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경쟁에 매크로까지 등장한 ‘캠강신청’
캠핑장 ‘하늘의 별따기’… 불법에 온라인 대기까지
당신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5초면 안다. 서울시 공공 예약 시스템의 기준이다. 캠핑장을 사람이 예약했는지, 매크로(지정된 명령을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 등 불법 프로그램이 들어왔는지 판단할 수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봄을 붙잡기 위해 야외로 나가는 사람이 늘면서 캠핑장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다. 캠핑 성수기 중 으뜸인 ‘벚꽃캠핑’ 시즌은 예약 경쟁이 더 치열하다. 단풍이 든 가을보다, 눈 내리는 겨울보다 더 짧은 벚꽃 개화기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예약자 간 경쟁은 물론, 날씨와도 눈치 싸움을 벌여야 한다.
가정의 달인 5월도 캠핑족의 예약 전쟁이 격렬한 시기. 어린이날이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았지만 아동 친화적 환경을 갖춘 캠핑장은 예약이 다 찼다. ‘캠강 신청’이라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캠핑장 예약이 클릭 전쟁을 벌이는 수강 신청보다 더 어려워졌다.
인간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이겨보겠다고 매크로를 만들고, 웃돈 주고 캠핑장 예약권을 산다. 대체 캠핑이 뭐길래 이토록 분투하는 것일까.
◇매크로까지 등장한 ‘캠강 신청’
회사원 신태림씨는 매주 캠핑장 앱을 ‘새로고침’한다. 아들(4)과 함께 갈 곳을 찾기 위해서다. 겨울에는 썰매장이 있는 캠핑장, 여름에는 수영장이 있는 캠핑장, 어린이날에는 보물찾기 같은 이벤트를 여는 캠핑장을 구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 캠핑장은 예약이 어려워 진작에 포기하고, 예약을 대행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취소 예약이 생기면 알려주는 알람 설정을 해뒀다.
신씨는 “캠핑장마다 다르긴 하지만 2박3일 예약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고, 빈자리가 생겨야 1박2일 예약을 받아주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만 쉴 수 있는 회사원은 이렇게 수시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도, 특별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도, 친구들도 캠핑장에서 만나는 시대. 캠핑장 예약이 ‘캠강 신청’으로 불리는 이유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불법도 횡행한다. 서울시가 작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캠핑장 같은 공공 체육 시설 예약 시스템에서 불법 예약으로 파악해 직권 취소한 사례는 총 183건. 숙달된 사람도 예약에 최소 7초가 걸리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이 예약들은 시스템이 열린 지 5초 이내에 정보 입력과 예약 신청이 완료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크로 같은 부정행위는 캠핑장 등 체육 시설 예약에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이런 불법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조례를 공포하고, 예약 중간에 사용자가 조건에 맞는 그림을 찾아내는 보안 시스템을 도입했다. 여기에 예약 버튼도 8개로 늘려 그 중 색깔이 다른 버튼을 찾아 눌러야만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손이 느린 사람들이 ‘선착순’으로 캠핑장을 잡는 건 불가능한 일. 그래서 추첨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국립공원공단은 오는 5월부터 전국 국립공원 야영장 44곳에 대해 선착순 예약을 없애고, 연중 상시 추첨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불법 예약이 판치고, 빠른 클릭이 어려운 노년층의 이용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유튜브에서는 여전히 ‘캠핑장 매크로 프로그램 만들기’ 같은 강의가 버젓이 떠 있고, 예약 프로그램을 파는 업체들도 캠핑족을 유혹한다.
◇기부 답례품으로 등장한 캠핑
캠핑장 예약은 ‘탐나는 선물’의 경지에 이르렀다. 충주시는 지난달, 개인이 본인 주소지를 제외한 고향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연간 500만원까지 기부할 수 있는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캠핑장 이용권을 추가했다. 기부자들에게 충주에 있는 목계솔밭캠핑장 우선 이용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목계솔밭캠핑장은 차박(車泊·차에서 숙박하는 방식)의 성지로 이름난 곳. 일반 예약은 매월 20일 오전 9시부터 가능하지만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이용권을 받으면 이틀 전인 매월 18일 오전 9시부터 19일까지 이틀간 선점할 수 있다. 충주시는 “다른 지역 거주자의 기부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캠핑 예약 경쟁을 지자체 기부 활성화 방안으로 활용한 셈이다. 울산 북구와 안동시도 최근 캠핑장 이용권을 고향 기부 답례품에 넣었다.
