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3대 구라...방배추의 90년 인생

박돈규 기자 2024. 4.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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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무튼, 레터] 방배추 구순잔치
방배추씨는 올해 구순을 맞는 소감을 묻자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조용히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회생활을 하면 모여서 움직이는 무리들이 있잖나. 이쪽 무리에 끼면 이쪽 사람이 되고 저쪽 무리에 끼면 저쪽 사람이 되고. 그런데 나는 특별한 무리도 없고 평생 그냥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사진은 2013년 보디빌딩을 할 때 모습. /조선일보DB

방배추라는 사람이 있다. 통일운동가 백기완,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조선의 3대 구라’로 꼽힌다. 입담이 그만큼 탁월하다. 본명은 방동규. 하지만 그는 배추, 배추, 방배추로 더 유명하다. 깡패 열일곱 명을 혼자 때려눕혔다는 주먹계의 전설.

고교 시절 배추장수처럼 허름하게 입고 다녀 방배추라는 별명이 붙었다. 구라는 “구라 치지 마”라는 말처럼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방배추의 이야기는 실제 삶과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에 진솔하고 재미있다. 권력에 아부하고 명성이나 좇는 소인배들의 눈에 그는 사실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 점이 바로 방배추의 매력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구라 한 토막을 옮긴다.

때는 크리스마스이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위로하러 방한했다. 비상이 걸려 경비가 삼엄한 그날, 방배추는 서울 을지로 골목에서 건달들과 싸움이 붙었다. 진짜 이겼을까? “그게 바로 구라야. 무참하게 얻어터졌지. 백기완 같은 친구야 100명이 와도 나한테는 안 되지. 그런데 그놈들은 전문 싸움꾼이야. 규칙이 없는 개싸움에서 다구리로 달려드는데 어떻게 이겨. 내가 일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도 아니고.”

방배추는 파독 광부로 막장 노동을 했다. 구라의 절반은 근육에서 나온다. 현대건설 파견직으로 중동에서도 일했다. “사막을 횡단하다 차를 세우고 똥을 쌌는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똥파리들이 달라붙는 거야. 산다는 게 정말 처절하고 무섭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 민주 정권이 들어서자 온갖 민주 투사들이 나타났잖아. 사막의 똥파리들 같더구먼. 먹고살기 위해 정말 무섭게들 기어들어오더라고.”

종횡무진이다. 작가 원재훈은 ‘단독자’라는 책에서 “방배추 선생은 큰 이야기를 과자 먹듯 하는데 그게 바로 구라”라고 했다. 엄혹한 시절 고문을 당할 때 야구방망이에 ‘국산 거짓말탐지기’라고 적혀 있었다는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끔찍하다.

소리꾼 임진택 등 후배들이 이달 말 방배추의 구순 잔치를 열어준다고 한다. 좌충우돌, 파란만장한 90년이었다.

“천하의 싸움꾼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유부녀의 남편은 이길 수 없어. 반대로 부모를 죽인 자라면 항우장사라도 이길 수 있지. 주먹 자랑은 하는 게 아니야. 싸움에 일등은 없어. 단지 성실하게 살아야지. 최고의 싸움꾼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야. 그저 겸손하게 자기가 한 말을 지키면서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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