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우린 이 초록별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을까
파리정치학교 교수인 브뤼노 라투르는 ‘백남준 국제예술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인류학자이며 과학인문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가 대표 도서이며, 전 세계에 번역 출간되었다. 그가 코펜하겐에서 젊은 학자 니콜라이 슐츠와 함께 쓴 ‘녹색 계급의 출현’(이음)은 100페이지를 살짝 넘는 가벼운 분량이고, 짧은 메모의 연속인 팸플릿 형식이다. 그렇지만 내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래도 최근 사용 빈도가 점점 늘고 있는 ‘녹색 계급’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가장 자세히 다루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녹색 계급이 뭐야?
“녹색 계급은 지구 차원의 거주 가능성 문제를 떠맡는 계급이다.” 말이 어렵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노동자가 늘어났는데, 100년에 걸쳐서 노동계급으로 형성되었다. 이런 것처럼 지구 생태 등 생태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제 등장을 했고, 점차적으로 녹색 계급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거주 가능성은 과연 우리가 자기 동네에서 혹은 지구에서 계속 살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이다. 지금처럼 지구가 망가져 가면, 몇 세대 지나지 않아 인류가 지구에서 살 수 없을 수도 있다. 이게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녹색 계급이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에게도 ‘기후 유권자’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뭔가 바꾸어야 한다는 흐름이다. ‘기후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증상이 심리학회에 등장하기도 했다. 기후변화를 혼자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증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무기력하게 있을 것인가, 아니면 행동할 것인가란 분기점에 놓여 있다. 고립되든 행동하든, 녹색 계급이 한국에서도 등장할 조건이 슬슬 무르익고 있다.
철학책치고는 상대적으로 평이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책은 유감스럽게도 매우 어렵다. 어렵다기보다는 어색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동계급 외에 다른 계급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계급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녹색당에게 투표하는 유럽 사람이라면 녹색계급이라는 개념이 이젠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고 그래서 어색하긴 하다. 그래도 다음 대선과 총선, 지금보다는 더 성장한 녹색 계급이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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