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취한 尹대통령, 이제 지독한 숙취가 찾아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술을 아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들은 이 사실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적극 활용했다. 친근한 이미지 구축 과정에서 대통령과 '술'은 빈번히 등장한다. 후보 시절 자신과 갈등을 빚은 이준석을 만나러 달려간 곳에서 호프집을 찾아 함께 맥주를 마시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의 경양식집에서 가진 친교 자리에서 대통령은 일본 맥주와 한국 소주를 섞은 '폭탄주'(소맥)로 '러브샷'을 했다. 기시다는 자민련 간부들에게 "윤 대통령이 건배를 하면서 술을 다 마셔 깜짝 놀랐다"고 했다.
도가 지나치면 술 마시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역효과를 낸다. 술에 얼마나 진심인가 하면,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파리로 달려간 자리에서 시내에 한식당 방을 잡고 5대 재벌 총수들을 모은 자리에서 술잔을 돌렸다. 이 사실은 언론의 폭로로 알려졌는데 사람들은 엑스포 유치라는 중대한 대사를 앞두고, 어떻게 해외에서 공무 도중 짬을 내 취할 정도로 술판을 벌일 수 있었는지 경악했다. 5대 재벌 총수를 회식자리에 무슨 아랫사람 부르듯 모은다는 게 상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때 느꼈다. 대통령은 뭔가에 취해있다.
<승자의 뇌>라는 책을 쓴 뇌·신경 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교수는 권력을 쥐게 되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고 주장한다. 권력의 '맛'을 보면 우리 뇌에선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되는데, 이로 인해 공감 능력이 약화되고, 목표 달성이나 자기만족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권력은 매우 파워풀한 약물이다(Power is a very powerful drug). 인간의 뇌에는 '보상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 뇌에서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권력을 잡게 되면 이 부분이 작동한다.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을 분출시키고, 그것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촉진해 보상 네트워크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을 더 과감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게 한다. 권력은 항우울제다. 또 도파민은 좌뇌 전두엽을 촉진해 권력을 쥔 사람을 좀 더 스마트하고, 집중력 있고, 전략적으로 만들어 준다.
하지만 지나친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중독이 된다는 얘기다.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너무 많은 도파민이 분출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된다. 인간을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권력은 코카인, 섹스, 돈과 마찬가지로 도파민이라는 공동 통화를 사용한다."(2014년 7월 5일자 <조선일보> 로버트슨 교수 인터뷰)
이 식견을 우리 대통령에게 적용해 볼 수 있겠다. 대통령이 권력에 취한 징후들은 많았다. 첫번째 장면은 청와대 대통령실을 통째로 용산에 옮기는 '대역사'를 지시한 것이었다.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결정과 실행 과정에서 보인 무시무시한 '속도전'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철거된 레닌 동상의 느낌처럼 다가왔던 이 거대한 '정치 행위'로 인해, 무슨 군 작전 하듯 국방부, 합참, 외교부장관 공관 등이 줄줄이 이전했다. '용산 어린이 정원'을 거니는 어진 대통령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오염 정화 작업을 졸속으로 했다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산어린이정원을 초스피드로 개방했다.
하지만 '소통'을 위한 대역사는 '불통'으로 귀결됐다.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태 이후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서 쫒아냈고, '도어스테핑'은 중단됐으며, 기자회견은 아예 없어졌다. 질문하는 사람이 없는데, 답을 하는 사람만 남았다. 용산은 새로운 구중궁궐로 재탄생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대통령의 견해는 틀렸다. 의식이 공간을 재구성한다.
정치인에게는 기대되는 기본 행동 패턴들이 있다. 그걸 무너뜨릴 때 사람들은 '기괴함'과 '불쾌함'을 느낀다. 권력에 취해 발생한 행동 패턴들에는 몇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해치우고는 그에 대한 관전자의 반응을 의아해 한다는 점이다. 공감 능력의 부재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집중 호우로 전국토가 심대한 피해를 입은 사진이 보도되고 있는 와중에, 이역만리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폐허가 된 도시를 둘러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대통령의 사진이 배포되는 것과 같은 일들이다.
2022년 9월 7일 영부인에 대한 특검법이 야당에 의해 발의되며 거의 모든 언론이 '영부인 리스크'를 비판하고 있는데, 엿새 만인 9월 13일, 디올 명품 가방을 받고 있던 영부인의 '심리'는 '권력에 취했다'는 설명이 아니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직전에는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는 야당 대표의 배우자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한 특검법이 발의되고 논의되는 와중에 고가의 가방을 태연하게 받아들고 있었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이 들 수 있다.
총선이 끝났다. 이제 청구서를 받아 볼 시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총선 지각변동이 만들어낸 정치 지형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을까?
108석의 집권 여당은 190석 넘는 야당에 의해 완전히 포위됐다. 사의를 표한 총리의 후임은 야당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총리 뿐 아니라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할 장관도 마찬가지다. 거국 내각? 권력에 취한 대통령 밑으로 들어가 정권 유지에 기여하고픈 야당 인사가 과연 있을까?
정치 지형은 더욱 암울하다. 이번 총선에서 제3지대와 같은 낭만적 현실은 없었다. 그나마 보수 정당으로 분류할 3석의 개혁신당은 '반 윤석열'의 선명성을 가진 정당이다. 개혁신당에 참여했던 '중도' 성향 인사들이 모두 낙선한 상황에서 이준석, 천하람의 '젊은 보수'는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대선을 앞두고 보수의 판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어쩌면 우린 3석 짜리 미니 정당이 108석 짜리 국민의힘을 흡수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이미 여당 내부에선 균열이 발생했다. 김재섭, 안철수와 같은 이들은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해 '채상병 특검법'의 처리를 언급하고 나섰다.
방아쇠는 당겨졌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보수 분열은 불보듯 뻔한 일인데, 이는 보수 정당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의 임기보다 긴 임기의 새로 당선된 의원들을 초조하게 만들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권력에 취한 과거 대통령'이 아니라 '미래 권력'의 창출 여부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 움직였던 '친윤 돌격대'들도 이젠 없다. 권력의 도파민에 찬물을 확 끼얹는 일들은 무시로 발생할 것이다. 요컨대 국정은 표류할 것이고, 권력은 차게 식을 것이다. 정치를 시작함과 동시에 최고 권력을 차지한 대통령은 이제부터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의 자질을 논하면서 "정치가에 있어서 '거리감의 상실'은 곧 죽음과 입맞춤하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가는 냉철한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한다. 거리감을 잃고 허영에 취한 권력은 자기 객관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권력자는 실패의 징후를 여기저기 흘린다. 유권자는 그 징후를 기가막히게 포착하고 '살아있는 권력'을 심판대에 세워 올릴 것이다. 자기 객관화를 정치가의 주요 덕목으로 꼽은 막스 베버의 '격언'은 로버트슨 교수의 '권력 심리 분석'과 맥이 통한다.
우리의 대통령은 권력에 취해 있었다. 권력에 취하지 말라는 경고음은 셀 수도 없이 많이 울렸다. 하지만 대통령은 기어코 자신을 바꾸지 않았다. 4월 10일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예측하기조차 두려운 일들이 계속 벌어질 것이다. 지금부터 겪게 될 권력의 숙취는 아주 지독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건 권력의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대통령 탓이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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