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만든, 이토록 완벽한 흑백
서울서 사진전 여는 마르친 리체크
오는 5월 24일까지 서울 중구 수하동의 KF갤러리에서 열리는 ‘조화: 마르친 리체크 사진전’의 주인공 마르친 리체크는 ‘더 가디언’ ‘텔레그래프’ ‘내셔널 지오그래프’ 등 세계 유수 매체들에 작품이 소개되며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사진가다.
그의 대표작인 ‘눈 속에서 백조에게 먹이를 주는 남자’는 권위 있는 국제 사진상 중 하나인 ‘국제순수예술사진상’에서 2013년 최고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 그는 개인적으로 매우 우울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집 근처 비스툴라 강변을 매일 아침 산책하면서 안개 속 같은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노력할 때였죠. 어느 날 아침 7시 브로츠와프 다리를 건너면서 강변 풍경에 발길을 멈췄죠. 자연이 무심히 만들어 낸 하얀 눈과 검은 강이 직선으로 대비된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어두움과 밝음, 음과 양’이 결국 서로를 보완하고 있음을 깨달았죠. 고난 속에서 긍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게 인생이구나 알게 된 순간이죠.”
이후 그는 나흘간 매일 같은 시간에 다리 위로 나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 한 남자가 백조들에게 먹이를 주는 순간, 정확하게 네 번의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카메라에 담긴 네 컷 중 하나는 내가 상상했던 장면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2016년 인도에서 촬영한 ‘이주-합중국Ⅱ’ 사진은 갠지스강의 빨간색과 흰색 계단에서 촬영한 것인데, 당시 그는 배를 타고 강변의 계단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단이 성조기 같다고 생각한 순간,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장벽이 떠올랐어요. 이 풍경 안에 뭐가 더해지면 내 생각이 더 완벽하게 표현될까 기다리던 찰나에 어떤 여자가 빨래를 말리려고 파란색 큰 천을 펼쳤고, 큰 가방을 여러 개 짊어진 남자가 지나갔죠.” 어떤 것도 작가가 연출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진은 이민자들의 슬픈 ‘아메리칸 드림’을 떠올리게 한다. “상상한 대로 그림이 안 잡힐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장면이 잡히기도 하죠. 그럴 때면 신에게서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어요.”
‘미니멀리즘과 상징적 은유’를 키워드로 작업하는 이유를 그는 “명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여러 나라, 특히 상징적 은유가 많은 아시아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죽음과 삶 등 답이 없는 질문의 답을 찾고 있어요. 사진 안에 여백을 많이 두는 것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면서 그 빈 공간에 저마다 자신의 작은 우주를 상상하고 채우길 바라기 때문이죠.”
‘삶의 색’ ‘연결’ ‘경계 너머’ 등 추상적인 제목이 붙은 35점의 전시 작품들을 통해 저마다의 명상에 빠져보시길.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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