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좋은 제주 고사리, 한참 꺾다 보면 "여기가 어디야?"
13∼14일 남원읍 한남리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4월부터 5월 중순까지를 제주에서는 '고사리철'이라고 부른다.
초여름에 접어들면 잎이 펴버리거나 줄기가 질겨져 맛이 없기 때문에 고사리철에 줄기가 여리고 부드러울 때 꺾어야 한다.
특히 '고사리 장마'라 불리는 봄비가 내린 뒤에는 고사리가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쑥 자라난다. 고수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는다.
누군가 이미 꺾은 데서도 비가 내리고 나면 새순이 다시 자란다. 봄철 동안 고사리를 9번이나 꺾을 수 있다고 해서 '고사리는 아홉 형제'라는 속담도 있다.
초보자들은 우르르 들판이나 숲을 돌아다니지만, 고수들은 숨겨둔 자신만의 '포인트'를 찾아간다.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은 딸이나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명당을 찾아 깊숙이 들어가 고사리에 정신이 팔렸다가 길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주 길잃음 사고 41% '고사리 때문에'…고사리 찾아 땅만 보고 다니다 낭패
땅에서 올라온 고사리를 꺾으려면 허리를 구부려 몸을 숙이거나 쪼그려 앉게 되기 마련이다.
'고사리 삼매경'에 빠져 주위를 살피지 않고 바닥만 보며 몰두했다가 뒤늦게 고개를 들었을 때 '여기가 어디지?' 하며 당황하기 십상이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는 봄철마다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한다. 곳곳에 고사리철 길 잃음 경고 문구를 담은 플래카드도 내걸린다.
최근 5년(2019∼2023)간 제주에서 발생한 길 잃음 안전사고는 모두 459건이며 이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1명, 부상 19명이었다. 이 중 고사리 채취객 사고가 190건으로 전체의 41.4%를 차지했다.
올해도 고사리를 꺾으러 나섰다가 길을 잃는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5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한 들판에서 6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 1일 '고사리를 꺾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 뒤 귀가하지 않았으며, 휴대전화도 집에 두고 가 연락이 닿지 않자 가족이 실종 신고를 해 5일간 수색이 벌어졌다.
지난 8일에는 서귀포시 안덕면 남송이오름 인근에 고사리를 꺾으러 간 80대 B씨가 실종됐다가 이튿날 무사히 돌아왔다.
B씨는 스스로 오름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상점까지 찾아가 가족에게 연락해 비교적 양호한 건강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B씨는 휴대전화는 가지고 갔지만 배터리가 닳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고사리가 많이 나는 중산간 일대에는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곳이 많아 구조견에 드론까지 수색에 투입된다.
길 잃음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는 119구조견이 전진 배치됐다. 또한 소방당국과 경찰을 비롯해 드론산업협회 등 유관단체까지 드론 수색에 투입되고 있다.
소방본부는 고사리 채취객들에게 카카오맵을 설치하도록 해 동행자 간 실시간 위치를 서로 확인하고, 유사시 구조대원이 위치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주요 출입구에는 길 잃음 대처 키트 보관함을 설치했다. 여기에는 대처 방법이 담긴 리플릿과 호루라기, 생존 담요, 포도당 캔디, 빨간 비닐, 야광스틱 등이 들었다.
길 잃음 사고를 예방하려면 항상 일행과 함께 다니고 휴대전화와 보조 배터리, 호각 등 비상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비상시에 대비해 체온 유지를 위한 점퍼와 우의, 물과 비상식량, 손전등도 챙겨야 한다.
채취 중 수시로 일행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자주 주위를 살펴 너무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기억하고 있는 지점까지 되돌아가서 다시 위치를 확인하거나 119로 신고한다.
신고할 때 주변 건물 번호판이나 식당 등 간판 전화번호, 도로변 도로명판의 도로명과 기초번호, 전신주 번호, 국가지점 번호 등을 말하면 위치를 쉽게 알릴 수 있다.
뱀이나 진드기 등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수풀이나 가시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다 다칠 수 있기 때문에 튼튼한 재질의 바지와 장화 등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이 좋다.
제주의 전통시장 등에서는 고사리 채취를 위한 다양한 '아이템'도 판매한다.
큰 주머니가 달려서 고사리를 꺾어 바로 넣을 수 있고 주머니 아래쪽에 지퍼가 있어서 가득 찬 고사리를 쉽게 빼낼 수도 있는 '고사리 앞치마', 바닥에 쪼그려 앉을 때 허리를 덜 아프게 해주는 밭일용 작업 방석 등을 챙겨가면 편리하다.
'꺾으멍, 걸으멍, 쉬멍' 13∼14일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
이번 주말 고사리를 꺾으며 제주의 봄을 만끽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은 13∼14일 이틀간 남원읍 한남리 산 76-7 일대에서 제28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를 연다.
탁 트인 드넓은 목장 부지에서 고사리를 '꺾으멍, 걸으멍, 쉬멍'(꺾으며, 걸으며, 쉬며) 봄날의 기운을 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행사다.
고사리 체험장에서는 레트로 보물 고사리 찾기, 고사리 꺾어보기, 고사리 삶고 말리기 시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고사리 피자 만들기, 미니 경운기 체험, 쿠키 아이싱과 달고나 만들기 등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체험 부스도 운영된다.
13일에는 무대에서 제주MBC 정오의 희망곡 방송이 진행되며 이밖에 행사 기간 고사리 가요제, 끼린이 경연대회, 지역 주민과 로컬 뮤지션들의 다양한 공연 등이 펼쳐진다.
고사리는 맛이 좋고 영양 성분도 훌륭해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린다. 그중에서도 제주고사리는 '궐채'라고 불리며 과거 임금에게 진상됐다.
채취한 고사리는 독과 쓴맛을 빼기 위해 푹 삶아야 한다.
삶은 고사리는 나물로 무쳐 먹거나 고사리 육개장 등 각종 요리의 식재료로 사용한다. 말리거나 얼려서 보관해뒀다가 제사·명절 등에 쓰기도 한다.
큰 가방 한가득 고사리를 꺾었더라도 삶고 말린 뒤에는 양이 확 줄어들어 '이것밖에 안 되다니' 하며 실망할지도 모른다.
고사리를 꺾는 것도 일이지만, 삶은 뒤 볕 좋고 바람 좋은 데 펼쳐서 잘 말리는 것도 중요하다.
가시덤불을 헤쳐 고사리를 꺾고, 삶고, 말리는 수고스러움을 겪어야 하니 '소고기보다 비싸다'고 할 정도로 높은 몸값을 자랑할만 하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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