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추상미술 화가 故김병기의 인생을 되짚다
바람이 일어나다
김형국 지음|나남|368쪽|2만8000원
지난 2022년 106세를 일기로 타계한 1세대 추상미술 화가 김병기 평전이다. 평창동 이웃으로 20년간 교류하며 ‘인간 김병기’를 깊게 탐구한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가 8년에 걸쳐 집필했다. 구술, 국내외 문헌, 가족과 지인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백년에 걸친 화백의 삶과 한국 현대미술사 흐름을 파노라마처럼 생생히 되살려 냈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병기는 도쿄, 서울, 뉴욕을 오가며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을 아우르는 독보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그림은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화실 밖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6·25 전쟁 때는 선우휘, 이용상과 함께 끊어진 대동강철교를 이어 피란민 수만 명의 목숨을 구했고, 전쟁의 실상을 왜곡한 피카소를 비판하기도 했다. 101세에 대한민국예술원 신입 회원으로 뽑혔을 때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림에 대해 묻지 않고 모두들 장수 비결을 물을 것 아닌가!” 2019년에는 103세 나이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기록을 세웠다.
제목은 화백이 청년 시절부터 좋아한 프랑스 시인 발레리의 시 구절 “바람이 일어나다. 살아야 한다”에서 따왔다. 저자는 “생사를 넘나드는 파고 속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좌우명으로 읊조리던 구절은 그의 실존적 고뇌, 생의 의지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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