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호남 유권자 투표 성향 ‘정말’ 전략적인가

강천석 기자 2024. 4. 1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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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뻐꾸기 정치인’ 호남 둥지에 알 낳아지역의 현재와 미래, 다음 世代·국민·국가와 오래 共生할 길이 올바른 전략적 선택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날인 10일 오전 광주 광산구 평동행정복지센터 드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뉴스1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언론에 ‘호남’이란 단어의 등장 횟수가 부쩍 늘어난다. 호남표의 쏠림 현상이 좌·우파 정당의 승리와 패배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분석한다. 허물없는 사이는 고향이 그곳인 기자에게 그 이유를 묻곤 한다. 같은 답변을 하도 되풀이했기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1963년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맞붙었던 5대 대통령 선거 때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어머니에게 누굴 찍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박정희 찍었다’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만석(萬石)꾼 아들이 세상을 뭘 알겠냐. 박정희는 농부 아들이란다.” 어머니는 중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학교가 윤보선씨 집 바로 곁 지금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었다. 등·하굣길에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윤씨 댁 앞을 지나며 어린 머리에도 무슨 생각이 엉켜갔던 모양이다. 이 선거에서 박정희는 윤보선을 15만 표 차이로 이겨 승리했고, 어머니 같은 호남 유권자는 박정희에게 35만 표를 더 줬다.

호남 밖 사람들 대부분은 호남 표 쏠림이 과(過)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강도(强度)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자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나를 그곳 사람들은 ‘네가 80년 5월 광주 안에 있었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해 5월 며칠 동안 나는 이 기관 저 회사를 정신없이 찾아다니며 광주와의 전화선(電話線)이 살아있는지를 묻고 다녔다. 노모(老母)와 연락이 닿지 않아서다. 그러다가 정구영(鄭銶永·훗날 검찰총장) 선배의 호의로 어머니와 연결됐다. “나는 무사하다.” 그 한마디에 다리가 풀렸다. 이랬던 기자는 스스로를 “‘물속의 물고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기자를 ‘물 밖의 물고기’라서 그날을 모른다”는 식으로 대한다.

표 쏠림의 근본 원인은 아직도 그날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물 안 사람들’과 밝힐 수 있는 것은 다 밝혀졌다는 ‘물 밖 사람들’ 사이의 생각 차이다. 이 차이가 쉽게 좁혀질 전망은 밝지 않다. 극우(極右) 인사의 ‘광주의 북한군’ 운운이 초를 치기도 한다. 한국 역사보다 피가 흥건했던 유럽 근현대사에는 100년 200년이 흘렀는데도 사상자 규모나 진상에 대해 지금도 엇갈린 주장과 해석이 나오는 사건이 수두룩하다.

딱 한 번 기회가 김영삼-김대중 정권으로 이어졌던 10년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화(軍靴) 발소리가 채 멀어지지 않던 시점에 수사를 지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 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종결(終結)지었다. 만일 그들에게 시민 설득의 시간이 좀 더 주어졌더라면 사태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김대중 이후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호남 정치인은 맥(脈)이 끊겼다. 여론에 기생(寄生)하는 정치인뿐이다.

호남의 표 쏠림을 ‘호남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얼핏 들으면 귀에 감기는 말 같지만 독(毒)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노무현·문재인·이재명처럼 자기 고향에 둥지를 틀 수 없었던 ‘뻐꾸기 정치인’들은 그곳에 알을 낳았다. 선거기간 내내 부인을 상주(常住)시켰다. 그런 정치인과 그들과 선이 닿은 일부 정치인에겐 입신(立身)의 기회가 됐다. 하지만 대다수 호남 사람들이 그들만의 전략적 선택에 따르는 후유증과 불이익을 감당해야 했다.

보수 일각에서 제시하는 ‘민주당=호남+좌파(左派)에 물든 세대+하류(下流) 계층’이란 도식(圖式)은 고향을 떠나 사회생활, 공무원 생활, 회사 생활을 개척해야 하는 자녀와 손자 세대에겐 편견의 장벽으로 다가섰다. ‘무(無)전략’보다 해로운 ‘반(反)전략’이었다. 이제 호남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국가와 국민이 공생(共生)할 호남 유권자의 ‘진짜 전략적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보수 정당은 통계청 통계 숫자만 보고 선거전략, 국정 운영 전략, 인사(人事) 정책을 짠다. 2022년 호남 인구는 남한 전체의 9.84%, 영남 인구는 24.9%이다. 경북대 총장을 지낸 박찬석 교수(지리학)에 따르면 1939년 영남 인구는 남한 전체의 35.5%, 호남은 30.0%였다. 두 지역 출산율은 거의 같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80년 후 호남 인구 비율은 30%에서 10%로 줄었다.

20%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일자리를 찾아 서울·경기와 공단(工團)이 들어선 영남 지역으로 떠난 것이다. 전국에 흩어진 영남 유래(由來) 인구와 호남 유래 인구 비율은 옛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 정당이 선거전략, 특히 수도권 전략에서 이걸 놓치면 언제든 뒷덜미를 잡히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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