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 뒤··· 정부 압박하는 의료계 "원점 재검토를" "국회가 나서라"
22대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 의료개혁의 동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 속에, 의료계 안팎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 의사들은 기존 ‘원점 재검토’ 입장을 재차 얘기하는가 하면 다른 주체들은 정부와 의사 모두에 기대할 바가 없으니 국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나섰다.
의사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일제히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등 무리한 정책 추진에 심판을 내린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낸 입장문에서 총선 결과를 두고 “사실상 국민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내린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지난 2월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안을 발표했을 때 해당 정책 추진의 명분은 바로 국민 찬성 여론이었다”며 “하지만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진짜 여론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정부에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들어 이를 즉각 중단하고 원점 재검토에 나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등 지도부와 전공의들에게 내린 각종 명령과 고발, 행정처분 등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김 비대위원장과 박명하 전 의협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은 15일부터 발효되는 3개월 의사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냈으나 기각 당했다. 두 사람은 이날 법원에 항고했다.
이날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낸 성명의 주장도 비슷했다. 비대위는 “어떤 정책이든 합리적인 근거와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민주적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면 기나긴 파행을 거쳐 결국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된다는 것을 이번 선거 결과가 여실히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희귀질환과 중증 환자 진료,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며 버텨온 병원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그 상처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며, 의료 파국을 막기 위해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전공의들의 값싼 노동력과 필수의료분야 의료진들의 희생으로 유지되어 온 비뚤어진 의료 체계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와 의료계 모두 살을 깎는 심정으로 국민을 위한 진정한 의료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그러려면 정부의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의사 증원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숫자에 매몰된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 의사 증원 규모와 필수·지역 의료의 미래를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으로 국회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논평을 통해 “총선 결과는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여야가 힘을 합쳐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부터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살리기를 더 이상 정략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가장 시급한 민생현안이자 가장 절박한 개혁과제로 접근하라”며 “의사 진료 거부 사태 해결과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한 특단의 해법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정부와 의사단체뿐만 아니라 의료직역 단체, 환자단체, 노동·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 현장의 의료대란을 수습할 수 있는 초당적 대책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출범을 앞둔 22대 국회를 향해서는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을 완수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논평을 내 “이번 선거에서 민심은 환심(患心), 즉 환자의 뜻이기도 하다”며 “의료 현장 정상화를 위해 국회의 중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전공의와 교수의 집단행동 속에 환자들은 이 사태가 하루빨리 종결돼야 한다고 본다”며 “조속한 정상화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환자단체들은 22대 국회를 향해 환자 중심의 의료개혁을 위한 총 10가지의 정책을 제안했다. 이들은 환자 관련 보건의료제도와 법률을 만들 때 환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제정하고, 의료인 확충과 배분은 필수의료와 중증의료에 집중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의사 등 의료인이 집단행동을 벌일 때도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속히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진료 지원인력의 법제화, 필수·중증의료 분야의 건강보험 급여 확대, 신약의 건보 등재, 환자 중심의 간병과 돌봄 설계와 지원, 장기기증 인식 개선과 기증자 예우 강화, 수련병원의 전문의 중심 환자 치료 시스템 구축 등도 필요하다고 봤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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