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탄생부터 죽음까지… 삶은 ‘호르몬’과 함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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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노력과 인내 끝에 다이어트에 성공했는데 요요 현상이 와서 수포로 돌아갔다.
좋은 소식은, 이 책이 호르몬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삶의 각 단계에 맞춰 풍성하게 정리해 준다는 점이다.
인체의 호르몬 피드백 시스템이 건물의 온도조절장치처럼 각 시기의 신체에 적합한 호르몬 수치를 계속 조정해 주는 것이다.
저자는 '호르몬 투여가 만능 해결책'이라는 유사과학을 불식시키는 게 이 책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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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투여 땐 질병 확률 높아져…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해선 안돼
◇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막스 니우도르프 지음·배명자 옮김/472쪽·2만2000원·어크로스
네덜란드의 내분비 전문의인 저자는 엄청난 ‘특종’을 내놓지 않는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장내 미생물의 역할과 생후 2년 이전의 ‘소(小)사춘기’를 유독 강조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얘기는 적다. 좋은 소식은, 이 책이 호르몬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삶의 각 단계에 맞춰 풍성하게 정리해 준다는 점이다.
호르몬의 역할은 생명의 성립 직후부터다. 수정 후 첫 2개월 동안 남자 태아에게서는 항뮐러관호르몬이 분비돼 여성의 생식기가 될 구조들을 없앤다. 여자 아기는 출생 이후에 이 호르몬이 분비돼 사춘기 이전에 난자가 성숙하는 일을 막는다. 이 호르몬 수치가 높은 어린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다.
임신 중 식욕이 높아지거나 이상한 음식에 손이 가는 여성은 남자아이를 임신했을 확률이 높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이가 생기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진다. 공격성이 줄어들고 온화해지는 것이다.
몸무게에서 2kg 남짓을 차지하는 장내 미생물은 다양한 호르몬의 생산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이미 ‘나의 일부’다. 중추신경계를 통해 호르몬 생산과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미생물과 우리 뇌가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끄집어낸 일화들도 책의 흥미를 높여 준다. 영국의 메리 1세는 임신하지 않았는데 젖이 나왔고 젊은 나이에 시력을 해쳤다. 저자는 이를 뇌하수체의 종양 때문으로 추정한다. 호르몬 분비의 이상 때문에 메리 1세는 자식을 갖지 못했고 튜더 왕조는 종말을 고했다.
나이 들면 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며 건강에 여러 영향을 미친다. 폐경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에게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단기간에 증상을 완화시킨다. 테스토스테론이 줄어 컨디션 난조를 겪는 남성도 테스토스테론 투여가 도움을 준다. 호르몬은 청춘을 되찾아주는 만병통치약일까.
에스트로겐을 장기간 투여받은 여성은 암과 심혈관 질병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남성에게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지면 몸에 더 많은 에너지원을 저장할 수 있고 무모함이 줄어 장기적으로 생존에 도움을 준다. 인체의 호르몬 피드백 시스템이 건물의 온도조절장치처럼 각 시기의 신체에 적합한 호르몬 수치를 계속 조정해 주는 것이다.
요요 현상으로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희망은 있다. 단기적 해결에 집착하지 않고 올바른 식습관을 유지하면 식욕 호르몬 수치도 변화한다.
저자는 ‘호르몬 투여가 만능 해결책’이라는 유사과학을 불식시키는 게 이 책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밝힌다.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가 아니며, 신체와 정신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결과가 바로 우리”라는 결론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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