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 '모셔오기'… 산으로 가는 노선 정책

정영희 기자 2024. 4. 13.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리포트-총선 후 부동산②] "세부계획 없어" 포퓰리즘 비판 제기
[편집자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범야권의 대승으로 끝나며 현 정부가 추진해온 건설부동산 정책들도 일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이 고수해온 전세사기 피해 대책은 '선구제 후구상'의 방향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정부 여당이 핵심 정책으로 내놓은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와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동력을 잃었다. 총선을 열흘여 앞두고 개통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의 연장과 신설 역 등도 현실화 여부가 불투명하다. 총선 이후로 미뤄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며 금융권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야당의 승리로 끝나며 주요 공약으로 발표됐던 수도권 교통대책의 실행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사 게재 순서
①정비사업·공시가격 규제완화 공약 암초 만났다
②GTX '모셔오기'… 산으로 가는 노선 정책
③총선 후 '4월 위기설' 현실화될까


제22대 총선을 열흘여 앞둔 앞둔 지난 3월30일. 10년 이상 준비해온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수서-동탄 구간이 마침내 개통했다. 인천 송도와 남양주 마석을 잇는 B 노선의 실시협약(안)과 민간투자사업 투자계획 안건도 올 초 심의·의결돼 2030년 개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경기 양주와 수원 사이를 연결하는 C 노선도 올 1월 착공식을 열었다.

수도권 교통 혁명으로 불리는 GTX는 여야가 한 마음으로 추진한 정책이다. 서울 외곽 도시의 베드타운화를 부추길 것이란 일각의 우려에도 수도권 출·퇴근 시간 30분 시대를 현실로 만들 수 있어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다.

문제는 지역 내 교통 인프라의 차별을 발생시키다 보니 각종 민원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정부는 '2기 GTX'로 불리는 D·E·F 노선을 도입, 유권자 표심잡기를 위한 포퓰리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정쟁마저 우려된다.


너도나도 연장 요구… "지하철보다 많은 GTX 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은 각각 GTX 관련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B 노선의 조기 착공과 수인선의 연결, D~F 노선의 제5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포천과 인천을 연결하는 G 노선, 파주에서 위례신도시까지 4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H 노선을 신설하겠다는 약속도 내걸었다.
국민의힘은 A 노선 파주 운정-서울역 구간의 연내 개통을 약속하는 한편 D·E·F 노선을 내년에 확정하게 될 5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처럼 GTX가 유권자를 사로잡을 주요 전략으로 떠오른 배경엔 집값도 있다. 새로운 교통수단의 등장은 곧 일대 부동산 시장의 호재로 작용한다.
여야 할 것 없이 수도권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들이 GTX 역사 신규 설치 공약을 내세운 배경에는 GTX를 호재로 보고 움직이는 집값이 있다./사진=뉴스1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GTX-A 노선 동탄역이 지나는 경기 화성시 아파트의 거래량은 지난해 12월 422건에서 올 1월 645건으로 52.8% 상승했다. '동탄역 롯데캐슬' 전용 102㎡는 지난 2월19일 22억원에 거래돼 직전 신고가 대비 1억원 올랐다. 지난해 9월 GTX-A 노선의 시범운행을 앞두고 집값이 매달 1억원씩 오르다가 올해 개통이 임박해 22억원으로 최고가를 다시 썼다.

경기도가 발표한 G 노선안에 광명시흥 신도시와 KTX 광명역을 경유하는 내용이 포함되며 광명시 후보들은 공통 공약으로 GTX-D노선(광명시흥역) 추진, 광명시흥선 신설 등을 내놨다. 경기 북부에선 C 노선 연장 방안을 두고 양당 후보가 대립했다. 정부가 동두천까지 연장을 확정짓자 국민의힘 후보는 빠른 실현을, 민주당 후보는 연천까지 연장을 각각 공약으로 내걸었다.

본선 추진이 모호한 곳에 지선을 추진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기 용인시갑에서 당선된 이상식 민주당 후보는 A 노선 구성역(용인)에서 분기해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는 이동·남사 등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지선 교통망 확충을 공약했다. 화성시정 선거구에 출마한 유경준 국민의힘 후보도 C 노선 동탄 지선을 만들어 솔빛나루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에서조차 GTX 연장이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다. 강원 원주시 양당 후보는 D 노선의 종착역을 원주역으로 확정하는 방안과 조기 착공을, 충남 아산에서 C 노선 연장 조기 추진과 사업비를 국비로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천안 연장에는 1497억원, 아산 연장은 약 9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각각 전망됐다.


재정 조달 계획 없어… '묻지마 공약'


GTX를 둘러싼 공약들이 임기 내 추진이 어렵거나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에 여러 우려들이 제기된다. GTX와 같은 초대형 철도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에만 수년이 걸리는 데다 사업 예산도 수조원에 달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제시된 GTX 사업 필요 예산은 133조6000억원으로 이 중 ▲A 노선 5조7506억원 ▲B 노선 6조4005억원 ▲C노선 4조6084억원은 이미 사용됐다. 4대강 사업비(22조원)와 가덕도 신공항사업(10조원) 등 역대 정부에서 실시한 대형 국토 공사와 비교해도 천문학적인 사업비다.

이번 총선을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내놓은 GTX 관련 정책엔 세부 재정 조달 계획 등이 포함돼 있지 않아 결국엔 포퓰리즘 공약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진은 GTX-C 노선 삼성역 건설현장./사진=임한별 머니S 기자
이 중 국비로 충당하는 비용은 30조원뿐이다. 지방자치기구(13조600억원) 공공기관 재원(5조6000억원) 신도시 조성원가(9조2000억원)를 제외한 나머지 75조원가량은 민간 재원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건설업계의 우려도 크다. 운영비 만큼 요금을 올릴 수 없어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 GTX 사업자로서 참여를 결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익명을 요청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건설경기가 얼어붙은 시점에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투자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국민에게 비용을 전가한다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던지고 보는' 포퓰리즘 공약이란 비판도 나온다. 왕복 출·퇴근 시간이 최대 4시간에 달하는 수도권 직장인들에게 GTX는 복지정책이지만 현재로선 부동산 개발 호재와 포퓰리즘 공약으로 이용될 뿐 세부 재원 계획과 투자유치 방안은 없는 상태다. 공약이 다 실현된다면 지하철역 수보다 많은 GTX역이 생길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지금 나온 GTX 공약은 정부가 시행한 정책을 수정 보완하는 수준"이라며 "혁신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가속화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에 이 같은 묻지마 공약이 시대역행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GTX 신설의 혜택은 대부분 수도권에 그친다. 통계청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51곳이 소멸 고위험 지역, 67곳은 소멸 위험 진입 단계로 분류됐다. 수도권 포함 전국 시·군·구 가운데 절반 이상(51.8%)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셈이다.

정부는 GTX 수혜 인구가 일 평균 183만명, 고용창출 효과는 약 50만명이라고 추산했다. 이 같은 장밋빛 청사진에서 지방 소멸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진 않는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건설된 GTX 철도망은 수도권 집중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표심만 노린 GTX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