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주도로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심상정에 부메랑 됐다
정의당의 빈자리는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이하 준연동제)로 생겨난 ‘2중대 정당’이 대신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조국혁신당이 득표율 24.25%로 당선인 12명을 배출해 원내 3당이 됐다. 범야권 지지층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를 외치며 전략적 분산투표를 벌인 결과다.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특권정치를 기필코 끝내겠다”(심상정)며 정의당 주도로 도입했던 준연동제가 빚어낸 아이러니다.
거대 양당의 위용은 이번에도 끄떡없었다. 이들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는 각각 14석과 18석을 챙겼다. 21대 총선 때보다 더 뻔뻔하고 재빨랐다. 위성정당 창당까지 한 달이 채 안 걸렸고, 정당 기호 선순위를 받기 위한 현역 의원 꿔주기도 4년 전과 판박이였다. 양당 대표도 “국민만 찍자”, “더불어 몰빵”을 외치며 선거 운동을 벌였다. 다당제 실현이라는 선거제 개혁의 취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어떤 군소정당과 후보들을 자신의 위성정당에 입주시킬지 선택까지 했다. 거대 정당의 특권이 더 강화된 역설이다. 이걸 거부한 정의당은 다시 원외가 됐다.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당시 민주노동당, 지역구 2, 비례 8)을 배출하면서 시작된 ‘독자적 진보정당’ 노선의 비극적 말로다. 반면 역시 민주노동당의 후예를 자처하는 진보당은 민주당 위성정당에 들어가 비례 2석과 야권 단일화 지역구 1석(울산 북구)을 챙겼다. 사회민주당과 기본소득당도 한 석씩 받았다. 이준한 인천대(정치학) 교수는 “진보정당이 스스로 힘을 키워 국민의 지지를 받기보단, 거대 정당과 선거연합을 하거나 공천 나눠 갖기를 하는 기형적 문화가 완성됐다”고 비판했다.
준연동제가 도입 때부터 정치 세력의 담합에서 시작된 만큼,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의당은 선거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2019년 민주당이 원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워 동시에 처리했다. ‘조국 사태’ 때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적격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정의당에서 정의가 사라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조진만 덕성여대(정치학) 교수는 “정의당의 기대와 달리 거대 양당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준우 상임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지도부는 12일 오전 노회찬 전 의원 묘소가 있는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을 참배해 “부족함을 고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희를 찍어주신 60만 시민의 응원과 격려 속에서 다시 외롭지 않은 길을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장래가 밝진 않다. 정의당 창당 멤버인 한창민 초대 대전시당위원장은 민주당 위성정당 비례 10번으로, 신장식 전 정의당 사무총장은 조국혁신당 비례 4번으로 당선증을 쥐었다. 옛 정의당 지도부 인사는 “우리가 나이브했다”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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