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31] 아주머니들이 운영하는 마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120km 거리에 나자레(Nazaré)가 위치하고 있다. 대서양을 면하고 있는 인구 1만5000여 명의 작은 해안 마을이다. 해수욕장으로, 그리고 빅 웨이브 서핑의 성지로 인기가 높다. 토요일마다 생선 경매가 열리는 지역의 활기찬 풍경과 해변의 리조트라는 성격이 합쳐져 ‘포르투갈의 코니아일랜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마을의 해변과 시장, 골목에는 아주머니들이 쉽게 눈에 띈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지역 전통 스커트를 입고 다닌다. 마치 페티코트와 같이 생긴 펑퍼짐한 형태인데, 다양한 색상으로 수를 놓은 일곱 개의 치마를 보관하며 요일마다 바꿔서 입는다. 어제 입은 다른 색 스커트가 빨래로 창문에 걸려있는 풍경도 재미있다.
몇 해 전 방문했을 때 마을 광장 옆 공간이 비어 있어 차를 세웠다. 바로 앞 그늘에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혹시 이곳에 주차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어디 가냐고 묻더니, “원래는 이 레스토랑 손님들 전용 주차 공간인데, 지금 쉬는 시간이고 주인이 낮잠 자러 갔으니 두 시간은 괜찮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내가 이곳에 앉아 있으니 걱정 말고 점심 먹고 오라”고도 덧붙였다. 점심은 포르투갈의 국민 생선이라는 정어리구이 전문점에서 먹었다. 이후 차로 돌아와서 숙박이 필요해서 물어보니, 또 다른 아주머니를 소개해주고, 그는 따라오라고 하면서 어딘가의 아담한 민박집으로 안내해주었다.
전통적으로 어업을 위주로 생계를 유지하던 마을이라 새벽녘에 남자들이 바다로 떠나면 마을에는 부녀자들만 남게 된다. 관공서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상은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굴러간다. 실제로 마을 방문 시 필요한 정보는 아주머니들을 통해서 얻으면 된다. 생선을 말리거나 파는 것도, 방문객에게 마을을 안내하는 것도 모두 아주머니들의 몫이다. 이 마을에 대단한 관광지는 없지만 이런 정서가 주는 경험이 색다르다. 공약과 비방과 허가와 규제의 플랫폼이 아닌 상식의 플랫폼으로 운영되는 마을이 정겹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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