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복 없네"가 아니라 "제 일하며 잘 살겠네"로...무속은 어떻게 모두의 의례가 됐을까 [젠더살롱]
“이번 달이 ‘무진월’이잖아. 난 ‘금 일간’인데 이번엔 ‘토’가 너무 많아서 큰일이야. 벌써 답답하다니까.”
“‘토생금’ 아니야? 토는 금을 ‘생’한다던데?”
“그것도 어느 정도지. 내 사주 ‘원국’에 토가 많거든. 이렇게 토가 많으면 금이 토에 묻힌다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대. 지금 딱 그래.”
이런 대화를 동네 카페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한참 비즈니스 회의를 하던 두 여성이 일 얘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싶자 꺼내든 화제가 셀프 사주풀이와 ‘개운법’(운명을 개선하는 법)이라니. 이들은 한참 동안 자신들이 하는 일과 ‘갑진년’인 올해의 기운을 맞춰보며 의지를 다졌다. 파이팅 한 번 외쳐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나 또한 노력해도 되는 게 없었던 시절 친구가 봐 준 타로에 위로받았던 기억이 있다. 졸업을 할 수는 있는 걸까 싶었던 대학원 시절 친구가 봐 준 타로에는 ‘매달린 사람’이 나왔다. 친구는 그 카드가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정신적인 힘을 상징하니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조언했다. 내 노력과 고민을 잘 알고 있었던 친구는 내가 뽑은 몇 장의 카드를 연결해 기막힌 ‘스토리텔링’을 구사했고, 그 이야기에서 나는 조금만 더 고난을 견디면 성장과 통찰이라는 열매를 맛볼 주인공이었다. 심사를 앞둔 선배들 중에는 쇼핑하듯 ‘철학관’을 전전하는 이도 있었다.
외국인과 청년세대를 사로잡은 ‘K심리상담’
코로나 시기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는 북한의 무당이 잠깐 등장한다. 점복(占卜)이 반사회주의적인 미신으로 엄격히 금지된 북한 사회에서 비밀리에 영업하는 무당의 실상을 코믹하게 그렸는데 이 장면이 미국인 친구를 사로잡았다.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미국인 친구는 코로나가 끝난 후 1주일간의 첫 한국 여행을 감행했다. 그녀가 무엇보다 기대한 일정은 바로 무당과의 만남. 이혼 후 혼자 아들을 키운 그녀는 자신의 생년월일시를 듣고 무당이 들려준 부모와의 관계와 전남편과의 문제에 대한 ‘해석적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쏟았다. 곧이어 진지하게 ‘사주팔자’를 연구하기 시작한 친구는 미국에서도 페미니즘 제2물결 이후 신비주의와 오컬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며 책을 쓰겠다고 벼르고 있다. 특이한 사례일까?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에는 사주, 관상, 신점 등을 보는 가게들이 성업 중인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유튜브에서는 외국인들이 ‘K심리상담’을 받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외국인만이 아니다. 사주는 이제 MBTI, 타로, 별자리운세를 거쳐 청년세대의 새로운 언어로 떠오른 듯하다. 이를 보여주듯 요즘 ‘MZ 세대’ 무당과 점술사들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기본이다. 조금만 검색하면 ‘꽃미남’ 점술사들과 ‘비건 지향’ 무당들이 쏟아진다. 칼럼니스트 도우리는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에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청년으로서 공기와 같이 익숙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매일 “사주 한 컵에 점성술 한 스푼, 타로 한 닢, 에니어그램”이라는 약물을 들이켠다고 썼다. 공식적인 학문체계에 기반을 둔 심리상담은 아니지만 빠른 시간 내 ‘합리적’인 비용으로 고민에 대한 해석을 듣고 일시적이나마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에서 ‘K심리상담’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이쯤 되면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迷信)’으로 치부된 각종 해석 체계 및 의례의 리부트 시대라 할 만하다.
