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당에서 ‘남원정’은 단지 남경필·원희룡·정병국을 한정하는 건 아니다. ‘올드한 영남당’을 개혁하려는 수도권 출신의 ‘젊은 목소리’를 상징한 세력이기도 했다. 함께 성장하며 대선주자의 반열로도 올라섰다.
22대 총선에서 ‘남원정’을 떠올리게 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의원 배지를 달았다.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인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된 김재섭(37) 당선인과 한때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의 지역구였던 포천-가평에서 당선된 김용태(34) 당선인이 그들이다. ‘친이준석계’로 분류되는 둘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친윤계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김재섭 당선인은 12일에도 “여당이 너무 정부와 대통령실에 종속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22대 국회에서는 정부와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통해 정부와 협력하면서 야당과도 협력할 수 있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가진 여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두고도 “우리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 대해서도 “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라고 했다.
국민의힘 최연소 당선자인 김용태 당선인도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이 책임을 갖고 국민의 상식에 부합할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 김용태 당선인은 이준석계의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중 한 명이었고 셋(천하람·허은아·이기인)이 탈당했을 때 당 잔류를 택했다.
이준석·천하람 두 사람은 개혁신당 간판으로 화성을과 비례대표로 각각 당선됐다. 천 당선인과 함께 개혁신당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82년생 이주영 전 순천향대 천안병원 교수도 비례대표 1번으로 22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이들은 스스로를 ‘범야’로 규정한다. 이준석 대표는 “여당이 정말 준엄한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며 “바로 직전에 전국 단위 선거에서 대승을 이끌었던 그 당의 대표였던 사람이 왜 당을 옮겨가지고 이렇게 출마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것에 대해서 윤 대통령이 한번 곱씹어보셨으면 하는 생각”이라며 윤 대통령을 정면 겨냥했다.
현재 ‘여야’로 나뉘어있지만, 보수 진영에서 비슷한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김재섭 당선인은 “(이 대표) 스스로 범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지만 중도정당이 아니라 늘 보수정당임을 자처했다”며 “보수의 적통을 자처했던 사람이기에 결국 가는 큰 방향성 자체는 같다”고 했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이들에 대해 “30~40대의 젊은 정치인으로 기성 정치를 쇄신하려고 한 ‘남원정’과 나이, 행보 등에서 공통점이 있다. ‘남원정’보다 정치적으로 더 험한 자갈밭을 걸어 당선됐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며 “이 대표의 경우 페미니즘, 노인 무임승차 등 민감한 이슈들을 피하지 않고 건드려 온 점이 기성 정치에서 벗어나 보여 설득력을 얻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동수 청년정치 크루 대표도 “민주당에서 청년 정치인이라고 불릴만한 당선인들은 주류에 부합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보수 진영에선 쓴소리하는 정치인들이 자력으로 지역구를 돌파했다는 점에서 보수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발판을 마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종북에 대한 비판이나 영남에 갇힌 지역적 한계를 깨고 2030이 원하는 이슈를 많이 다뤄야 한다”며 “그러면 이들의 당선이 반짝 이슈를 넘어서 보수 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란 지적도 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막 시작하는 이들에게 벌써 ‘남원정’을 연상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새로운 정치 세대로서 이들에게 그 정도 맹아(萌芽)가 있는지는 이제부터 증명해야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