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인터뷰 유튜브 채널 ‘썰플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즐거움[이진송의 아니 근데]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 하나.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정말 좋겠네~정말 좋겠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주 볼 수 있었던 풍경 중 하나는, 뉴스 화면에서 리포터를 둘러싼 사람들이 카메라를 향해 어색하게 혹은 신나게 브이를 그리던 모습이다.
이 시대의 어린이들에게는 텔레비전보다 유튜브가 더 익숙하고, 미디어에 출연한다는 것이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인플루언서’라는 새 시대의 직업이 등장하는가 하면, 특별한 기술이나 마케팅 없이 직접 찍은 영상 하나로도 순식간에 SNS 스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일반인과 연예인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데도 일반인 출연자에게서 자연스러움을 갈구하는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내향형’ 가수 이석훈이 MC
낯 가리는 캐릭터로 차별화
거리서 사연 듣고 노래 추천
서울·젊은 층 대상 위주 한계
일반인 출연자가 알고 보니 섭외했다거나, 연예인 지망생이라거나, 홍보가 목적이라는 의혹은 언제나 비난받으니까. 지나가는 시민을 잡아서 자신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게 하고, 인스타그램을 공개하는 웹 콘텐츠가 섭외로 이루어진다는 진실은 묘한 실망감을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공감 가는 이웃의 이야기, 평범해 보였는데 은은한 광기가 빛나는 재야의 고수를 우연히 발굴하는 재미는 역시 포기할 수 없다. 어쨌든 붕어빵은 길거리에서 종이봉투 구겨가며 먹어야 제맛이듯, 거리에서만 가능한 일반인 토크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거리 예능이었던 <한끼줍쇼>(JTBC), <유퀴즈 온 더 블럭>(tvN)이 코로나19로 인하여 종영하거나 포맷을 바꾼 후 거리 예능은 유튜브 콘텐츠로 넘어갔다. <썰플리> <헌팅걸>(종영) <또간집> <전과자> 등은 콘텐츠 주제를 그날 거리에서 만난 시민과 인터뷰해 접목하며 진행하는 형식이다. 때로는 그날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시민 인터뷰로 결정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썰플리>는 나름대로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알고리즘을 타고 쇼트폼 동영상 생태계로 자주 유입되고, 꾸준한 화제성과 조회 수를 올리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에게 있었던 혹은 들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연하는 것을 ‘썰을 푼다’고 한다. ‘썰플리’는 ‘썰을 푼다’라는 말과 ‘플레이리스트’를 합친 이름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날의 주제에 맞는 ‘썰’을 듣고, 노래를 추천받는 형식이다. 가수 이석훈이 진행하며 게스트가 동반하기도 한다. 20~30분 내외의 프로그램은 한 번에 10명 내외를 인터뷰하기에 쇼트폼으로 편집하기 최적화된 구성이다. 그래서 <썰플리>를 ‘풀영상’으로 안 본 사람은 많아도, <썰플리>에서 화제가 된 특정 시민의 인터뷰를 안 본 사람은 드물다. ‘방귀 뀌었을 때 추는 죄송합니다 댄스’ ‘직장인 점심시간 국룰’ ‘성형 다음날 최애를 만날 확률’ ‘탈덕한 팬 기강 잡는 연예인’ ‘코딩 배우는 10대의 현실’ 같은 영상은 쇼트폼 좀 본다고 하면 낯익을 것이다. <썰플리> 측 또한 이런 수요를 잘 파악하여, ‘누적 조회 수 5000만 레전드 썰 다시 보기’라는 제목으로 인기 장면을 편집해서 올렸다.
<썰플리>의 매력은 평범한 풍경과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마트에서, 번화가에서, 만화방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시민들이 그날의 주인공이 된다. 별것 아닌 일에 즐거움을 느끼거나 몰입하는 모습은 공감을 사고 쌍방으로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트에서 만난 시민이 라면계에서 비교적 인기가 없는 ‘진라면 순한 맛’을 예찬할 때, 적은 돈을 아끼는 ‘짠테크’를 알려달라는 말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끼리 앱을 켜서 보상금을 타는 ‘토스 챌린지’가 언급될 때, 점심시간에 회사로 복귀하기 싫어서 근처를 어슬렁대던 직장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동생 오빠’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부를 때 실없는 웃음이 샌다. ‘야구 팬이 화내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올라간 야구장 방문 편은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화이기도 하다. 야구팬들의 대표적인 정서가 된 자기 팀에 대한 자조와 애정을 바탕으로, 너나없이 응원가를 제창하는 모습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공항, 메이크업 숍, 방송국처럼 특정 직업군이 주로 등장할 때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조회 수나 화제성에 대한 의식 없이 친구에게 하듯 털어놓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위로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썰플리> 댓글난에는 해당 주제를 보고 자신들의 경험이나 들은 이야기를 역시 ‘썰로’ 푸는 댓글이 많다. 시청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 하면서 방심한 순간, 딱히 웃길 욕심도 없고 자신도 평범하다고 자부하는 것 같은 시민이 킥을 날린다. 타투 없는 타투이스트라든가 테니스채 없이 가방만 메고 다니는 직장인, 아이돌 가수인 마크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팬사인회장의 아이돌을 연기하는 시민, 밴드 포지션이 ‘멤버’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시민, 만화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의 명장면을 재연하며 뿌듯해하는 시민의 말맛은 예사롭지 않다. 이석훈에게 쏟아진 잘생겼다는 칭찬을 훔쳐간 ‘눈 뜨고 코 베인 칭찬’은 시민의 순발력이 만들어낸 웃음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콘텐츠의 특성상 각 장소의 성격과 머무는 사람들의 특색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대학로에는 끼가 넘치는 연극인들과 길거리에 누워서 자는 의대생이 공존하고, 헬스장에서는 근육에 진심인 사람들이 카메라보다 운동에 집중하며, 만화방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애정도에 대해 ‘그 정도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지금은 많이 뻔뻔(?)해졌지만, MC인 이석훈의 ‘내향형 성격’ 또한 <썰플리>의 독보적 매력이다. 거리에 나가서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걸어야 하지만 다른 MC들과 달리 낯을 가리고 표현을 어려워하는 이석훈은 프로그램 초기에 쭈뼛대고 어색해했다. 먼저 다가가지 못해 주변을 둘러보며 인터뷰할 대상을 갈구하는 모습이 때로는 애처롭기까지 했으니. 활발한 시민이나 게스트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더 내향적인 시민 앞에서 갑작스럽게 자신감을 얻으면서 그를 리드하는 모습 또한 화제였다. 사실 내향적인 성격은 한국 사회에서 여러모로 생존의 난도가 높다. 리더십이 있고, 사교적이고, 면접이나 대화에서 능숙하고 씩씩한 모습을 선호하다 보니 내향형 성격은 소심하다거나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특히나 예능에서는 어느 정도 선을 넘어가는 과감함을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석훈은 본인이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할 때 긴장하는 시민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강점이 있다. <썰플리>의 인터뷰 온도는 기분 좋을 정도로 따뜻하고 잔잔하며, 억지로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거나 침투하지 않는다. 대신 활발한 시민이나 게스트에게는 아낌없는 반응으로 판을 깔아준다. 이것은 취향을 타는 영역이지만 <썰플리>만의 고유한 정체성임은 분명하다.
이진송 |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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