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속에… ‘좋은 애도’란 무엇인가

정진수 2024. 4. 1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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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절정기에 중환자실에 근무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이기병 전문의는 방호복이 의료진을 감염원으로부터 보호했지만 대신 의사와 환자 사이의 보편적 치료 과정의 '단절'을 가져오는 것을 목격했다.

수많은 죽음과 유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의 죽어감을 곁에서 바라보는 이가 가질 수 있는 근원적인 감각의 부재", '애도의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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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붙는 감정들/김관욱·김희경·이기병·이현정·정종민/아몬드/1만7500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절정기에 중환자실에 근무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이기병 전문의는 방호복이 의료진을 감염원으로부터 보호했지만 대신 의사와 환자 사이의 보편적 치료 과정의 ‘단절’을 가져오는 것을 목격했다. 수많은 죽음과 유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의 죽어감을 곁에서 바라보는 이가 가질 수 있는 근원적인 감각의 부재”, ‘애도의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도 지켜봤다. 그는 자신이 부친을 보내드린 과정을 세세히 적으며 단순히 장례 절차의 문제가 아닌, ‘애도의 결락’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어디 코로나19뿐일까. 지난 10년간 이런 사회적 참사는 반복됐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가습기 살균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회적 참사를 겪은 후 사람들은, 이전과 똑같을까? 우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김관욱·김희경·이기병·이현정·정종민/아몬드/1만7500원
신간 ‘달라붙는 감정들’은 다섯 명의 인류학자가 반복되는 참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에 끈적하게 엉겨 달라붙는 감정과 정서를 추적한다. 이들은 이 정서를 ‘정동’이라 명명한다. 책에서 짚은 우리 사회의 공통적인 ‘정동’은 무관심과 무기력이다. 지난 10년간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사건들 위에 새로운 비극이 포개지고, 진상규명이 무산되는 것을 반복해서 목격하는 동안 무관심과 무기력을 학습했다는 것이다.

이런 참사는 더는 생각하기 싫고, 듣기 싫고, 불편하고 골치 아픈 일이자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불필요한 피로감을 주는 일로 전락했다. 그렇게 참사를 관심에서 치워버리는 동안 우리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감정적 진공 상태로 내몰리고, 원치 않는 우울과 불안, 긴장과 초조를 느꼈다.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은 ‘피해자다움’이라는 이유로 웃음과 기쁨이 제거되길 강요받았다. 슬픔과 분노, 무력감과 죄책감만을 느끼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데도 말이다.

저자는 직접 경험이나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연이은 참사로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과 수많은 죽음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심과 무시가 모두의 트라우마가 되어 문화의 근간인 도덕마저 뒤흔들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런 경험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미국 사회학자 닐 스멜서는 문화적 트라우마를 “부정적 정동으로 가득한 집단의 기억”으로 정의내리고 “문화적 예측의 근간 자체를 파괴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좋은 애도’란 무엇인가. 이는 필연적으로 ‘좋은 죽음’과 연결된다. 죽음을 조정할 수는 없어도 애도의 방식과 내용은 조정할 수 있다. 죽음 자체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은 수정할 수는 있다. 책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좋은 애도’를 고민하게 한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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