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학폭 줄이는 ‘0교시 아침 운동’
서울 강북구 번동중에선 매일 아침 ‘0교시 수업’이 열린다. 해도 다 뜨지 않은 오전 7시, 하나 둘씩 교문을 통과한 학생들이 향하는 곳은 교실이 아닌 체육관이었다. 요일별로 열리는 농구·축구·줄넘기 동아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7시 30분부터 50분간 운동을 한 뒤, 교과 수업을 들으러 간다. 모든 운동은 자율 참석인데도 출석 도장 찍는 학생만 100여 명.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아침 풍경이다.
아침 운동 시작 이후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학교폭력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매년 수십 건씩 발생하던 크고 작은 학폭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반복적으로 친구들을 괴롭히는 ‘문제 학생’도 줄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학교 교사들은 운동 시간이 늘어난 것을 꼽았다. 학생들이 운동에 에너지를 발산하니 남을 괴롭히지 않고, 사소한 충돌은 참고 넘길 수 있는 인내심도 생겼다는 것이다. 아침 운동은 점점 참여자가 늘어나 최근엔 방과 후 배구·육상 동아리도 만들었다. 이곳 학생 4명 중 1명이 적어도 한 개 이상 운동을 한다.
체육 활동이 학생들의 대인 관계 역량을 키워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운동시키는 정신과 의사’ 존 레이티 하버드대 교수는 운동을 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 뇌의 통제력을 길러줘 불안감과 폭력성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나 사실은 사실. 그런데도 그동안 체육 활동이 외면됐던 것은 ‘입시 공부’에 전력투구를 하려면 운동 시간도 아껴야 한다는 인식 탓도 있었다. 번동중에서 아침 체육을 만든 이유도 방과 후엔 학생들이 학원에 가느라 바쁘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학생들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학생(초·중·고) 비율은 2017년 23.9%에서 점점 올라 2021년 30.8%로 정점을 찍었다. 코로나 이후인 지금도 비슷한 수준이다. ‘저체력’ 학생도 늘어 작년 기준 15.9%다. 같은 기간 우울·불안감을 호소하는 10대는 크게 늘었는데, 많은 전문가가 신체 건강이 나빠진 것과 떼어서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최근 들어 전국 교육청에선 체육 시설과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늘리고 아침 운동도 권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부 ‘운동 마니아’ 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운동을 할 수 있게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번동중은 학년과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공평하게 운동장을 쓸 수 있도록 점심 시간마다 학년별 농구·축구 반대항 리그를 연다. 그랬더니 ‘골 때리는 여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운동 동아리원 약 3분의 1이 여학생이다. 이 학교에 긍정적 변화가 생길 수 있었던 배경엔 학생 대부분이 ‘운동 습관이 인생의 기초 체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많은 학생이 운동의 기쁨과 성취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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