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 포용할 새 보수 가치 정립… 중도·실용주의로 수도권 민심 잡아야” [심층기획-보수 전면 개조하자]

조병욱 2024. 4. 13.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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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보수 재건 어떻게
“보수 완전 궤멸했단 사실 먼저 인정
與 싱크탱크 새 비전·노선 연구 시급
이데올로기 버리고 국민에 맞춰 변화
美·英·佛 보수정당처럼 중도 확장 필요”
2004년 3월24일, 보수계열 한나라당은 간판을 내렸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그 간판을 들고 서울 여의도공원을 지나 중소기업 전시관(현 서울국제금융센터·IFC)으로 쓰이던 공터까지 걸어갔다. 그곳에 천막 5동을 펼치고 당 간판을 내걸었다. 화장실도, 전기도 없는 ‘천막당사’의 시작이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과 비자금을 화물차 통째로 넘겨받은 ‘차떼기당’이라는 비판이 거셀 때였다. 그해 4·15일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50석도 못 건질 것이란 예상이 팽배했다. 그러나 84일간 천막당사를 이어간 끝에 막상 투표함을 열자 결과는 121석이었다. 이는 보수당이 소멸 위기에서 기사회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총선의 실패로 보수를 바닥에서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국민의힘 5선 서병수 의원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께서 죽어가는 보수 정당을 살려준 역사가 있다”며 “2004년 천막당사의 비장한 각오로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했기에 두 차례의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국민과 소통하면서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고, 국민께 떳떳하게 지지를 호소했던 그 역사부터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당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보수의 재건을 두고 다양한 방법론이 언급된다. 과거 한나라당은 당시 500억원으로 평가되던 여의도 당사 건물을 매각하는 형식적 변화부터 보였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미국처럼 중앙당이 없는 원내정당 체제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며 “당대표도 없고, 공천권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생길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는 지금 보수가 완전히 궤멸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보수는 망한다”고 경고했다.

여당의 싱크탱크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채 교수는 “보수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새로운 21세기에 변화된 시기에 맞게 중단기적 비전과 노선에 대한 이념적 연구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여의도연구원도 예전의 위상이 사라졌다”며 “원장만 근 1년 새 3번이나 바뀌었다. 당을 뒷받침할 정책 개발보다 여론조사만 돌리는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보수의 가치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봤다. 채 교수는 “실용보수, 중도보수가 필요하다”며 “이념보수나 영남당보다 수도권 민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도 “담론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며 “새로운 세대를 포용할 수 있는 이론 수립이나 포용적인 중장기 비전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잠전초등학교에 설치된 잠실본동 제4,5,6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박 교수는 “세계적인 흐름은 정치의 극단화, 극진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조국혁신당이 나타나면서 정당 간 선명성 경쟁이 벌어졌다”며 “좀 더 수용적이고 탄력적인, 실용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념적 가치 지향점을 중도 확장에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국, 프랑스 등 해외사례가 그렇다. 채 교수는 “프랑스도 보수가 약세를 보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덕분에 살아났다. 공화주의로 무장해 전진하는공화국으로 집권했고, 미국에서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중도로 수렴해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영국은 마거릿 대처 총리가 보수당을 변화시켰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2005년 보수당 대표 시절 기존 보수의 이념을 버리고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며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국민의 생각에 맞춰 변화했다. 한국 보수도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를 위해선 기득권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버려야 한다”며 “물리적으로 세대가 젊어지고, 지역적 색채도 옅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병욱·구윤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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