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는 결백했다
평생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두 얼굴을 가진 협잡꾼이었다. MLB(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수퍼스타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의 통역사 불법 송금 논란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11일(현지 시각) 미 연방검찰은 오타니 전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40)가 관련된 불법 도박·송금 수사 내용을 공개하면서 “미즈하라가 지난 2년간 오타니 몰래 오타니 예금 계좌에서 약 1600만달러(약 220억원)를 빼돌려 불법 도박업자에게 송금했다”고 밝혔다. 알려졌던 450만달러보다 3배 이상 큰 규모다. 미즈하라가 오타니 계좌 정보 내 연락처를 자기 전화번호와 이메일로 고쳐 오타니에게 관련 소식이 가는 걸 차단했다. 이후 미즈하라는 오타니 몰래 오타니 계좌에서 돈을 자기 계좌로 송금했다. 앞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오타니는 “불법 도박도 송금한 사실도 전혀 몰랐다”며 “미즈하라가 돈을 훔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미 매체들이 보도한 이번 수사 결과를 보면 미즈하라는 2018년 오타니가 미 애리조나주 한 은행에서 계좌를 열 때 도왔고, 이때 오타니 개인 정보를 파악했다. 그 계좌에는 오타니가 LA 에인절스에서 받은 급여가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후 이 계좌 돈을 멋대로 송금했다. 발단은 2021년 한 불법 스포츠 도박 업자를 알게 된 뒤부터다. 그해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1만9000차례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고 평균 1차례 1만2800달러(약 1800만원)를 건 것으로 파악됐다. 도박으로 딴 돈은 1억4226만달러였던 반면, 잃은 돈은 1억8294만달러에 달해 손실을 봤고 이를 메꾸기 위해 오타니 계좌에 손을 댔다.
미즈하라는 심지어 오타니 계좌에서 불법 도박업자에게 송금한 뒤 은행에 전화를 걸어 오타니 개인 정보를 대며 오타니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송금을 승인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통화 내용이 녹음됐고, 수사관들이 이를 증거로 확보했다고 미 연방 검찰은 전했다. 올 들어선 오타니 계좌 돈으로 야구 카드 약 1000장을 사는 데 32만5000달러(약 4억4700만원)를 쓰기도 했다. 오타니는 이번 수사 과정에서 휴대폰을 제출하면서 “미즈하라가 계좌를 관리하도록 허용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수사 당국은 “오타니가 미즈하라 불법 도박이나 송금을 미리 알았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번 수사를 통해 오타니 에이전트와 재무 담당자들이 일 처리를 너무 느슨하게 한 점이 드러났다. 이들은 종종 “오타니 급여 계좌를 점검해보자”고 오타니 쪽에 제안했으나 미즈하라가 “오타니 사생활이다. 오타니가 원치 않는다”면서 막아서자 이를 그대로 믿고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타니 에이전트 네즈 발레로는 이번 수사 과정에서 “오타니와 한 번도 직접 대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교환한 적도 없고, 항상 미즈하라를 통해 의사소통했다”고 진술했다. 현지 전문가들이 “통역사만 해고할 게 아니라 에이전트도 해고해야 한다”고 조언한 이유다. 현지 언론은 “오타니가 야구 말고는 너무 순진(naive)한 인생을 살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즈하라는 지난달 21일 MLB 서울시리즈 도중 다저스에서 해고된 뒤 행방이 묘연했는데, 한국에서 곧장 미 캘리포니아로 넘어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변호사를 두고 연방검찰과 형량 협상을 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협상을 통해 미즈하라가 징역이 아닌 벌금형만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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