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등생 휩쓴 담배카드 게임
학생들은 들떴고 교육당국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최근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는 ‘담배카드 게임’ 때문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등한시하고 흡연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며 대부분 학교에서 담배카드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애쓰고 있지만 금지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주목받고 있다.
초등생 휩쓴 담배카드 게임
중국 언론보도를 보면 지난달 말부터 광둥, 광시, 후난, 하이난 등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담배카드 게임이 유행하고 있다.
담배카드 게임은 답뱃갑으로 하는 일종의 보드게임이다. 담뱃갑을 카드 크기로 접어 땅바닥에 두고 손으로 땅바닥을 내리쳐 바람을 일으켜 뒤집은 카드를 가져간다. 카드를 많이 모은 사람이 이긴다. 희귀한 카드를 많이 모을수록 주변의 부러움 대상이 된다.
후난성 매체 싼샹도시보의 지난 6일 보도에 따르면 주저우시 초등학교 4학년 학생 ‘샤오(어린 아이를 일컫는 호칭) 리’는 “담배카드를 106장 모았는데 희귀카드가 많다”고 기자에게 자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 ‘샤오 장’은 “올해 3월 갑자기 학교의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하기 시작하면서 담배카드 수집 열풍이 불었다”며 “길거리나 쓰레기통, 마작가게 등에 가서 담뱃갑을 줍는다. 가족 중 흡연자가 있으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담배카드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담뱃갑만 따로 팔기도 한다. 한 소비자는 “학부모로서 아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게 하느니 위생을 위해 차라리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하는 게 낫다”는 후기를 남겼다. 일부 담배가게가 게임을 위해 담뱃갑을 찾는 학생들에게 담배를 팔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담배카드 게임 금지하는 교육당국
교육당국은 앞다퉈 금지령을 내리고 있다. 아이들이 게임에 과몰입해 학업에 지장이 생길 뿐만 아니라 흡연에 대한 호기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버려진 담뱃갑을 찾는 과정이 비위생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광둥성 광저우시 충화구 류시 초등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공문을 보내 “아이들이 ‘담배카드’ 게임에서 흡연 정보와 문화에 노출돼 흡연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될 수 있다”며 학생들이 담배카드 게임을 멀리하고, 독서나 스포츠 등 건강한 취미 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라고 당부했다.
하이난성 싼야시 교육국은 ‘담배 카드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한 중요 요령’을 발표했다. 교육국 지침에 따르면 각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에 담배카드를 가져오는 것을 금지하고 학생들이 담배카드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하며 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담배카드 게임을 금지해야 하는가’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담배카드 게임과 비슷한 놀이는 1970~1980년대에도 유행했다. 담뱃갑 외에도 폐지, 만화책, 성냥갑 등을 잘라서 카드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후난성 창더시에 사는 정모씨는 “1970년대에도 담뱃갑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바닥을 때려 뒤집으면 이기는 놀이를 했다”며 “흡연 중독은 고사하고 담배를 일찍 피우기 시작하는 아이도 없었다”고 지역 매체 화성재신에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휴대폰 게임보다는 차라리 담배카드 게임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볼 수 있다.
“놀이 부족이 부른 열풍”
담배카드 게임의 유행 이면에는 ‘놀이가 부족한 현실’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970~1980년대 비해 요즘 아이들은 놀 시간, 기회, 장소가 모두 부족하다. 이에 따라 딱지치기, 구슬치기, 숨바꼭질 등 다양한 ‘자생적 놀이’도 사라졌다.
그런 와중 연원은 알 수 없지만 급작스럽게 부활한 담배카드 놀이가 놀 것이 부족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싼샹도시보에 따르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카드를 뒤집는 기술을 개발하고 공유한다. 한 학생은 “손을 무작정 힘껏 내려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바람의 힘을 가할 수 있는 좋은 각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카드가 희귀 카드인지 또래들 사이에서 결정된다.
담배카드 게임의 특징은 이처럼 친구와 함께 해야만 하며 참여자 스스로가 규칙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어른의 지도가 있는 스포츠 클럽 활동이나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이미 규칙이 주어진 온라인 게임과 다르다.
슝빙치 21세기 교육연구소장은 “‘담배 카드’ 게임이 인기 있는 이유는 게임과 사회화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라고 베이징 기반 매체 신경보에 말했다.
금지령 틈새의 목소리들
후난성 류양시 다오우초등학교는 일단 금지령부터 내린 대부분의 교육당국과 다른 접근을 취해 주목받고 있다. 첸리사 교장은 이달 초 학부모들에게 공문을 보내 놀이가 아동 발달에 미치는 중요성과 담배카드 게임을 금지할 경우와 허용할 경우의 장단점을 설명했다.
“이 게임을 금지하기는 쉽지만 이 게임을 금지하면 분명히 학교에서 새로운 게임이 탄생할 것입니다. 다음 게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부수 효과’와 ‘금지’의 운명을 피하고자 아이들은 ‘담배 카드 놀이’에 작별을 고할 수 있는 더 부드러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다오우 초등학교는 학부모들은 담배카드 게임 금지 여부에 대해 의견을 받았다. 학생들은 학급회의를 열어 토론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위생과 안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며 담배카드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일부 학부모들은 직접 자녀에게 담배카드를 만들어준 것으로 전해진다.
담뱃갑을 가지고 노는 모습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는다. 중국 매체들은 담배카드 게임의 유해성을 강조하고 초등학생에게 담뱃갑을 파는 행위를 단속할 것에 대한 주문을 담은 기사를 더 많이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놀이가 부족한 현실도 우려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상하이 기반 관영매체 펑파이는 다오우초등학교 사례를 전한 논평에서 “요즘 아이들은 놀이의 부족으로 감정을 키울 기회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즐겁게 지낼 기회도 잃고 있다”며 “무작정 게임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은 실수이다. 더 많은 다오우 초등학교가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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