캠핑장 이용이 ‘혜택’이자 ‘복지’로 떠오르면서 다른 지자체도 조례 변경 등을 서두르고 있다. 양주시는 지난 2월, 지역 주민들이 캠핑장 수량의 20%를 우선 예약할 수 있도록 지침을 바꿨다. 서울시 또한 서울시 거주자에 대한 캠핑장 우선 예약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용객 중 절반이 다른 시·도 거주자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제나들목캠핑장 시범 운영을 시작한 강원 인제군도 지역 주민 우선 예약제를 검토하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 서비스 상품으로 캠핑장을 내세운다. KT는 통신사 멤버십 포인트로 고객 전용 캠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만 12세 이하 자녀가 있는 고객이 대상인 캠핑장 예약 서비스는 2020년부터 지금까지 2만2000 가족이 이용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약에 실패한 사람들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대기한다. “4월 13일 난지캠핑장 구해요” “5월 4~6일 가능한 캠핑장 아무 데나 구합니다” 같은 글이 넘친다. 가격은 ‘협의’가 기본. “내일 갈 수 있는 경기도 파주의 캠핑장을 예약한 가격(12만원)에 넘기겠다”는 글이 올라오자 2분 만에 신청자가 나타났다. 대기하고 있던 신청자가 “나한테 달라”고 해놓고 고민하는 사이 “쪽지가 너무 많이 오니 빨리 결정해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 글이 올라온 시간은 평일 오전 6시 20분. 1시간여 만에 캠핑장 예약권은 다른 주인에게 넘어갔다.
◇캠핑의 매력은 뭘까
캠핑족 500여 명이 모인 ‘슬기로운 캠핑 생활’이라는 오픈 채팅방을 운영하는 윤병호씨는 2020년부터 매주 캠핑을 한다. 캠핑의 매력을 묻자 그는 “야외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라고 답했다. 벚꽃 아래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핑장엔 예약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한 캠핑장은 “벚꽃 나무가 없는데 ‘벚꽃 캠핑 가능하냐’는 문의 전화가 계속 와 골이 아프다”고 했고, 벚꽃 캠핑으로 소문난 청도 브리즈힐 캠핑장에는 지난주 “벚꽃이 다 피었느냐” “예약 가능하냐”는 문의가 100건 넘게 왔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0년 2363곳이던 등록 캠핑장은 현재 3857곳으로 63.2% 증가했다. 관광공사는 무등록 캠핑장에서 벌어지는 안전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해 ‘고캠핑’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2023년 12월 발표한 캠핑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캠핑 이용자는 583만명, 캠핑 산업 규모는 5조2000억원. 캠핑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휴식’이었고, 동반자는 가족·친구·연인 순이었다. 캠핑 예약은 1개월 전부터 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번 주말에도 수많은 사람이 짐을 싸서 자연 속으로 떠나는 이유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민주당 지지자, 폭행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서 현행범 체포
- 태국 마사지숍 생중계한 한국인… 제지한 업주 폭행 혐의로 체포
- Higher deposit protection in South Korea: What’s next for banks and savers?
- [속보] 법원, ‘연세대 논술시험 유출’ 관련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 합격자 발표 중지
- “성인방송에 사생활 공개” 아내 협박‧감금 전직 군인,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
- [속보] 이재명 서울중앙지법 도착... 기자들 질문에 ‘묵묵부답’
- 당근서 옷장 무료나눔했더니 다 박살 내고 사라진 남녀
- 보석 후 첫 재판 출석 김범수 “성실히 임하겠다”…증인 불출석으로 재판은 공전
- "허위글 못 참겠는데?"…채림, 중국인 전 남편 루머에 분노
- “이재명 구속” vs “이재명 무죄”...1심 선고 앞두고 좌우로 갈린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