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 형사’를 데려와야 하나… 주차 밉상 어찌 하오리까
연일 등장하는 주차 빌런… 속시원한 대응책 없나
“운전면허 시험에 인성 검사를 포함시키면 안 될까요?”
주차 빌런(악당)의 사연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최근엔 한 BMW 차주가 대구 남구의 어느 아파트 입구 차단기를 막고는 비켜주지 않아 통행에 혼란을 일으킨 일이 공분을 샀다. 관리실에 자기 소유 차량이 아닌 다른 차량의 주차 등록을 해달라고 우기다가 안 되자 앙심을 품고 1박 2일 동안 보복 주차를 한 것이다. 아파트 관계자는 물론 이웃이 “차량을 이동해 달라”고 수차례 차주에게 연락했지만 묵묵부답.
경찰도 사유지라서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며 그냥 돌아갔고 구청도 마찬가지였다. 애꿎은 주민들만 피해를 봤다. 며칠 후 경찰이 차주를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하긴 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 관계자들은 “벌금 내면 그만인 일이라서 고급차 모는 차주는 큰 타격이 없는 듯하다”고 했다. 이 차주가 사과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빨리 주차 등록 안 해주면 또 막겠다”고 으름장을 놨다니 적반하장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차 문제로 인한 갈등은 층간소음만큼이나 언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처벌 수단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견인하면 될 일 아니냐고 할 수 있으나 견인 시 차량 파손이 생기면 황당하게도 신고자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 처단하는 식으로 ‘사적 제재’를 가한다.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법 개정이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부산 한 아파트에서도 외제차가 정문 차단기를 막았다. 차주가 경차 주차면 두 자리를 차지해 관리실이 문제를 제기하자 보복 차원에서 그런 짓을 벌였다고. 경비원이 연락하자 차주는 “차에 손대면 불 지른다”고 오히려 협박했고, 차주는 차를 이동해서도 경차 자리 두 칸에 대각선으로 주차했다. 한 이웃은 “상습적인 빌런 행태로 주차 위반 스티커도 붙이고 한 달 동안 입차 금지 조치를 했는데도 막무가내”라며 “법은 누굴 위한 것인가. 입주자대표회 등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장을 냈지만 당장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 했다.
공공 주택 또는 상가 입구를 차로 막아서 피해를 봤다는 사연은 자주 알려진다. 하지만 통쾌하게 복수했다는 후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차량 번호판을 지운 주차 빌런 사진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공론화되고 차주가 인터넷에서 쌍욕을 먹는 정도다. 최근 한 전기차 차주는 입주민도 아니면서 아파트 주차장에 무단으로 삐딱하게 주차해 다른 차 출입까지 막았다는 고발 글이 화제였다. 해당 차주는 1년 넘게 이런 일을 벌였지만 전화도 제대로 받지 않다가 인터넷에 공개되자 뒤늦게 사과했다. 재판에 넘겨진 사례도 있다. 2018년 인천 송도의 아파트 주차장을 일부러 막은 차주가 일반교통방해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당장 차를 빼야 하는 불편함은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데, 뒤늦은 법의 심판이 무슨 의미냐”고 했다.
전국 곳곳에선 오늘도 주차 시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국가권익위에 따르면 사유지 불법 주차에 대한 민원은 연간 2만~3만건씩 접수된다. 지난 10년 새 민원 건수는 150배 이상 폭증했다. 이중 주차, 주차 라인 밟기, 장애인 구역 얌체 주차 등으로 갈등을 빚어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파트, 빌라, 상가 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확실한 대응 방법이 없다 보니 황당한 일을 겪은 상대방이 ‘너도 한번 당해보라’며 빌런으로 변한다. 지난달 한 차주는 상습적으로 주차 라인을 넘어서 사실상 두 칸을 차지한 벤츠 차주를 골탕 먹이겠다고 마음먹고 운전석을 열지 못하도록 옆에 바짝 붙여서 주차한 사진을 인증하기도 했다. 벤츠 차주의 실수로 사건이 출발했지만 이 경우 보복 주차를 한 상대가 처벌받을 수 있다. 법원은 비슷한 사건에 대해 차량이 손상되지 않았지만 일시적으로라도 차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해를 끼쳤다며 벌금 50만원형을 내린 적이 있다.
도로교통법은 주차 금지 구역에 차를 댈 경우 경찰관이나 시·군 공무원이 차량 이동을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건물 내·외부 주차장과 골목길 등은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분류되지 않아 경찰이나 지자체에서 단속이나 견인 조치를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권익위는 수년 전에 사유지에 불법 주차하는 차량에도 범칙금이나 견인 조치가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이는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국회에서도 강제 견인이 가능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고의·중과실이 아닌 경우 면책해 주는 ‘주차장법 일부 개정 법안’ 등이 발의됐다. 그러나 통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약으로 ‘주차 빌런 강력 처벌법’을 내걸었다. 그러나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운전자 시민 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계도적 접근”이라고 했다. 얼마 전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킥보드와 네발자전거, 유아 전동차 등이 주차선을 넘지 않고 가지런히 주차돼 있는 아파트 주차장 풍경이었다. 화 많고 무개념인 어른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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