여성의례에서 모두의 의례로
고대 제정일치 시대에는 지도자의 일이기도 했던 점복과 굿을 비롯한 각종 의례가 사람들을 미혹하는 잘못된 믿음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시대부터다. 조선의 지배 계층이었던 남성 양반들은 무당을 팔천(八賤) 중 하나로 몰아붙여 그들이 행한 각종 의례를 없애고자 했다. 그 자리를 유교 의례로 채워 피지배 계층을 교화하고자 한 것이다. (참고로 팔천은 무당,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승려, 상여꾼을 가리켰다.)
그러나 습속은 그리 쉬이 바뀌지 않았다. 당장 왕족 및 양반가 부인들이 무당의 열렬한 후원자들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중종반정 이전까지 ‘국무(國巫)’는 성수청이라는 기관에서 조정과 왕실의 주요 행사를 주관했다. 여기에는 가뭄에 지내는 기우제가 포함됐다. 겉으로는 무당을 혁파 대상으로 여긴 남성 양반들 또한 집안의 누군가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리는 등 우환이 있을 때 무당굿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성 양반들은 점술 활용에는 더 적극적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주팔자 풀이에 기반한 점술이 ‘맹인(盲人)’들의 생업 중 하나였다. 양반들은 수시로 맹인 점술사들을 불러 자신과 가문의 앞날을 점치고, 택일을 했으며, 우환을 방지하고자 했다. 맹인 점술사는 관직에도 진출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오를 수 있는 종8품직을 봉사(奉事)라 불렀다. 심청의 ‘눈먼’ 아비 심봉사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호칭이다.
1800년대 말 근대적 사상의 유입, 1900년대 일제 식민지 지배, 해방 이후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이 모든 의례는 사이비 믿음으로, 의례를 주관하는 이들은 대중을 미혹하는 야만적인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특히 참여하는 이들이 주로 여성들이라는 사실은 이 의례들을 ‘올바르지 않은 유사종교적 행위’로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과 직결됐다. 그러나 오늘날 무당과 점술사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롭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이들이 보통 사람들의 고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해석 가능한 프레임과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처방을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남편 복’과 ‘자식 복’이 없다고 해석된 여성의 사주팔자를 자기 일하면서 잘 산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점술사들, ‘퀴어’ 정체성을 적극 수용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무당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유연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한국의 나이 든 ‘비혼 여성’과 ‘퀴어’에게 누가 이런 ‘덕담’을 해 주겠는가.
한편으론 유교 가부장제라는 절대적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이 뼛속까지 체화할 수밖에 없었던 불안정성이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모습을 바꾸어 여성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디폴트값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청년 남성들이 대거 뛰어든 최근 사주명리 시장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선거에 임한 대중의 마음을 읽는 한 가지 단서
한편 이번 선거판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유튜브 한편을 점령한 무당, 점술사, 타로 및 별자리 해설가들의 콘텐츠였다. 각 당 대표들의 사주팔자 풀이부터 신점, 접전 지역 예상 결과, 심지어 선거일의 기운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선거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그 나름의 해석틀로 풀어낸 이 콘텐츠들은 사회 변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담은 댓글들과 함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어떤 선거였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흥미로운 아카이브다.
이 콘텐츠들은 일종의 굿판이 열리는 시간의 기록이지 않을까? 지나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이번 선거의 언론 보도 지형에서 대중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비일상적 의례를 열고 참여하고 즐긴 판 말이다. 1970년대 한국의 무속 의례를 연구한 미국 인류학자 로렌 켄달은 '무당, 여성, 신령들 –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적 실천'에서 마을 여성들이 신령과 귀신에만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그녀들은 의례의 이유에 따라 차분하게 혹은 떠들썩하게 의례를 행했고, 평소에는 바쁘게 해야 하는 일들을 했다고 썼다. 비일상적 의례는 권력 없는 대중들이 일상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우환과 고통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치는 이들의 어려움과 고통이 일상에서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권력과 자원을 배분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권력자의 비일상적 의례에 대한 집착은 또 다른 문제다.)
이제, 새로운 국회가 보통 사람들의 우환과 고통을 다뤄야 할 시간이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와 서한영교 작가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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