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살 빼기 힘든 것도 임신 건망증도 ‘호르몬’ 때문

곽아람 기자 2024. 4. 13.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분비내과 전문의의 ‘호르몬 백서’

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

막스 나우도르프 지음|배명자 옮김|어크로스|472쪽|2만2000원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희귀 자가 면역 질환인 애디슨병을 앓았다. 부신에 염증이 생겨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등을 너무 적게 생산하는 병이다. 기운이 빠지고, 짠 음식이 먹고 싶고, 피부와 점막 사이가 햇볕에 그을린 것처럼 검어진다. ‘백악관 태닝’이라 불린 케네디의 갈색 피부는 호르몬 이상 때문이다. 케네디의 호르몬 이상은 국제 관계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 전초전에서 케네디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루쇼프는 지각했고, 그새 코르티솔 수치가 떨어진 케네디는 완전히 녹초가 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협상은 결렬됐고 많은 역사가가 이 외교 협상이 실패한 탓에 하마터면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다고 해석한다.

사랑에 빠져 정신 못 차리면서, 드라마를 보다 펑펑 울면서, 임신 중 널뛰는 감정을 주체 못하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다, 호르몬의 장난이야.” 내분비내과 전문의로 암스테르담 대학의학센터 당뇨병 센터 소장인 저자가 쓴 이 책은 그 ‘호르몬의 장난’ 탄생부터 노화까지의 각 단계에서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지 의학적으로 설명한다.

임신부가 겪는 증상은 다양하지만, 건망증, 왕성한 식욕, 이상한 음식 선호 현상은 주로 아들을 임신한 여성에게서 나타난다. 호르몬 탓이다. 높은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수치의 영향으로 이 여성들은 딸을 임신한 여성보다 더 많이 과자를 폭식하고, 오이를 보면 침샘이 고인다. 저자는 “남아의 체중이 일반적으로 여아보다 많이 나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 설명한다. “남자 아이는 그저 영양분을 더 많이 섭취했을 뿐이다.”

프로락틴과 옥시톡신은 임산부의 자궁 수축, 신체 회복을 돕고 젖이 돌게 한다. 젖을 생산하는 기능에서 이름을 얻은 프로락틴은 무엇보다 임산부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 그런데 프로락틴 수치가 출산 때만 높아지는 건 아니다. 종양 같은 다른 원인으로 뇌하수체가 커진 경우에도 다량의 프로락틴이 혈류로 유입된다. 이 경우 임신하지 않았는데도 젖이 나올 수 있다. 저자는 영국의 첫 여왕 메리 1세도 분명히 이 병을 앓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블러디 메리’라고도 알려진 메리 1세는 배가 불러왔고 젖이 나왔지만 아이를 출산하지 않았다고 한다.

침에도 호르몬이 섞여 있다.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처음에 남성의 외모를 보고 매력을 느낀 여성의 50%가 키스 후 관계를 끝냈다. 침 속엔 생식능력 정보가 있는 호르몬이 들어 있는데 여성은 이를 통해 자신과 유전적 구조가 달라 ‘더 강한 자손’을 낳을 수 있는 남성을 본능적으로 선택한다.

피임약에는 프로게스테론이 들어 있고, 때로는 에스트로겐과 함께 사용된다. 이 두 호르몬은 배란을 억제해 정자세포가 있어도 수정될 수 없게 한다. 피임약 복용자의 흔한 불만은 에스트로겐으로 인한 체중 증가와 성욕 상실이다. 최근 덴마크에선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 약 50만 명을 8년간 추적 조사했다. 자살(시도) 위험에 집중해 연구했는데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들의 위험이 복용하지 않은 집단보다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고, 프로게스테론이 함유된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에게서는 그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

노화도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다. 갱년기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열성홍조와 다한증을 겪는다. 나이가 들수록 살을 빼기 어려운 것도 호르몬 탓이다. 성호르몬이 줄어들면 포만감 호르몬인 렙틴 생산이 줄어들어 식욕이 늘어난다. 성호르몬의 감소는 갑상샘 호르몬의 기능을 떨어뜨리는데, 그 결과 에너지 대사가 느리게 진행되는 동시에 지방 조직이 증가한다.

‘알쓸신잡’류의 책이지만 마냥 가볍진 않다. 복잡한 의학 지식도 쉽게 풀어 설명하는 저자의 내공 덕에 책장이 금세 넘어간다. ‘연금보다 근육’이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근육보다 호르몬’이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능한 한 이른 시기부터 호르몬 균형을 잘 유지하고자 할 때 참고할 ‘의학적 조언’은 건강하게 먹고 많이 움직이라는 것이다. 또한 밤과 낮의 리듬을 잘 지켜야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