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와 정치 이야기 하기

오지윤 작가 2024. 4.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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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오지윤의 리빙뽀인뜨] 사상검증구역
일러스트=비비테

지난겨울, 독일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왔다. 난 정치 뉴스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A 정치인이 어쩌고, B 정치인이 어쩌고. 숱한 갈등과 소음들을 간략히 전달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말했다. “그건 정치가 아니야. 가십이지.” 정곡을 찔렸다. 그렇다. 나는 정치가 아니라 가십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에 대한 뉴스만 듣고 있었다.

요즘 친구들이 하도 추천을 해서 보게 된 프로그램이 있다. OTT 채널에서 볼 수 있는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라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견해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리더를 뽑으며 ‘정치 서바이벌’을 해나간다. 첫 화부터, 흥미롭다. 출연진은 간단한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첫인상을 가늠하고 있는데, 각자가 입소하며 했던 인터뷰가 익명으로 소개된다. 그중에는 “동성애는 후천적 오류다” “상속세를 더 떼야 한다” “빈곤은 국가의 책임이다” 등이 있다. 하하 호호 웃던 사람들은 ‘나와 이렇게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눈치다.

인터넷 댓글들만 봐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라며 놀라곤 한다. 화가 난다. 그렇다고 같이 악플을 달지는 않는다. 내가 사는 실제 세계에는 없을 인간이라는 이상한 믿음 덕분일까. 악의 세계에 존재할 요괴를 본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지나친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이상한 댓글을 달고 있는 사람이나, 극단적인 유튜버의 영상을 보는 사람을 곁눈질로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러면 ‘진짜 있구나!’ 하며 찬찬히 그 사람을 관찰한다. 해어진 야구 모자를 쓰고 커다란 배낭을 멘 할아버지일 때도 있었고, 양복을 입은 아저씨일 때도 있었다. 친근해 보이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요괴도 아니었다.

나에게 이 프로그램을 가장 절실하게 추천한 에리카(친구 이름)는 추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랑 사상이 똑같다고 무조건 좋은 사람이 아니고, 사상이 다른 사람이라고 무조건 싫지도 않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든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맥락과 이유와 인생을 이야기한다면, 혐오하지 않을 수 있다. 서로의 입장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조건 지지할 이유도 없다.

정치와 종교에 대해서는 가족끼리도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십만 식탁에 오르내린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친구이고 얼마나 다른 가족일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에서는 서로가 하트를 주고받는 시스템이 나온다. 정치는 마음을 얻는 일이고, 마음을 얻으려면 대화하고 배려해야 한다. 엄마, 아빠가 정치 이야기를 하면 일단 가드부터 올리는 나다. 정치에 있어서 서로의 마음을 얻기는 진즉 포기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랑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같이 보기 챌린지를 해보고 싶다. 일단 누군가가 먼저 해보고 후기를 들려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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