고 염증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활성산소(ROS・Reactive Oxygen Species)"라고 설명했다. 활성산소는 포도당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포도당은 우리 몸에서 산소와 만나 TCA 회로라는 세포호흡 과정을 거치며 이산화탄소와 물, ATP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산소는 완전히 물로 환원되지 않고 중간 생성물인 활성산소를 만든다.
활성산소는 비공유 전자를 가진 원자라 반응성이 높다. 반응성이 높다는 것은 다른 분자와 상호작용해 화학적 변화를 유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활성산소는 다른 세포들에게 산화 반응을 일으켜 손상을 입히고 염증을 유발한다. 정리하면 혈액 속 포도당의 양이 많아지면 세포 내에서 과도한 세포호흡이 일어나고 그 중간 생성물인 활성산소가 많이 만들어져 세포의 노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 교수는 책을 통해 혈당지수가 높은 단순 당을 최대한 피하는 식습관으로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활성산소를 중화시키는 과일, 채소, 견과류 등의 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유미 교수는 "설탕과 단백질 간 반응에 의해 형성되는 최종 당화산물은 피부 탄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단백질인 콜라겐과 엘라스틴을 손상시켜 피부 탄력을 감소시킨다"며 "고혈당은 피부 노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 더 오래 건강히 살기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혈당을 관리해야 하는 다양한 이유를 살펴봤다.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다. 바로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다.
당뇨병은 췌도 속 베타세포의 기능이 저하되며 혈당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질병이다. 이는 베타세포를 많이 사용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동안 당뇨가 중장년층에서 많이 발병한 이유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탄수화물 위주의 서구화된 식습관을 즐기고 약과나 탕후루 같은 달달한 디저트를 자주 먹는 20~30대 청년들의 베타세포도 혹사당하고 있다. 젊은 시절 당뇨가 발병하면 남은 생애 동안 끊임없이 혈당을 관리해야 하고 끊임없이 합병증의 위험을 조심해야 한다.
'적당한 시기의 바느질 한 번이 나중에 아홉 번 바느질 할 일을 덜어준다(A Stitch In Time saves nine)'는 영어 속담이 있다. 적당한 시기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건강한 췌도를 가진 지금부터 혈당을 관리하는 것이 앞으로 당뇨병과 합병증 등의 질병을 막아줄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한다. 관리가 필요한 시기는 바로 지금부터라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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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4월호, [기획] 아직 젊은 당신이 혈당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
[김미래 기자 futurekim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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