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추상사진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추상화는 어렵다. 쉽게 그린 것 같다면 의미를 찾아보라고 그림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건지 재현의 대상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뭔가를 묘사하지 않았으니 해석도 자유로울 수 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보링거는 “현실의 불안이 엄습해올 때 인간은 추상으로 달랜다”면서 추상은 현실을 초월하는 방편이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구글 이미지로는 더 알 수 없는 게 추상화다. 벽에 걸린 원본 그림을 마주해야 그나마 아우라를 전달 받는 게 추상이다. 기자가 여태 본 추상화 중 그나마 기억나는 그림은 김환기와 마크로스코(Mark Rothko) 그림인데 둘 다 전시장에서 보고 느낀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를 보면 커다란 푸른 화폭에 무수한 점들이 보인다. 그런데 제목과 어우러진 이미지가 정확히 바다나 하늘 아래 살아가는 수많은 인생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인연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가 떠오른다. 김환기가 외국에 살면서 친구(김광섭)가 쓴 시(저녁에)를 읽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반면 마크로스코가 그린 ‘무제(1970)’는 전체가 빨간색이었는데 그림 속 가운데 선까지 더해 피바다가 연상됐다. 절망의 끝에선 화가의 기분이 어땠는지가 느껴졌는데 아름답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그림을 그리고 화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런 그림들이 알려진 것은 추상이라도 공감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었으리라. 여전히 추상화는 애매하고 난해하다.
이렇게 추상화가 감정을 상징적으로 그리는 것은 선과 면, 색을 화가의 붓으로 그려내는 회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추상적 작업을 카메라로 찍는 사진가가 있다. 조경재는 빈 공간에 재료(오브제:object)를 배치하고 촬영한다. 그런데 사진에서 느끼는 실재감보다 색과 공간이 분리되어 조화를 이루는 구성미가 그림 같다. 독일에서 활동하다 지난 2019년 귀국한 사진가의 사진 한 점이 최근 국내 한 사진잡지 표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조경재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추상화를 왜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촬영하나
- 사회성을 띠는 내용이 아니지만, 이것은 사적인 기록이다. 한 예술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파편적인 현상을 찍어내는 것이다. 이걸 그림으로 그리면 나의 의도를 더 드러나는 것이라 더 무거워진다. 사진은 어떤 현상으로 남겨지는 것처럼, 끝까지 사진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한다.
사진적인 태도라는 건 뭔가
- 내가 보는 시선을 프레임에 담는 것이 사진이고, 그때 그 현상을 잡아낸다. 그림처럼 붓 터치를 하면서 계속 수정하고 개입하면 다 없어질 것이다. 프레임에서만 존재하는 사진의 허구성이 나와 맞다. 볼 수 있는 시야가 제한적인 속성, 내 작업은 진짜 같은 가짜를 말하는 사진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조명은 어떻게 쓰나
- 대부분 창가에 들어오는 햇빛으로 찍는다. 그래서 처음 설치해놓고 며칠을 두고 본다. 아침과 밤에 찍은 설치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죽 지켜보는 시간이 중요하고 오래 걸린다. 주 광원을 인공조명으로 쓰는 건 가끔 형광등 불빛 정도다.
내용이나 구성은 어떻게 하나
- 초기엔 착시, 환영 같은 것을 넣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면을 분할시켰더니 더 재밌다. 없다면 심심할 것 없으면 그냥 공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을 찾고 작은 세계를 응축해서 하나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할 때 내 사진이 그림인줄 알고 들어왔다가 아, 이게 사진이었구나 하고 그때부터 다시 보는 관람객들이 많다. 회화랑 다른 것은 재료를 갖고 와서 구상하기 때문에 구상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목공실에서 나무를 갖고 와서 직접 자른다. 요즘은 흙을 많이 쓴다. 덕지덕지 붙은 흙의 물성을 살려보려고 한다.
이상하게 눈길이 간다고 생각하는 사진들을 들고 이 사진에 여기가 왜 녹색이고 배경은 어두운가를 조 씨에게 물었다. 사진가는 어울리는 배치와 색을 배치하는 감을 잡기가 오래 걸린다고 했다.
사람들이 보고 내 사진이 어떤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 예전 것은 몬드리안 같은 디자인적이라면 사람들이 개인적인 해석을 하게 한다. 있는 것들을 조합. 그 당시 나의 심리 상태가 매우 중요하다. 빨간 작품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치유되었다. 추상적 표현이지만 나한테는 구상이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데 작업 시간이 생각보다 부족하다. 돈을 벌어놓고 하면 자유롭겠지만 온전히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조경재는 모든 사진을 핫셀블라드 같은 중형 필름카메라로 찍고 포토샵 보정을 일체 안한다. 포토샵 없이 왜 일부러 다 만들고 햇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다리는가를 물었다.
왜 모든 선과 색을 만들고 색감도 찾고 톤을 맞추나
- 직선이 싫어서 구부리고 색과 톤은 계속 변한다. 예전엔 30컷을 찍었지만 지금은 5컷 정도 찍는다. 필름 가격이 너무 올랐다. 디지털 사진보다 여전히 중형 카메라로 찍는다. 그래야 사진 같다. 내가 좀 구식이라 그런가 보다.
사진가 조경재는 1979년생으로 올해 마흔 네 살이다. 상명대학교 사진학과에서 순수사진을 공부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로 유학을 가서 다니엘레 부에띠(Daniele Buetti) 교수한테 배웠다. 자신의 현재 사진은 광고 사진에 구멍을 뚫어서 설치 작품처럼 만드는 다니엘레 교수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했다.
스승은 자신의 사진을 말없이 지켜보다 5년이 지난 후에 충고했다. 그렇게 작업하면 예술가로 오래 못갈 것이며 하나만 하다 끝날 것이라고. 그게 과연 예술가로 온전히 살아가는 방법일까 해서 나는 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사진가는 더 다양하게 시도할 것이라고 답하자 스승은 “머리로 먼저 생각하지 말고, 먼저 주변의 것을 관찰하라, 사회를 보고 반응하면서 살아가라”고 충고했다.
사진가는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교수가 해석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어떤 이미지든 해석이 가능하구나. 이걸 이렇게도 보는구나 하고. 그렇게 교수와 소통하면서 공부하고 시야가 넓어졌고, 넓게 보는 방식을 찾게 되었다 했다.
이후 조경재는 사진이 갖고 있는 명확한 방식을 중심으로 회화나 설치를 더하는 방식으로 작업 방법을 발전시켰다. 오브제도 초기엔 재료를 모아서 했다면 요즘은 직접 만들면서 작업한다. 2014년 졸업 후 독일에서 활동하다 2019년에 귀국했다.
우리나라와 독일의 대학 사진교육이 다른 점은 뭔가
- 한국은 사진의 내용, 의미를 작품화시키는 것을 배웠다면 독일은 내용보다 어떻게 사진 형식을 구성하고 전시하는가에 훈련을 받았다. 또 한국은 좋은 사진을 위한 교육이라면 독일 사진 교육은 전시 방법을 위주로 가르친다. 독일에선 사진에서 의미부여보다 학생들에게 전시의 구성과 참여를 유도한다. 그래서 협업이 많고 어떤 사진 문화를 즐길 것인지를 강조한다.
독일의 예술 감상은 비평가라는 직업군이 약하다. 모든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각자 해석하고 향유하기 때문에 굳이 남의 비평을 참고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작가에게 직접 물어오기 때문에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독일은 작품의 의미를 찾기보다 직접 감상하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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